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서울예대 극작과에 합격한, 나의 제자가 수행했던
과제를 살펴보는 시리즈의 9번째 포스팅이다.
이 전에 올렸던 포스팅들도 읽어보면 막막한 입시 준비에 있어
지대한 도움이 될 거라고 자부하는 바이다.
https://vongmeanism.tistory.com/826
그럼 각설하고, 실기 작문 쓰는 절차와 기술을 알아보자.
연습 작문을 쓰려면 일단 연습용 시제가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시제가 나왔다 치자.
[시제]
커튼을 젖히면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커튼을 젖혀야만 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려운 시제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제는 어려운 걸로 골라 연습해야 한다.
쉬운 시제로는 거의 모든 입시생이 글을 쓸 수 있지만, 시험장에서 어려운 시제가 나오면?
태반이 끝까지 다 쓰는 것조차 버거워 한다. 시험의 본질은 준비되지 않은 자를
걸러내는 것에 있다. 시제는 그래서 대개 어렵게 나오는 것이다.
그래야 준비 안 된 입시생의 글을 수월하게 걸러낼 수 있으니.
그리고 이렇게 시제가 나오면?
일단 로그라인부터 작성해야 한다. 나의 제자는 아래와 같이 로그라인을 작성했다.
[로그라인]
주인공 수식어 : 사기를 당해 빚쟁이가 된 아버지. 한 딸의 아빠.
욕망 : 목숨을 돈으로 바꿔주는 옷장 커튼을 통해 돈을 벌겠다.
방해물 : 청설모. 노숙자. 앵무새와 딸.
딱 봐도 짧고 간단하게 로그라인을 작성했다.
그러나 짧다고 로그라인을 무시하면 안 된다.
사실상 본문 전체 내용의 8할은 이 로그라인이 그 방향성을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주인공 수식어는 전체 작문의 디테일을 결정한다.
잘 보자.
주인공 수식어 : 사기를 당해 빚쟁이가 된 아버지. 한 딸의 아빠.
이게 아니라,
주인공 수식어 : 사기를 쳐서 부자가 된 아버지. 한 딸의 아빠.
라고 설정했다 치자. 상상만 해봐도 전체 내용이 얼마나 많이 바뀔지,
예상이 가지 않는가?
또한 내가 누누이 말했듯, 로그라인의 욕망은 그 이야기의 미션을 담당한다.
욕망 : 목숨을 돈으로 바꿔주는 옷장 커튼을 통해 돈을 벌겠다.
-> 이제 본문은 이 욕망에 대한 주인공의 노력과 시도로 그 내용이 정해진 것이다.
그리고 방해물은 그러한 주인공의 노력과 시도에 방해가 되는 디테일로서
글의 생생함을 제공해줄 것이다.
내 제자는 이 로그라인을 토대로 개요를 다음과 같이 작성했다.
[개요]
서- 부동산 사기를 당해 잃은 돈을 도박으로 복구하려 했지 만 빚은 눈덩이처럼 불 어났다. 나 빚쟁이의 협박을 받고 있다. 결국 딸과 함께 산 속 으로 도망. 딸은 자신 이 아끼는 앵무새와 새장을 들고 왔다. 나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챙겼다. 산 속 천막 발견(벌레가 들끓음). 천막에 옷장. 열어보니 커튼. 파리가 커튼 속으로 들어감. 200원. 심상치 않음을 느낌. 구더기 넣는다. 200원. 애완견 50,000원.
목숨을 돈으로 바꿔주는 옷장이 분명. 이 옷장을 통해 돈을 벌어 빚을 갚겠다.
본1- 산속을 뒤진다. 어떻게든 값비싼 생명체를 찾아야 한다. 청설모 잡는다. 커튼을 열고 옷장에 넣는다. 40,000원.
본2- 산속을 뒤진다. 약수터 노숙자 발견. 이승철 – 희야를 부르고 있다. 먹을 거로 노숙 자를 꼬드긴다. 희야를 부르며 계속 따라온다. 노숙자를 커튼 속에 넣는다.
500,000원.
본3- 딸의 실수로 앵무새가 옷장 안으로 들어간다. 딸도 따라
들어간다. 10,20,000원.
가결- 딸을 꺼내야 한다. 돈을 다시 넣으면?
꺾기- 20,000원을 도로 넣는다. 청설모가 나온다. 파리의 날개가.
500,000원 도로 넣는다. 노숙자 나온다. 천막 밖으로 뛰어가 청설모처럼 나무를 오른 다.
520,000원 도로 넣는다. 딸과 앵무새가 나온다. 앵무새는 구더기의 몸. 꿈틀 거린다.
딸을 정상적이다. 다행이다. 딸을 안고 부둥켜 운다. 딸이 속삭인다.
진결- 희야, 날 좀 바라봐.
개요가 나왔으면, 작문에 있어 내가 그토록 강조하는
이야기의 구조에 대한 계획이 나온 거다.
건물로 치면 뼈대가 세워졌다.
그럼 이제 필요한 건? '구체적으로 쓰기' 기술의 시전이다.
이건 내가 프로그램 시작과 동시에 하드 트레이닝 시키는 기술이다.
근데 구체적으로 쓰기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포스팅이 너무 길어지니
아래 접어두기를 통해 내가 제작한 교본에 실린 '구체적으로 쓰기' 파트에 실린
내용을 넣어두겠다.
클릭하면, 구체적으로 쓰기라는 게 뭔지 매우 촘촘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엄청 기니, 일단은 넘어가자. 전체 내용이 궁금하면 내가 제작한 아래의
서울예대 극작과 실기 작문 합격 교본을 다운 받길.
https://drive.google.com/file/d/1hmE-ms4qwJnC1v7pc4bPHKDRrLFwguRS/view?usp=share_link
8장. 구체적으로 쓰기 ; 인테리어가 구리면, 그 집은 별로다
건축으로 치면 로그라인과 개요 짜기는 설계와 뼈대 세우기에 해당한다. 이제 시작이다.
건축은 인테리어까지 제대로 되어야 끝인 거다. ‘구체적으로 쓰기’ 능력이 있어야
글짓기의 인테리어를 훌륭히 해내게 된다.
‘구체적으로 쓰기’를 통해 내 글의 인테리어가 남루하고 곰팡이 냄새 가득한,
방치된 산장이 되느냐, 아니면 보는 사람마다 ‘우와~’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러블리 하우스가 되느냐가 달려있다.
고유명사와 세밀한 수치, 그리고 현장 라이브 중계식의 묘사로 써주자.
예시를 보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그냥 문장 단위로 그저 구체적으로 써주면 된다. 아래 예시를 보면 이해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라는 단순 문장보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이 하나의 문장만을 보고 글발이 있단 생각이 들긴 하는가?
어림도 없다. 대신,
"나는 그녀를 만나고 지구 평화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에볼라 창궐에 대한 대책 강구에 세계 각국 정상들이 더 많이 애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IS의 테러 행위가 박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조속한 안정화에도 신경쓰게 되었다. 에볼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IS 테러가 우리나라에 펼쳐지고, 후쿠시마 원자력의 영향이 우리나라에 미치게 된다면, 행여 그녀의 무병장수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녀는 건강해야만 한다. 반드시 나와 함께 노인이 되어야 한다. 그녀가 늙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꾸준히 관찰하는 것이 내 유일한 꿈이 되었다."
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써준다면? 말하는 건 똑같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라는 걸 말하고 있으나,
읽을 땐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에볼라
IS
일본 후쿠시마
같은 고유명사가 있음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고유명사가 끼치는 영향는 생각보다 크다. 또다른 예시들을 살펴볼까?
평온하다
잠이 온다. 잘 수 있다. 침대 위에 눕는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ᅠ
친구들은 이런 내 맘을 알까.ᅠ
친구들은 회사에서 일하며 땀 빼고 있겠지.ᅠ
어제는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평온한ᅠ
하루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기쁘다.ᅠ행복한 하루다.ᅠ
별로다, 읽히지 않는다, 읽기 싫어진다. 고유명사가 있나? 없다!
반면 같은 것도 이렇게 쓰면 달라진다.
평온하다
눈꺼풀이 1톤이 된 기분. 이케아에서 32만원 주고 산 스코레르 침대 위에 눕는다.ᅠ
1톤이 2톤이 된다.ᅠ3개월 전, 2만 5천원 주고 산 분홍색 이불로 몸을 덮는다.ᅠ
내 뻐드렁니가 더욱 빛을 발한다. 희희희.ᅠ
상형이는 이런 내 맘을 알까.ᅠ
상형이는 대머리와 가발, 그 미세한 사이로ᅠ
왕방울만 한 땀을 흘리며 자기가 노예로 복무 중인 쿠팡의
3분기 실적을 엑셀 표로 옮기고 있을 것이다.
어제는 첨삭을 23개나 해야했다.
그래도 덕분에 이런 하루를 맞이 하게 되.. 졸.. 쿨쿨...
같은 ‘평온하다’이지만 위의 것보다는 낫다.
글발이 있다고는 안 하겠다. 그러나 여하간 낫다. 그걸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에 기인한다.
고유명사와 세밀한 수치, 그리고 현장 라이브 중계식의 묘사!
다른 예시도 더 있다. 계속 보자.
화가 난다
화가 난다. 짜증이 나고, 뭔가 나쁜 것만 생각한다.ᅠ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것까지 상상한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참아야지,ᅠ
그럴수록 상상은 멈추지 않고, 더 못 된 생각을 한다.ᅠ
무언가를 부숴 버리고 싶다. 아름다운 것은 없애 버리고 싶다.ᅠ
그냥 SNS에 떠돌아다니는 중2병 글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내가 심사한다면, 100% 불합격시킬 것이다. 대신 이렇게 쓰자.
화가 난다
면목역으로 가는 길, 문득 나는, 지구 멸망에 대해 상상했다.ᅠ
천조국 미국에서 핵폭탄 1000개를 불시에 세계 방방곡곡으로 발사시켜버리면 좋겠다!
정말로 지구가 완전히 멸망하면 곤란하겠으나, 까짓 거 절반의 멸망 정도는 괜찮잖아?
갑자기 침도 뱉고 싶다. 청와대 지붕에다가 한 2리터 남짓, 카악 퉤에.ᅠ
저 푸르른 가로수는 뿌리째 뽑아 두만강까지 던져 버리고 싶다.ᅠ
아름다운 초록색 잎사귀를 차마 볼 수가 없으니까.ᅠ
위의 예시들은 무엇이 더 나은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실제 구체적으로 쓰기 연습은 다르다.
한 문단에 어떠한 이야기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
한 문장 단위로 자신이 연습하는 오늘의 키워드를 반영해서 쓰면 된다.
한 문당 안에 무조건 고유명사를 넣겠다고 맘을 먹자.
야심
여의도 센트럴파크를 조망할 수 있는 랜드마크타워 펜트하우스에서 살겠다. 펜트하우스 테라스에서 에피타이저로 노루고기를 구워 먹으며 여의도의 야경을 감상하겠다. 여의도가 아니라면 합정 메세나폴리스 펜트하우스에 살겠다. 용산 센트럴파크타워 펜트하우스에 살겠다. 벤츠와 마세라티, 아우디를 전부 사서 하루에 한 대씩 바꿔 타겠다. 강화도와 제주도, 강릉에 별장을 지어놓고 휴가 시즌 때마다 친구들을 버스 리무진으로 초대하여 최고급 한우를 구워먹는 바비큐 파티를 하겠다. 아침 점심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겠다. 작품을 쉬는 달에는 타이페이, 방콕, 마카오에 휴양을 가겠다. 몸이 뻐근할 때에는 아이슬란드로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서 레이캬비크의 온천수에 뭉친 근육을 풀겠다. 오늘 밥이 땡기는 것이 없으면 LA로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서 LA갈비를 먹겠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로부터 현금을 끌어 모으는 대작을 만들겠다.
겁
다이슨 청소기의 모터기가 폭발하여 파편들이 내 목으로 날아와 꽂힐까봐 두렵다. 삼성 노트북이 과열로 폭발하여 액정이 내 얼굴을 녹일까봐 두렵다. 갤럭시S7의 배터리가 폭발할까봐 두렵다. 도화현대1차아파트 정문의 유리 천장이 깨져서 내 정수리에 박힐까봐 두렵다. 마포장난감대여점이 나에게 무너질까봐 두렵다. 공덕역을 IS가 폭탄테러를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코웨이 정수기에 누군가가 독극물을 풀어놓지는 않았을까 두렵다. 당산역에서 내리는 순간 아반테가 나를 박는 것은 아닐지 두렵다. 신한은행에서 내일부터 고객님과의 거래를 종료하며 예금액은 모두 몰수한다고 할까봐 두렵다. CJ헬로비전에서 기업 내부 정보 누설죄로 나를 고소할까봐 두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를 고소할까봐 두렵다. 고려대학교에서 이메일로 나의 입학기록과 졸업기록을 삭제한다고 통보할까봐 두렵다.
구체적으로 썼을 때 개성이 확실히 부여되고, 생생함이 생긴다.
철학책이 읽기 힘든 이유는 추상명사 위주여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책은 다르다. 대개의 철학책보단 읽기 쉽다.
고유명사 위주이며 구체적으로 쓰여진다. 생생하다. 진짜 같다. 읽기에 수월하다.
안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는 게 아니다.
이건 암기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연습을 통해 자기 실력이 키워졌을 때 드디어 의미 있어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쓰기 연습이 안 되었을 때, 작문을 하면 다음과 같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시 작문을 보자.
[제시어 : 잘생겼다]
“풀밭에 누워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거야.”
공원 풀밭에 누워 건넨 아버지의 첫 마디. 궁금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과연 어떤 행복인지.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실 뿐. 매번 회사 일로 지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아버지. 어린 나로서는 그런 아버지의 머릿속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 확신했다.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나 또한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에 빠져있었다.
‘수험번호 100210. K대학교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피땀 흘리며 공들였던 6년의 세월이 허망해지는 순간. 내 표정을 읽은 듯 어머니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SKY를 희망하는 학부모 중 하나였으니까. 나 또한 어머니만큼이나 하늘(SKY)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화창한 하늘을 비상하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10대의 절반을 바쳤다. 그 하늘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오늘 그 하늘은 무너졌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서 자습서를 꺼내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광활하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만끽하리라. 이제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의 방으로 돌아와 자습서를 펼쳐든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좀 더 높이 날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야욕에 과감하게 첫 1년의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어머니의 바람대로 하늘(SKY)을 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제법 괜찮은 대학에 입학했다. 무엇보다도 창공을 날아다닐 생각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아직 자유롭게 날기에는 아직 난 많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취업을 해야 진정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지’라는 친구들의 걱정 어린 조언에 뒤늦게 부랴부랴 새로운 하늘을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직장을 구하는 때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비상(飛上)의 공간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일자리는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도 난 어딘가에 숨어 있을 내 하늘을 찾고 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변변치 않으나 제법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직장에 가까스로 입사할 수 있었다. 새로운 하늘을 맞이하니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이 된다. 그래도 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리라 호기롭게 회사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하지만 회사 안의 삶은 회사 밖의 삶과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이겨내는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인간관계는 어느덧 관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날아다니고 싶다는 꿈은 그저 포장된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할 일만을 묵묵히 해내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애초에 계약된 내용이었으니. 그걸 받아들인 나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주변 동료들은 ‘내 이 더러워서 올해까지만 일하고 때려친다.’라고 투덜대며 이직을 꿈꾼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곳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찬란한 하늘은 아니라는 것을.
야근이 끝났다. 어느덧 오후 9시다. 회사 밖을 나서니 하늘이 컴컴하다. 새들이 날아다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사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 보니, 지구에 제대로 하늘이 붙어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늘이 전부 무너진 것이 확실하다. 하늘이 무너진 빈자리에는 매연과 술 내음새로 가득하다. 답답한 회사의 공기를 벗어났다 싶었지만 바깥의 공기도 생각만큼 상쾌하진 않았다. 정녕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하늘은 없는 것인가. 무너진 하늘을 바라보며, 순간 아버지와 함께 바라본 하늘이 생각난다. 그 하늘은 굳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저 공원에 누워 고개를 치켜들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휴식을 가져다 줄 뿐. 그것이야 말로 이제껏 나내가 그토록 바라던 하늘이다. 그간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엉뚱한 하늘을 좇아 돌아다닌 건 아닐런지 후회가 밀려온다. 내일 출근길에는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하늘이 무너지지 않고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물론 해내기란 쉽지만은 않을 듯. 오늘 회식을 제대로 견뎌낼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니까.
-끝-
여러가지 단점이 존재하는 작문인데, 여기서 가장 주목할 것은
이 작문이 드럽게 안 읽힌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쓰기 연습이 안 된 상태에서
글을 쓰니 이렇게 되었다.
이 작문을 쓴 자는 후에 구체적으로 쓰기를 연마한 후 공채에 합격했다.
여러분도 반드시 익혀야 한다.
하루에 2개의 키워드를 총 에이포 2/3장을 채우는 연습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30분 안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
내가 추천하는 키워드는 철학자 스피노자가 분류한 인간의 48가지 감정들이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으로 쓰기를 위한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목록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반감
-박애
-연민
-회한
-당황
-경멸
-잔혹함
-욕망
-동경
-멸시
-절망
-음주욕
-과대평가
-호의
-환희
-영광
-감사
-겸손
-분노
-질투
-적의
-조롱
-욕정
-탐식
-두려움
-동정
-공손
-미움
-후회
-끌림
-치욕
-겁
-확신
-희망
-오만
-소심함
-쾌감
-슬픔
-수치심
-복수심
구체적으로 쓰기 능력을 열심히 키워왔다면 본문은 금방 쓴다.
아래와 같이 내 제자는 본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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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파란 천막의 옷장, 그리고 커튼
나의 딸 서진이와, 애완견 밍키와, 서진이가 지극히도 아끼는 앵무새 한 마리와 함께 산을 올랐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었고, 그 돈을 복구하려 도박에 손을 대자 그나마 있던 푼돈도 사라져버렸다. 애엄마는 가정을 제치고 도망갔다.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못 이겨, 다섯 살 딸 서진이와 함께 밍키와 앵무새와 함께 석성산으로 도망을 왔다.
무작정 도망을 온 탓이라, 나조차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무숲 속 사이로 파란 천막이 보였고, 서진이와 나는 파란 천막으로 향했다. 5평도 안 되는 파란 천막의 집은 주인이 없어보였다. 그저 나의 키 두 배만한 고동색 옷장이 떡하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벌레가 좀 들끓긴 하지만, 이곳이라면 며칠 간 사채업자를 피해 숨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동색 옷장을 열어보았다. 생필품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터였다.
옷장 안엔 빨간 커튼이 쳐져 있었고, 나는 커튼을 젖혔다. 나의 귀에 앵앵거리던 파리 한 마리가 옷장 커튼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200원의 동전이 나의 등산화 앞에 던져졌다. 옷장 안에서 나온 동전이었다.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구석에 꿈틀거리던 구더기를 옷장 커튼 안으로 잡아 던졌다. 다시 200원의 동전... 나는, 밍키를 옷장 안으로 들이 밀었다. 딸 서진이가 놀래 옷장 안으로 달려드는 걸 간신히 막았다. 50,000원 신사임당 지폐가 옷장 안에서 뱉어졌다. 이건, 확실하다. 이 옷장은 목숨을 돈으로 환산해주는 옷장이다. 이건 신이 주신 기회일 터였다. 이 옷장을 이용해 돈을 벌어, 딸 서진이와 함께 집에 돌아가 행복하게 살겠다. 옷장의 커튼을 젖히면 누군가는 반드시 죽지만, 나는 반드시 커튼을 젖혀야 한다.
나는 산속을 미친 듯이 뒤졌다.
어떻게든 생명체를 찾아야 했다. 딸 서진이에겐 옷장 근처는 가지도 말라며 으름장을 두고 왔다. 등산로 쪽 바위 위에 청설모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숨죽여 살금살금 다가가 청설모를 낚아챘다. 청설모는 몸부림쳤지만, 나의 손아귀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파란 천막으로 향했다. 서진이는 울고 있었다. 밍키를 잃은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앵무새는 연신 짹짹댔다. 서진이의 우는 소리와 앵무새의 짹짹 소리가 나를 짜증나게 했다. 옷장을 열어 커튼을 신경질 적으로 젖혔다. 그리고 청설모를 커튼 속으로 던졌다. 40,000원의 지폐가 옷장 안에서 나왔다.
다시 산속을 미친 듯이 뒤졌다.
동물로는, 동물 목숨의 푼돈으로는 빚을 갚으려면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생명체를 찾아야 했다. 청설모처럼 하등한 동물 생명체 말고, 인간, 인간을 찾아야 했다. 어느새 밤이 어두워졌다. 나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때, 멀리서 사람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희야, 날 좀 바라봐. 너는 나를 좋아 했잖아.
소리를 따라 가보니 약수터가 나왔다. 회색 장발 머리에 수염이 무성한 노인이 바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찾던 인간이었다. 그것도, 신분 없는 노숙자는 내가 찾는 인간 기준에 아주 적절했다. 나는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노인은 정신이 오락가락해보였다. 대화를 할 때에도 희야, 날 좀 바라봐, 만을 중얼거렸다. 나는 노인을 꽤 쉽게 파란 천막으로 유인할 수 있었다. 먹을 것을 준다고 하니 순순히 따라왔다. 딸 서진이는 새장 안의 앵무새를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젖혔다.
500,000원 돈뭉치가 나왔다. 노숙자라 값이 떨어지는 것인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500,000원의 돈뭉치를 허무하게 보고 있었는데, 귀 옆으로 퍼드득 소리가 들렸다. 앵무새였다. 앵무새는 급속도로 커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딸 서진이가 비명을 지르며 옷장으로 달려왔다. 딸 서진이도 금새 빨려 들어갔다. 너무 갑작스레 펼쳐진 일이라, 도저히 막을 방도가 없었다. 옷장 안에서, 1,020,000원이 떨어져 나왔다.
딸, 딸 서진이를 구해야 했다. 커튼 속으로 들어가 딸을 구하자니 나또한 한낱 지폐 따위가 될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봤다. 돈, 돈을 다시 넣으면, 서진이가 돌아오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옷장으로 번 돈을 모두 쓸어 모았다. 그리곤 옷장 속으로 던졌다. 1,610,400원이 커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첫 번째로 나온 것은, 청설모였다. 청설모는 등에 날개를 달고 있었고, 마치 파리처럼 손을 연신 비볐다.
두 번째로 나온 것은, 회색 장발의 노인 노숙자였다. 노숙자는 청설모처럼 손을 모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천막 밖으로 네 발로 뛰쳐나가 나무를 올랐다.
세 번째로 나온 것은, 앵무새였다. 대가리는 앵무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몸은 구더기였다. 앵무새는 짹짹 거리며 연신 꿈틀거렸다.
네 번째로, 나의 딸 서진이가 나왔다. 서진이의 외면은 멀쩡했다. 다행이었다. 안도감에 눈물이 흘렀다. 서진이를 부둥켜안았다.
그때, 서진이는 나의 귀에 속삭였다.
희야, 날 좀 바라봐. 너는 나를, 좋아 했잖아.
-끝-
자, 정리하자. 실기 작문 쓰는 절차와 기술을.
1. 시제를 토대로 로그라인을 작성한다
2.로그라인을 토대로 개요를 작성한다
3.그렇게 나온 개요를 보며 '구체적으로 쓰기'를 시전해 본문을 쓴다
이게 다다. 내가 이 포스팅을 남기는 이유는 하나다. 너무도 많은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생들이
시제 나오면 바로 본문 쓰기에 돌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무 계획도 없이, 로그라인과 개요를 통해 이야기 구조도 짜지 않고,
본문을 쓴단 말이다. 그건 곧, 전 서울예대 극작과따위엔 사실 입학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과 다름이 없다.
글쓰기는 기술이다. 기술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현재 글 잘 쓰는 사람을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들이 뽑는 거라 착각하지 마라.
그나마 글쓰기 기술을 배워, 앞으로 학교에 입학하면 더 극작에 대해 잘 배울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벌써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하면,
그냥 바로 지금부터 프로 작가로 활동하면 되는 거 아닌가?
오만은 무지를 불러오고, 무지는 자기 참사로 이어진다.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생에게 참사란 당연히, 불합격이다.
배우자. 연습하자. 글쓰기 기술을 배우자.
그래야 참사가 아니라,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이라는 행운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실기 작문 쓰는 절차와 기술 ㅣ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의 입시 준비법#9ㅣ 극작과 수시 과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