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앉아 있는데 공기와 맞닿으며 시원함을 느꼈다면
그건 내가 바람의 길을 막았단 거겠지.
영문 없이 눈물이 흐를 거 같은 순간에,
나는 얼마나 많은 걸 무지라는 이름으로 뭉개었을까.
영문 없을 리가 없단 소리다.
자기 유리한 대로 생각하는 오래된 습성까지
스스로 바꿀 괴력이 나에게 없고,
다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걸 재능으로 여기고,
재채기를 한 후에는 내 인근에 나의 침이 묻었는지 정도는
꼼꼼하게 살펴보는 양심도 꾸준하게 발동을 시켜봐야지.
지금 이 순간에도 늙어가는 나의 강아지가 언젠가 죽더라도
속절없이 자책만 하는 뻔뻔함을 헤아려
늙어가고 있다는 말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가급적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어줘야 하겠다.
그건 일단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고,
나 대신 시원할 수 있었으나 내가 거기에 떡하니 앉아 있어
그 기회를 박탈 당한 것들에 대한 아주 작은 두 번째 배려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22세기가 되기 전에
바람의 길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몸뚱아리가 될 것이다.
100%의 확률이라 어떠한 예외적 상상도 부릴 수가 없는
이 엄연한 현실에 너무 기죽지는 말고, 찬찬히 잘 죽어볼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그 과정과 결과가 사랑이라고 나는 앞으로 우겨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