이 포스팅의 내용은 이미 제목 보고 들어왔으니, 알고 있겠지.
그러니 거두절미. 바로 아래 작문부터 보자.
MBN 예능 공채 PD가 된 애가 썼던 연습 작문이다.
<무지개다리>
비가 온다. 많이 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게 오는 것도 아니다. 이제 거의 그쳐가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먹구름은 비를 세차게 내뿜고 있었지만, 먹구름 사이 사이로 빠져나오는 햇빛은 보행자들이 쓰고 있는 우산을 밝게 비추며 곧 비가 그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얕게 내리는 비 아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무지개가 보인다. 나는 종로3가 인도 한 중간에 멈춰서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무지개는 세상이 내린 선물이 아닐까? 세상이 비로 인해 흑백 빛의 무채색으로 변해갈 때, 크레파스처럼 세상 한켠을 알록달록하게 칠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하늘로 이어지는 천상의 다리 같기도 하다. 무지개는 정말 조그맸지만, 마치 투명한 물에 떨어뜨린 물감처럼 회색빛의 도시를 물들여 갔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이 광경. 그런데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똘이’ 때문일까?
‘똘이’는 우리 집 강아지다. 흰 솜뭉치처럼 작고 귀여운 포메라니언이었던 우리 집 ‘똘이’는,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포메라니언의 고정 관념을 깨고 항상 해맑은 미소로 사람만 보면 달려가 꼬리를 흔드는 친구였다. 특히 혼자 사는 나에게 똘이의 존재는 없어선 안 될 사랑하는 아내와 같은 존재였다. 밥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할 수 있는 건 더더욱이 아니었지만 그저 부르면 다가오고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특히 똘이는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했다. 아마도 인간처럼 몸이 더러워질 걱정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으니, 물웅덩이에 뛰어들 때 사방으로 튀기는 흙탕물이 신기했을 테지. 그렇게 비와 흙탕물을 한껏 뒤집어쓰고 놀고 나면, 똘이와 나는 집 근처 양화대교 아래 공원에 앉아 무지개를 보곤 했다. 똘이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신경도 안 써서 몰랐던 건지, 아니면 산책한 날에만 신기하게 뜬 건지 모르겠지만 비 오는 날 산책을 하고 나면 항상 보였던 거 같다. 개들은 색맹이라 우리처럼 빨주노초파남보를 다 볼 순 없겠지만, 흑백으로 물든 하늘에 떠 있는 알록달록한 물체가 분명 신기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똘이를 위해 생일선물로 무지개 방석을 선물해주었다. 당장 선물다운 선물을 제대로 해준 적이 없던 것도 있지만, 비가 오지 않는 창창한 날에도 무지개 비스무리한 걸 보면서 만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처음 선물했을 당시엔 낯설었는지 잘 다가가지 않았지만, 보다 보니 녀석도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평소 같으면 내 무릎 위에서 잘 놈이 이제는 방석 위에서 낮잠을 청할 때가 많아졌다.
하지만 똘이는 급작스럽게 약 2주 전 세상을 떠났다. 무지개 방석 위에서 곤히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똘이는, 편안하게 자신의 선물 위에서 눈을 감았다. 똘이를 보내고 나는 우울감에 빠져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건 살다 보면 당연한 일이고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친구들의 위로 섞인 말과는 다르게, 아직도 빈 공기로 가득 찬 컴컴한 집에 들어설 때면 똘이가 짖는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내 귀를 감싸며 공허함을 채운다. 그런데 카톡이 울린다. 우울과 좌절에 빠져 사는 나의 모습을 걱정한 한 친구가 한 편의 시를 보내주었다.
천국의 저쪽 편에는 무지개다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상에서 사람과 가깝게 지내던 동물이 죽으면 그들은 무지개다리로 가지요.
넘치는 음식, 물, 햇살, 초원, 언덕이 있는 그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하답니다.
그곳에 있는 동물들은 행복하고 만족스럽습니다, 딱 한 가지를 빼놓고 말이죠.
지상에 남겨진 자신의 친구를 그리워합니다.
삶에서는 떠났지만 마음에서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행복 속에서 같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그날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무지개다리 위에서 무지개를 바라봅니다.
그토록 비 오는 날만 되면 무지개를 보고 싶어 했던 똘이. 이 시를 읽고 나니 어쩌면 그 너머를 계속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똘이는 잠깐 저 무지개 건너편으로 여행을 떠난 게 아닐까?
그리고 오늘, 똘이를 보내고 처음 무지개를 보았다. 반려동물이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그곳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훗날 자신이 죽은 후 그 다리 건너편에서 먼저 간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얘기. 믿지 않았지만, 친구가 보내준 시는 싫든 좋은 내 기억 속에 깊게 남아버렸다. 아니. 요즘은 오히려 믿고 싶다. 그러면 지금 이 무지개를 똘이도 건너편에서 보고 있다는 거니까. 똘이 생각에 잠시 슬픔에 잠겼지만, 저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을 똘이를 위해 더 많은 무지개를 보고 눈에 담아놓은 뒤 나중에 만났을 때 실컷 얘기해줘야겠다.
-끝-
내가 했던 구체적인 피드백 첨삭도 보고 싶다면, 아래 이미지 파일을 확대해서 보길 바란다.
자, 이걸 MBN 공채 예능PD 합격자가 썼었는데, 내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예능 PD 지망생이 쓸 만한 작문이 아니다.
저 작문은 드라마 PD 지망생 작문에 더 부합을 한다 할 수 있는데,
대신 퀄리티가 너무 낮아서 합격은 어려울 거란 게 문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위의 작문이 아무리 퀄리티가 높았다한들,
아무리 봐도 예능적이지 않은 저 이야기의 잘감상, 예능PD 공채 필기에선
합격이 어려울 거란 거다. 핵심은 이거다.
자기 지망 분야에 맞게 글을 써야 한다는 거다!!
그럼 이번엔 위의 작문을 썼던 MBN 예능 공채 PD 합격자가 썼던 또다른 작문도 보자.
이번엔 완연히 자기 지망 분야인 '예능'에 맞게 쓴 작문이다.
. 시제: 현 세상에서 가장 부족해져가는 정신적 가치를 고르고, 서두에서 분명하게 그 가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주인공을 내세운 이야기를 만드시오
제목: 인내의 왕
"요즘 것들은 인내가 없어. 떼잉, 쯧."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현대랑 맞먹는 우리나라 최대의 물류회사를 꿈꾸며 자그마한 중소기업, '한상 문류'를 차린 지 어언 6년. 36살이란 젊은 나이에 약 2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며 사장이란 자리에서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이 회사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나의 노력을 하늘이 알아주는지, 최근에는 일본 '캐눈 전자'와 200억짜리 계약을 성사하며 창창한 미래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회사가 잘 되는 것과는 별개로 요즘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신입 사원이 많은 것 같다. MZ, MZ 하지만 정말로다가 '내 직장이라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함께 버티는' 인내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돈도 초봉 3,000만 원이면 많이 주는 편이고, 나. 정말 꼰대 같은 사장이 안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도 MZ의 막차를 타는 36살인데... 근데. 내가 사원들을 위해 어떤 복지를 해주냐고?
우선, 설 선물도 꼬박꼬박 챙겨준다. 그 어디 근본 없는 중소기업들은 설 선물로 선물 들어온 스팸 세트를 나눠서 직원들에게 제공한다고 한다.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사장으로 있는 우리 회사에서만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난 선물은 당연히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팸 같은 쓸모가 단 하나도 없는 하찮은 선물 따윈 주지 않는다. 요즘 MZ들은 스팸 같은 쓸모없는 선물은 어차피 받아 봤자 창고에 처박아 두다가 결국 받은 것도 까먹은 채로 2년, 3년이 지날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난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는, 누구보다 자기 계발을 원하는 MZ들을 위해 책을 선물해준다. 한 번 먹는 건 단 5분이면 사라지지만, 한 번 읽은 책은 평생을 가니, 가치로 따지자면 스팸의 백만 배의 가치를 가진 것이 책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선물해준다. 이 책이야말로 청춘의 진정한 가치를 잘 알려주는 책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듦은 오직 청춘만이 선물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란 걸 MZ들은 모른다. 그렇게 힘듦도 가치가 있는 거란 걸 알게 되면, 왜 내가 '인내'해야지 그들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야근도 마찬가지다. 나도 웬만하면 우리 신입들, 워라벨이니, 칼퇴근이니 아우성치니 야근 같은 건 빼 주고 싶긴 하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근간이 물류 기업인만큼, 시차가 다른 국가의 회사들과 커뮤니케이션하려면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런 소통들은 사실 내 일이 아닌 다 아래 직원들의 일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사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나는 적어도 8시까지 퇴근하지 않는다. 가끔 생각 없는 윗사람들은 아래 직원들을 야근시켜놓고 자기는 먼저 퇴근하는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곤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 아래 직원들이 야근하면 나도 함께 남아서 야근하는, 나야말로 정말 이 시대의 참된 '상사' 상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이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 사원들을 위해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고 신입들도 장차 이런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면 회식은 또 어떨까? 단순히 사주는 걸로 생색낼 거면 애초에 말하지도 않았다. 상사와 함께하는 회식 자리, 다들 회피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많은 상사는 1차만 함께하고 2, 3차에선 카드만 주고 자리를 피해준다고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얘기인가. 그런 건 공과 사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회사에서의 얘기다. 우리 회사는 업무 시간엔 웬만하면 터치 안 하므로 오히려 이 회식 시간이야말로 업무에선 방해될까 말하지 못했던, 또 젊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인생의 교훈을 알려줄 수 있는 값진 시간이다. 특히 저번 주에는 지금의 힘듦도 나중에는 열매가 되어 돌아온다는 말을 1차고, 2차고, 3차고 회식 자리를 옮길 때마다 계속해서 얘기했다. 계속해서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꼰대 같다고? 다 딸, 아들 같아서 하는 소리인데 누가 이걸 마다할쏘냐. 맘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 그것이 꼰대 같은 거고 나는 다르다. 특히, 이런 얘기할 때 우리 사원들의 표정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 나는 우리 회사 사무실을 부동산에 내놓고 오는 길이다. 바로 이번 주, 사원들이 집단 퇴사하는 바람에 반강제로 회사를 폐업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잡플래닛 내 '한상 물류' 리뷰에는 아래와 같은 직원들의 혹평으로 가득 찼다.
"0.7점. 설 선물로 스팸 선물 주기 싫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쓰레기 책을 선물로 주는 미친 사장이 있는 회사. 심지어 책 꼭 읽어보라고 강요까지 함. 앞뒤 꽉꽉 막힌 상사랑 일하고 싶으면 이 회사 추천."
"0.2점. 8시가 되기 전 까진 집에 쳐들어갈 기미가 안 보이는 정신 나간 회사. 업무가 끝나도 상사가 집에 안 가니 눈치 보여서 회사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할 수 없음. '교도소 같은 업무 환경이 좋다'하는 사람에게 강추"
"0.01점. 회식을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3차까지 집에 기어들어갈 생각을 안 하는 사장이 있는 회사. 사주는 걸로 생색내며, 3차까지 꼴에 나이 몇 살 더 먹은 걸로 멈추지 않고 인내하라 훈계함. 가면 쓰느라 죽을 뻔. 학창 시절 선생님 같은 상사가 있는 회사가 좋으면 추천"
엄청난 배신감이었다. 나같은 상사가 어딨다고. 어느 회사를 가도 내 회사보다 나은 회사는 찾지 못하리라 장담한다. 하지만 일단 나는 회사를 폐업 처리하느라 바쁘다.
요즘 것들은 인내가 없다. 바로 폐업 처리 한 나도 인내가 없는 게 아니냐고? 이딴 직원들을 지금껏 거느리고 참아준 것만 해도 인내가 철철 넘쳐 흐르는 게 아닐까?
-끝-
어떤가? 바로 느낌이 올 거다. 누가 봐도 예능PD 지망하는 사람이 쓴 거 같은 작문 같지 않은가?
퀄리티도 높으니 당연히 아주 높은 확률로 예능 공채 PD가 될 거 같지 않은가?
이런 작문을 앞으로 '예능형 작문'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아울러, 합격을 바란다면 당연히 작문 퀄리티는 기본적으로 높아야 한다는 것도 유념하자.
또한 누차 강조하지만, 중요한 건 자기 지망 분야에 맞게 써야 한다는 거!
그럼 이제 궁금해질 것이다. 드라마 PD 작문은 어때야 할까? 바로 그냥 예시부터 보자.
제목: 나의 summer
#1. 2023. 8. 12
집, 회사. 회사, 집. 변화 없는 똑같은 일상. 이런 재미없는 삶에 이젠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어렵고 또 어렵다. 밤 11시가 돼서야 퇴근하는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터벅터벅 회사 건물을 빠져 나오자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가 훅 끼친다. 짜증이 확 밀려온다. 내 기분이 완전히 망쳐지기라도 하길 바라는 듯, 소나기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가방으로 머리를 대충 감싸고 버스정류장까지 뛰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음악으로 귀를 틀어막아 소나기 소리를 지워버렸다. 비에 젖은 신발,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피아노 소리.
히사이시 조의 Summer였다.
#2. 2016. 6. 27
현정이는 지난 달 공시 합격, 경선이는 작년에 공기업에 들어갔고, 후배인 혜지까지 하이닉스 인턴을 시작했다는데, 나만 이 모양이다. 면접 대비를 위해 이 새까만 정장을 몇 번이나 꺼내 입었는지 모르겠다. 내 구두 소리지만, 힘없는 또각또각 소리에 나도 지친다. 그때, 길거리에 퍼지는 익숙한 피아노 멜로디에 구두 소리가 묻혔다. 이 노래는... 소리 나는 곳은 근처의 피아노 가게였다. 멋진 그랜드 피아노가 무려 세 대나 보였다. 맨 오른쪽은 누가 봐도 야마하였다. 대충 봐도 2천만 원은 하겠다. 톡, 톡, 톡. 나는 이슬비가 내리는지도, 내일 다시 입어야 할 검은 정장이 이슬비에 젖어가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서성이다가 눈을 돌렸다. 취업만 하면 다시 칠 수 있겠지.
그때 나는 피아노 가게에 들어섰어야만 했다.
#3. 2008. 7. 18
학생은 태풍이 아무리 불어도 학교에 가야 한다. 담임 선생은 태풍 셀마를 안 겪어봤으면 조용히 하라고 한다. 문제는 그 말을 벌써 네 번째 듣고 있다는 거다. 담임의 말을 대충 듣는 척하면서 나는 얼마 전에 산 햅틱을 책상 서랍에서 몰래 꺼내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보낼 문자를 고민했다. 9살 때부터 벌써 9년을 다닌 피아노 학원이지만 내년엔 수능을 봐야 하므로 공부에 집중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성적도 높지 않은데 내년 콩쿨까지 준비하면 안 봐도 결과는 뻔했다. 죽도록 공부에 매진해야 대학을 갈 테고, 대학 입학을 해야 피아노도 계속 칠 수 있을 테니. 고심과 고심 끝에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저 피아노를 잠시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마음이 태풍을 만난 듯 심란해졌다.
그때 나는 문자를 보내지 말았어야만 했다.
#4. 1999. 9. 9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 엄마가 장마라고 했다. 장마철이란 것 때문에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길에 비 웅덩이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장화를 꼭 신어야 한다. 아빠가 시장에서 사다 준 핑크색 고양이 장화. 비가 와도 핑크색 고양이 장화를 신고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길은 너무 행복하다. 왜냐하면 오늘 드디어 '썸머'를 배우기 때문이다. 6학년인 언니가 썸머를 연주하는 걸 볼 때면 항상 부러웠다. 나도 이제 썸머를 연주하게 된다니, 너무 기쁘다. 나는 이다음에 꼭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 어른이 될 거다.
나는 9살 아이의 꿈을 이뤄줬어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지금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밤새 쏟아질 것만 같던 소나기가 그치고, 어둡던 밤하늘이 밝아지고 있다. 버스는 정류장을 그냥 지나친다. 모든 게 멈춘 거 같다. 화창한 햇빛에 반짝이는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보인다. 그 무지개 아래로 한 아이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멜로디다. 그 피아노 소리에 눈물이 흐른다.
사라진 Summer였다.
끝.
자, 이건 누가 봐도 드라마 피디가 쓸 법한 작문이다. 퀄리티도 높다.
이런 게 바로 '드라마형 작문'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그럼 이제 이렇게 정리를 해보자.
예능형 작문이란?
1) 대부분 코미디 기반의 내용이다
2) 몰지각한 기자 언시생들이 그토록 울부짖는 '사회적 메시지'의 함정에 굳이 빠질 필요는 없다
3) 비교적 가벼운 소재를 다뤄도 된다
4) 비교적 무거운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게 블랙코미디라면 예능형 작문이 되기도 한다
5) 비교적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톤앤매너를 통해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6) 특수서식 활용도 가능하다 (특수서식형 작문은 아래 링크를 남겨놓겠다)
https://vongmeanism.tistory.com/932
https://vongmeanism.tistory.com/796
그럼 드라마형 작문이란 뭐냐고, 물어볼 사람들도 있을 텐데,
꼭 위에서 본 드라마형 작문 예시처럼 써야 하는 건 아니다.
코미디 장르는 안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런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자. 장르가 코미디인 드라마도 얼마나 많은데...!
드라마형 작문은 폭이 넓다. 예능형 작문은, 드마라형 작문보다 폭이 매우 좁고.
단, 예능형 작문의 경우엔 너무 진중하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이 사람이 예능을 잘 만들 거란 기대감을 안 주니 말이다.
그러니 예능 공채 PD를 지망하는 언시생이라면, 예능형 작문을 써내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잼' 작문은 안 된다. 아무리 퀄리티가 높아도 리스크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연습량
제발 쓰자. 공채 합격하면 인생 핀다. KBS 공채 PD 되면, 가문의 영광 아닌가?
MBC 공채 예능 PD 되는 건 의대에 붙는 것보다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의사들보다 공채 PD 숫자가 압도적으로 적다.
희소성이 그만큼 넘치는 직업 아닌가.
자기 투자를 하자. 입으로 글 쓰는 거 아니다. 연습하라.
예능PD 작문과 드라마PD 작문은 다르다 ㅣ MBN 공채 예능 PD 합격자ㅣ KBS, MBC 공채 PD 필기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