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실명을 거론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녀석이 한 2년 간 나의 전화를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실명 언급은 포기한다. 그래서 가명을 쓰겠다. 가명은 김연소라고 치자. 가명이 김연소인 내 친구를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알게 되었다. 우리는 급우였다. 연소는 여러모로 귀공자 느낌을 주는 녀석이었다. 적당히 유머가 섞인 말도 구사할 줄 알았고, 부자집 아들내미 느낌도 물씬 풍겼다. 장담컨대 1996년 중랑구 일대의 중1 학생 중 연소보다 피부가 하얗고 눈은 낙타처럼 온순하게 크며 헤어스타일은 자연 매직스트레이트 파마를 한 것처럼 찰랑거리는 놈은 없었단 말이다. 특히 그 헤어스타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교칙이라는 우수하고도 우스운 규율에 따라 다들 빡빡머리였음에도 연소의 앞머리는 찰랑거리며 거의 눈을 찌를 기세였다. 녀석은 두발단속을 잘 피해나가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그건 잔머리였다. 비록 키는 작았지만, 13살이라는-녀석과 나는 둘 다 빠른 84년생이라 중학교에 일찍 진학했다- 나이를 감안했을 때, 신장 포텐셜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 작은 키가 귀여움의 한 단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연소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미인상이셨고, 아버지는 탈모가 약간 있지만 깊은 두 눈이 상당히 인상적인 분이었다. 종합하자면 연소는 유전의 푸쉬를 받아 얼굴은 저절로 잘 생기게 태어났고, 유머 감각도 있으며 특유의 후천적 잔머리로 머릿발까지 세울 줄 아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림은 마크 로스코
3년이 지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나는 얼어죽을 또, 남고로, 빌어먹을 남자놈들만 득실거리는 남고로, 연소는 부러워죽을 남녀공학으로, 성장드라마 <사춘기>나 <학교>에서만 봤던 그 남녀공학으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 연소는 비로소 귀공자스러운 외모 덕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비록 여전히 키는 작았지만, 연소는 이병헌의 키도 170센치가 안 된다는 말로 자신의 매력이 작은 키 때문에 평가절하 되어선 안 된다는 나름의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때쯤 녀석은 지가 잘 생겼다는 사실을 굳이 겸손 떨며 아닌 척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스웨그였다. 아주 심한 스웨그였다. 그럼 재수라도 없어야 하는데 연소는 남녀공학에 가더니 여학우들과의 농담따먹기를 통해 유머의 구사가 농익기 시작했다. 따라서 재수가 없긴 커녕 지 잘 생겼다고 말하는 것조차 유머로 승화시키는 수준이 되었다. 또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더욱 힘을 주기 시작했다. 녀석의 부모님께서 한 달에 무스와 젤과 스프레이 구입하는 데 지출하시는 비용이 궁금할 정도였다. 헤어의 멋을 위해 아끼는 법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저런 머리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헤어스타일- 올빽머리를 보란듯이 하고 다녔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누구라도 안 어울릴 그 올빽머리를 누가 봐도 “우, 오, 아”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잘 소화했다는 점이다. 연소는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친구였고, 여자 아이들한테 인기가 심각하게 많았다. 같이 다니면 오랑우탄 취급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연소와 다니는 게 좋았다. 나는 연소의 친한 친구인 것이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애들 2명이 내가 아닌 연소를 짝사랑했다는 걸 알게 되었던 잠깐의 며칠만 뺀다면 말이다.
그림은 마크 로스코
시간이 흘러 연소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머리를 밀고 까까머리를 했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았던 연소는 끝내 173센치까지 자랐고, 사지육신은 더할 나위 없이 멀쩡했다. 게다가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당연히 군발이가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보편적으로 삭발을 하면 난다긴다 하는 연예인들도 흑역사를 남기기 마련인데, 연소는 그때도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중요한 건 얼굴인 건가. 무슨 머리를 해도 나는 연애에 있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태였다) 의정부 306보충대 연병장. 유머를 잘 구사하는 귀공자 연소는 까까머리를 하고, 낙타 같은 눈에서 약간의 눈물을 자신의 하얀 얼굴에 흘리며 군인이 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연소의 입대 현장을 따라갔던 친구들도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울었다. 나와 연소는 20살이었다. (우리는 빠른 84라 19살에 대학생이 됐다) 그냥 숨 쉬는 것만으로도 슬픈 나이였다. 하지만 2년 2개월 후에 다시 연소의 긴 머리를 볼 수 있을 터. 숨만 쉬어도 슬프지만, 숨만 쉬어도 매일 자라는 머리털처럼 앞으로에 대한 희망도 키울 줄 아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까불면 안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내세웠던 교칙보다 우수하고 우스운 규칙 같은 게 세상에도 있으니. 휴가 때마다 만난 연소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일단 원래 지니고 있던 유머 감각이 과격해지고 딱딱해지면서 그걸 더 이상 유머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거지. 군대란 그런 곳이니까. 하얗던 피부는 노리끼리하게 탔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군인만의 건강미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탈모였다. 얘가 왕년의 귀공자였다고?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었다고? 얘가 나보다 나은 게 뭔데? 옆에서 그 영광의 기록을 낱낱이 목격했던 나조차 믿기 어려웠다. 누가 봐도 정도가 심했다. 연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전투모와 하이바를 쓰면 땀이 나는데 탈모를 더 촉진시키는 것 같다고도 했다. 제대만 하면 괜찮아질 거라 연소는 마치 나와 친구들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연소네 아버님 헤어스타일을. 녀석을 중랑구 제일의 귀공자로 만들어준 유전자가 이제 때가 되었으니 녀석을 대머리로 만들겠다며 본격적인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악마 같은 개그 욕심으로 연소의 탈모를 놀리기 시작했다. 친하지 않다면 주먹질이 왕래할 정도로 심하게 놀렸으며, 친한데도 그런 말을 하면 여차하면 주먹질이 오갈 게 예상될 만큼 지독하게 놀렸다. 과거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 2명이 내가 아닌 연소를 짝사랑했던 게 떠올라 앙갚음 하려는 차원에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연소의 급격한 변화가 그렇게라도 웃어 넘길 만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라고 하면 너무 포장한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그림은 마크 로스코
그후로 연소는 당연히 올빽머리를 할 수가 없었다. 연소가 제대를 한 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소의 탈모는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었다. 또한 연소는 그 사이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막아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었으리라. 연소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나는 보았다. 상복 입은 녀석은 당연하게도, 내가 처음 봤던 13살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군대에 끌려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리고 연소는 술을 마시며 주정을 부리거나 감 떨어진 유머감각으로 어떻게든 웃음을 만들어내며 견뎌냈다. 그 견딤은 유전이었을까, 후천적 잔머리의 소산이었을까. 혹은 아무뜻도 없이 때 되면 자라고 때 되면 빠지는 머리칼처럼, 그냥 가만히 있다보니 저절로 견뎌내진 것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 어떻게든 견뎌낸다는 것.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다 가명 같다. 그 현상들의 실명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젠 다시 연소의 멋진 롱 헤어스타일은 볼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연소는 이제 누가 봐도 가발인 줄 모르는 가발을 쓰고 산다. 다시 좀 멋있어졌다. 입대 전 수준 만큼은 아니지만.
그리고 연소는 피부는 하얗고 낙타 같이 순하게 큰 눈을 가진 아기의 아버지가 되었다.
내 친구 귀공자가 다시 올빽머리를 한 것처럼 멋있어 보였다.
김봉민의 작가는 슬픈 뭐뭐 - #2. 슬픈 귀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