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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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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민의 작가는 소리 - 이등병 인간

by 김봉민 2015. 5. 19.



인도 다질링의 개. 포토 바이 봉미니즘




전국민의 절반은 싫어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군대에서였다. 이등병 시절 훈련을 받다가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훈련 땐 경계를 서며 밥을 최대한 빨리 먹어야 하는데, 

-안 그러면 갈굼 당하니까- 

나는 이등병이라, 나한테 이렇게 빨리 밥 먹는 능력이 있나, 

새삼 놀라며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 그만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숟가락에 흙과 먼지가 달라붙은 것이다. 

수통에 있는 물로 흙과 먼지를 제거하는 시간조차

갈굼의 소지를 제공하는 게 될 것 같아서 

나는 그 숟가락을 입에 넣고


쪽쪽 빨았다.


입 안에 남은 흙과 먼지는 

침과 함께 뱉어내고, 

다시 부리나케 밥을 먹었다. 

나한테 원래 이렇게 비위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나 놀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내 내 몫의 밥을 해치운 후 고참과

교대를 하고 사주경계를 서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원하지 않게 적(이라 불리는 사람)과 

정말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방금 더러운 숟가락을 

쪽 빨았듯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쏘겠구나.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지 않아 내 삶이 극도로 곤란해진다면, 나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니

내 손의 총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개인은 원하지 않지만, 

시스템이 요구하는, 

그리고 시스템이 조장하는 

상황에 의해 많은 사람이 그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삶이 부디 평온하길 바란다,

라고 쓰는 건 지금의 나로선 합당치 않은, 

허세 결론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으니까. 


다만 나는 나의 바람과 현실 사이에는 항시

엄청난 간극이 늘 존재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죽을 때까지 애써야 하지만, 

그리고 마땅히 그럴 테지만,

아무리 애써도 결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부의 상황과 환경이 있다는 것에 

요즘 많이 기죽어 있다고 스리슬쩍 고백할 뿐이다. 그래, 그뿐이다. 

그러기 싫은데, 

그렇게 해야 할 때, 그렇게 해버렸을 때, 

결국 나는 영원히 이등병이라는 생각에 젖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