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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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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민 유서, 2012년 12월, 싸이월드에 남겼던

by 김봉민 2015. 4. 3.



2012년에 유서를 쓰고 아직 갱신을 안 했다. 

조만간 유서를 갱신해야 되겠다. 


유서를 남겨두고 사는 건 참으로 안전한 일. 

썼던 유서를 드문드문이라도 다시 보는 건

내 현재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는, 굉장히 고마운 일. 


아무튼 이하, 내 2012년의 유서. 




유서주소복사

작성자
김봉민
작성일
2012.12.0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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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집으로 향하던 나는 뒤통수가 터지는 느낌을 받고
길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누군가 맥주병으로 때린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그런 거였다.
그리고 쓰러진 나는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어서
외로웠고,
이대로 죽는 건가, 두려웠다.



유서 같은 걸 남겨놓지 않은 것도
찝찝했다.

살다보면, 어쩌면 뜻밖에 급사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유서를 남겨놓고 생활하는 게
여러모로 유익할 거 같다.
친구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남겨놓을 테니
혹시라도 내가 갑자기 사라지걸랑,
이것을 순원빌라 201호에 사는 가족들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우선 가족들.
내게 가장 많은 욕을 한 사람들이었다.
진의야 어떻든, 나는 그런 것에 너무 지쳤다.
하지만 효도 같은 걸 한 번도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
내가 먼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평생 막내 티만 낸 거 같다.
화목한 가정이 되길 바란다.
가족은 운명이다.
즐거운 운명이 되길 바란다.

친구들.
고맙고 미안하다.
나도 너희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즐거운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고 싶었는데,
싶었는데, 싶었는데, 싶었는데.
세상은 좆같지만, 인간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며 평생,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라.

형들.
건방지고, 늘 위태위태한 내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조금만 더 견뎌내면 곧 배우로서 유명해질 거라고 믿어요.

몹시나 보고 싶지만,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
당신들이 없었으면 내 인생은
덜 고달팠겠지만,
행복 같은 건 아예 뭔지도 모른 채 살았을 거예요.
고마워요. 오래 오래 사세요.

나는 평생 살면서 남겨놓은 거라곤
글들 뿐이야.
내 컴퓨터에 있는
내 대본들은 김봉주가 알아서 해줘.
모든 권리를 형에게 넘길 테니,
그냥 한번 쭈욱 읽어줘.
그게 내가 살면서 한 전부야.

몸은 어디 기증하고 싶어.
아낌 없이 팍팍팍 나눠주길 바랍니다.

살아있는 건 성스러운 거야.
좋은 거야. 고통은 당연한 거야.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힘을 낼 필요없어.
어차피 저절로 흘러갈 테니까.
그저 이 성스러움을 만끽하자.
내일은 없다. 오직 오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