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나날은 대규모 광주 아파트 단지처럼 증설되어가고
사용할 것도 아니면서 나는 스포티파이 어플리케이션을
내 PS4에 다운 받았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지겨운 나날에 관한 것이었다.
음악이 내게 필요한 것인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나는 음악 애호가인가. 호강은 내게도 워너비이고,
음악 애호가 아닌 자가 내가 사는 이 땅 인근 5키로 권역 내에
몇이나 될까. 나는 그 중 한 사람인가.
계속 뭐라도 써야만 한다는 중압감에
머리가 붕괴될 것 같았지만,
붕괴는 아파트 단지 같은 것만 되는 것이라
이 역시 지나친 억측에 근거한 구라 서술에 속하겠지.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내게 호몽이라고 부르곤 하는
여자인데 이 여자는 분명히 여자라는 것을 나는 여러 차례
목도했다. 근래에 나는 그럭저럭 산다.
마지 못해 살았던 적도 있었던 것인데
기분도 좋게 나는 그 구체적 일자는 까먹어버렸다.
그런 건 너무 세세히 기억하지 마.
하지만 그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잊지 않기로 결심하고,
우중 러닝을 감행할까 말까 지독한 심적 갈등이 펼쳐진다.
그 결과는 나도 모른다. 너도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
태풍에 휩쓸려 사라진 지겨운 나날의 아파트 단지처럼
슬픈 게 있거든 보기 좋게 붕괴되기를.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우리는 그럭저럭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간다. 과연 나는 우중 러닝을 하게 될까.
그보다 일단 나는 이 글의 제목을 뭘로 할까.
무엇 하나 제대로 알긴 어렵다만,
알 수 없는 인생이란 것 만큼은 잘 아는, 인생이네.
이걸로 제목을 삼자. 행복을 바라는 것마저
쑥스럽게 여기며 언감생심인 듯 살지는 말아야지.
간절하지만 소박한 여름밤이다. 우중러닝은 가겠다.
제목을 바꿔야지. 바꾸면 안 될 이유 같은 건 내 인근 50키로 내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