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도 남기면 안 되는 겁니다.
농사 짓느라 구슬땀 흘렸을 농부 분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노력해서 수확한 쌀이 버려지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겠어요?
근데요, 선생님.
그 농부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은 저라는 사람의 구체성을 아시나요?
제가 쌀 한 톨이 아니라 백 톨을 남기더라도 그 사실을 그 농부 분은 인지하실 순 있나요?
농부 분들은 여러분을 위해 농사를 지었는데, 어쩜 그런 말을 할 수 있나요?
어서 반성해요. 세상은 서로 도우면서 살도록 조직되어 있어요.
그런 생각은 반사회적인 것이에요.
돈 벌려고 농사 지은 거 다 알아요.
제가 공짜로 이 쌀을 먹었다면 그 농부 분은 절 경찰에 신고했을 거예요.
저는 저에게 할당된 이 쌀을 낭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억지 강요는 사절이에요.
이 개새끼가. 뒈지게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어디서 계속 말대꾸야. 선생이 말하면, 알겠습니다, 해야지,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든?
개소리에 너무도 오래 속았답니다.
울화. 유서 깊은 나의 화가 계속 내 안에서 울려댑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과서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이란 결국 타인이 다루기 쉬운 유형의 인간인가요?
이 분노를 오래 바라보면서 나는 비로소 희망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희망은 착한 자의 것도, 악한 자의 것도 아닌,
자신의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절박한 상상이며,
그것을 현실화 하려는, 발악인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쌀 오만 톨을 내다버리고,
선생님의 앞니 2개를 박살내는 상상을 했습니다.
나의 발악은 아직 요원합니다. 그래서 나의 희망은 더욱 키가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희망은 익을수록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