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진은 린코 가와우치
나는 술을 좋아한다.
몹시 좋아한다.
글을 쓰니까 술 좀 많이 마셔도 되는 거라고
꽤 오래 전부터 합리화했다.
그런 이유로 자기 관리가 부실하다.
술 먹은 다음 날, 숙취 탓으로 약속 펑크낸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운동 선수였으면 일찌감치 퇴출 당하고도 남았을 거다.
다행히도 운전 면허가 없어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고,
범법 행위에 해당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물러설 곳이 없다.
나의 음주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
약속 펑크보다 심각한 것은
'주울증'이다.
술 먹은 다음 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진다. 딱히 해결 방법도 없이 그 극도의 우울함을
견디고 있으면, 아무리 이성으로 수비를 해도
자존감이 떨어진다. 뭐 거의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된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위한 해결책은 이미 나와있는 것 아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술을 안 마시면 되는 거니까.
그러나 그리 간단치 않다. 아니, 매우 복잡하다.
알콜에 의존한다, 라고 말하면 창피하니 애써 아니라 우겼지만,
이젠 인정하자. 아니라 우기는 게 더 창피한 지경인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알콜에 의존한다.
본디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
내 성질머리도 모르는 세상은 제대로 된 평가를
제때에 내려주지 않는다. 속이 타들어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다.
외로움도 잘 탄다. 누군가와 만나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괜찮아진 것 같다.
열악한 주변 여건은 또 어떤가.
애초엔 맷집이 커지겠거니, 둔감해지길 기다렸지만,
아니었다. 골병이 든 것 같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항상 더 큰 기합과 굳은 자세와 양아치스러운 눈빛,
그런 부자연스러운 힘을 줄창 내며 살았다.
악으로 깡으로 스스로를 부풀리지 않으면,
괴로우니까. 곧 비누 거품처럼 사라질까 봐.
그러다 보니 알콜에 의존하게 되었다,
라고 하는 건 너무 멋스러운 핑계일까.
그래, 너무 멋스러운 핑계다.
또 합리화다.
이러한 류의 자기 반성을 내 여태껏 얼마나 해왔던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치자.
반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통렬하게 반성하고 또 반성하자.
솔직히 까고 말하자. 어디서 나 같은 놈을 내가 본다면,
저 놈은 술 때문에 될 것도 안 될 놈이다,
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내가 나에게 관대해지면,
사람들이 나에게 관대하게 대하지 않아도
할 말이 사라진다.
내 스스로 납득할만 한 인간이 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납득해줄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래, 나는 술을 좋아라 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금주를 하겠다는 급진적 선언을 한다고 해도,
어길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다.
실현 가능한 것만 상상하자.
나는 술을 좋아라 하지만,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언젠간 죽더라도 술 때문에는 죽지 말고,
부디 롱런하는 인간이 되도록 하자.
김봉민의 작가는 소리 - 술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