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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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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과 후천

by 김봉민 2023. 10. 16.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다. 

 

어디선가 아예 새로운 생활은 하고 싶다.

 

일회적인 경험에 너무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좀 더 항구적인 것. 그 자체로 나를 더 많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는 분명히 다르다. 근데 또, 아주 심하게 다르냐, 라면 

 

그렇지도 않다. 사람은 달라지는 존재인가. 그렇다. 죽어가고 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생명 지속의 측면에선 '악화'라는 변화의 양상 속에서

 

부단히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나는 달라지고 있다. 

 

여행을 가면 그 시간은 즐거울 거 같다. 하루에 쓰는 돈의 액수가 일상 생활 속에서 쓰는 액수보다 

 

상당히 증가할 테니, 그 금액 만큼 즐거울 거다. 그러나 사라진 액수 만큼 또 그늘지게 될 나의 일상. 

 

그리고 우리의 일상. 나는 변화를 원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죽어가고 있다는 주어진 변화 말고, 

 

내가 원하는 식의 변화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식의 변화란 무엇일까. 

 

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가족, 국가, 사회 등의 조건에 의해 나의 시간이 결정되어,

 

사실상 그것들의 노예처럼 사는 것에서 벗어나,

 

내가 선택하는 것에 의해 내 시간이 결정되는 것. 

 

남들 많이들 가는 곳으로는 여행 가고 싶지는 않다.

 

유행을 쫓거나 통념에 복종하고 싶지도 않다. 

 

이마저도 모든 게 내게 미리 입력된 부모의 유전적 경향성에

 

의거한 것일 수 있겠지. 아마 그렇겠지. 그러나 이런 정신을 유지하는 데 

 

투여된 나의 시간도 그 경향성에 의한 것인지는 그 누구도 판별 불가능하므로 

 

나는 상당 부분 나의 후천적 쟁취라고 주장해볼 심산이다. 

 

그러므로 요약하자면 선천에 의한 것이 아닌 후천에 의한 것에 

 

항시 좀 더 가점을 주고 싶다는 거다.

 

어디선가 아예 새로운 생활을 하고 싶은데 이젠 나에게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나 혼자 맘대로는 결정할 수가 없다. 내 선천적 가족들보다 내 후천적 가족들과 내 앞으로의 시간을 

 

더 압도적으로 많이 보내게 될 텐데, 그건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