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 아래 작문을 보자.
서울예대 극작과에 합격한 내 제자가 썼던 연습 작문이다.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를 준비하며 연습 작문을 쓰는 족족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온다면,
실기 작문에서 떨어질 위험은 극히 낮아진다.
그러나 극작과 입시는, 실기 작문만 보는 게 아니다.
2차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가 가려진다.
그러니 오늘은 이 2차 면접에 관해 얘기해볼까 한다.
https://vongmeanism.tistory.com/793
극작과는 극작에 대해 공부하는 학과다.
그리고 극작의 신이 있다면, 그의 이름은 셰익스피어일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 죽은 지 500년이 넘었는데도
계속 공연이 세계 곳곳에서 상연되고 있다.
그의 희곡들은 영화로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곧 일흔이 되시는 우리 어머니도 셰익스피어를 아신다.
극작과에 입학하게 되면, 당연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만하게 된다.
어떠한 방향으로든 극작을 공부하게 된다면 무조건 한 번은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이름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여기에 극작 입시에 관한 중요한 단초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매하게 주구장창 실기 작문만 준비해선 안 된다.
실기 작문이 입시 전형의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2차 면접 준비까지 온전히 해놔야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를 준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면접에서 교수들은 무엇을 물어볼까?
너는 민주당을 지지하니, 국민의힘을 지지하니?
같은 걸 물어볼 리가 없다.
그딴 건 안 물어본단 말이다.
예대 극작과에 지망한 본인과 극작과 관련된 것들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일테면,
제일 좋아하는 극작가는 뭐니?
제일 감명 깊게 읽는 희곡은 뭐니?
너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예술가는 누구니?
같은 걸 물어보게 되어 있단 뜻이다.
그랬을 때, 누굴 언급하고 어떤 작품에 관해 말하는 게
보다 더 준비된, 미래의 극작과 학생으로 보일까?
셰익스피어
안톤 체홉
소포클레스
베케트
브레히트
뷰흐너
이강백
몰리에르
등의 역사상 위대한 작가들을 언급하는 게 좋을까,
극단적 예이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의 시나리오를 쓴 김유성님,
혹은 <웅남이>의 시나리오를 쓴 박성광님,
또는 <클레멘타인> 각본을 맡으신 은혜림님을 언급하는 게 좋을까.
<내가 제작한 극작과 실기 작문 합격 교본이다. 클릭하라! 무료다!>
아래는 2차 면접을 앞두고 내가 내 제자에게 쓰게 했던 글이다.
그렇다. 저~~ 위에 있는 작문을 써낸 제자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비롯, 나는 역사상 고전으로 불리우는 숱한 작품들을
읽고 분석하게 한다. 고전을 읽어야만 자기 수준을 높이고, 그렇게 높아진 수준에 의거해
자연스럽게 면접장에 가서도 자신의 인사이트를 교수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내 제자는 예대 극작과에 최종 합격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
4대 비극을 다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위대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위대함을 알고 싶어 열심히 서치를 해보던 와중, 자신이 셰익스피어 마니아라 주장하는 이의 블로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게다가, <한여름 밤의 꿈> 작품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딱 5막만을 떼어서 좋아한다고 했다. 현대예술양식을 그대로 예견하고 있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나도 그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으니, <한여름 밤의 꿈>을 다시 한 번 검토하기로 하곤 책을 폈다.
이럴수가!
셰익스피어는 통찰 빼면 시체라는데, 그 통찰의 수준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통찰이라기보단, 예견, 예언 등의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의 수준 높은 통찰이었다. 마법을 통해 진실된 사랑을 찾은 인물들과, 부조리극을 펼치는 일꾼들, 그리고 퍽의 양해를 비롯한 사과.
우리의 연극(예술)이 부조리극을 거치며 많이 혼란스러워하겠지만, 꼭, 반드시, 클래시컬한 연극으로 다시금 진실을 보여주겠다며,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퍽의 대사를 보자마자, 나는 경탄했다.
아! 셰익스피어는 이런 것이구나! 클래식은 이런 것이구나! 고전은 이런 것이구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내다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4대 비극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실 <리어왕>의 명확한 주제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한여름 밤의 꿈>의 충격을 기억하며, 그 통찰의 압도적임을 기억하며 읽기 시작했다.
인간의 의심, 우유부단함, 야망, 그릇된 진실을 고대그리스의 형식을 이어받아 아크플롯의 확대로 보여주고 있고, 무엇보다 1500~1600년대 쓰여진 작품인데도 불구, 현재까지로 이어지는 인간군상이 보인다. 그의 통찰은 예견, 예언의 수준인 것이다.
나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존경심은 <템페스트>에서 정점을 찍었다. <템페스트>까지 읽으니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이 연작희곡처럼 느껴졌다. 우리 인간은 고통스럽고, 욕망짙고, 의심하고, 때론 즐겁고, 표독스럽고, 악랄하고, 무식하고, 때론 사랑하고, 서로를 죽이고, 비난하고, 헐뜯는다. 그러나, 나는 용서와 관용으로 이 세상을 덮은 채, 나의 마법을 이 바다에 던지고 떠나겠다. 그리고, “여러분의 너그러운 숨결로 저의 돛들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을 즐겁게 해드리는 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자신의 예술을 예술로만 기억하지 말고, 실제 삶을 살아가는 데 도구로 사용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듯,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전혀 고지식한 게 아니다. 고리타분한 게 아니다. 고전은 우리의 거울이다! 나는 햄릿이자, 오셀로이자, 맥베스이자, 리어... 음, 리어왕을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다.
어쨌든, 나라는 인간 내면에도, 모든 위대한 클래식의 인물들이 형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셰익스피어는, 가장 대표적이자, 그 예시를 아주 적절하게 들어준다.
너무 셰익스피어한테 환장한 글 아니냐고?
아니.
저걸로도 부족하다.
현존하는 모든 작가들 중, 셰익스피어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자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셰익스피어가 집대성한 아크플롯이 여전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연극에서
쓰이고 있다. 그만큼 절대적인 극작가다.
고로, 극작계의 고전 작품을 두고 어렵다느니, 지루하다느니, 말하는 건 본인이 극작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고전을 공부해야만 고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단초가 제공된다.
그리고 그 단초가 제공되기 이전에, 면접에서도 보다 성숙하고 수준 높은 자기 인사이트를
교수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는 법이다.
내 제자는 셰익스피어 뿐 아니라, 정말 수많은 작품을 읽고 분석문을 썼다.
읽은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
HOOK
각자의 상처를 지닌 네 가족의 하루.
HOLD
각자 마음속에 품고있는 의심과 불안.
언제 누군가의 갈등이 터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관계.
얽혀진 듯, 얽혀지지 않은 듯, 불안불안한 가족들.
에드먼드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메리의 이중적.
과거에 묶여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
PAY OFF
가족이라서 더 아픈 사람들.
[주제]
밤의 어둠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 하지만 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명대사]
-메리-
과거는 바로 현재에요. 안 그래요?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 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죠.
[자유서술]
밤으로의 긴 여로는, 낯설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나만 해도 (작품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가족들에게 적절한 혐오와 사랑이 공존한다. 인물들의 대화가 갑갑했지만, 점점 우리 가족이 겹쳐보이며 정말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가족이기 때문에 더 사랑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더 미워하는 존재가 아닐까.
작품 속에 인물들의 서술이 아주 구체적으로 되어 있는데, 유진 오닐의 유년기를 담은 작품인 것을 알고 그 서술들이 그렇게 슬플 수 없었다. 자신의 치부를, 또는 자신의 가족의 치부를 써내려가는 그 감정은 어땠을까. 건방지게 짐작하자면, 작품을 쓰면서 용서의 감정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일본 영화 [걸어도 걸어도] 에서는, ‘걸어도 걸어도 꼭 한 발 짝 늦는 가족의 관계’라고 했다. 그렇다고 한 발 짝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 한 발 짝씩 늦기에 더 애틋하고 그렇게 늦기에 가족이니까. 가족이 ‘사랑’만으로 가득 찼다는 고정적인 생각은 벗어난 지 오래다. 미워도 미운대로 가족이다. ‘가족’이란 단어는 허물이다.
읽은 작품 [야끼니꾸 드래곤] 정의신 ★★★★★
HOOK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재일한국인들의 갈등.
HOLD
작품 속에 놓여있는 유머.
관서지방도시 환경의 곱창집을 내세워 새로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와 갈등.
적절한 반복의 코믹.
시즈카, 용길의 신체적 결핍.
일본어와 한국어의 소통의 재미. (바디랭귀지 등.)
인물들간의 피어나는 사랑 또는
인물들간의 져버리는 사랑.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철거’에 관한 갈등 속에서
개인적이고 사적인 갈등이 피어오름.
PAY OFF
재일한국인들의 차별의 아픔, 버려진 것에 대한 아픔.
그리고, 그들의 엿보이는 우리와 같은 인간적임.
[주제]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명대사]
-용길-
마치 돌멩이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간단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냐? 우리도 인간이야. 당신들과 똑같은 인간이야.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만 해?
[자유서술]
야끼니꾸드래곤을 보며 인물 관계도를 그리자 하나의 빽빽한 거미줄이 형성됐다. 그만큼 각 인물들이 하나 씩은 갈등을 가지고 있고, 한 쌍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각 인물들의 서사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깔린 것은 전쟁으로 인해 버려진 재일한국인들의 삶의 이야기다. 정의신 작가님은 대사 속에 차별의 아픔과 버려졌다는 것에 대한 슬픔을 담으면서도, 그들의 우리와 같은 ‘인간적임’을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하신 듯한 느낌이다.
그들도 똑같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며, 사랑을 피우고, 사랑을 지기도 한다. 또, 유부남에게 홀리기도 하고,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하고, 학교에서 받는 왕따의 아픔을 겪는다. 작품은 ‘재일한국인’들의 특별함이 아니라, ‘재일한국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그들과 우리는 똑같은 ‘인간’임을 인식시켜 친밀해진 관계 속에서 차별의 아픔,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 해 우리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작품은 봄에서 시작해 1년 후 여름으로 끝난다. 봄에서 시작해 여름으로 끝나는 구성. 그들은 이제 겨우 한 단계 성장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충우돌한 행복하고, 황당하고, 아픈 일을 지나쳤지만, 겨우 한 단계를 밟아왔을 뿐이다. 그들은 아직, 많은 차별 속에서, 아픔 속에서, 때론 사랑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읽은 작품 [사천의 선인]
HOOK
창녀 셴테의 선함에 감동받은 신들은 셴테에게 돈을 내어준다. 셴테는 그 돈으로 담배가게를 차렸고, 지속해서 선함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다.
HOLD
-‘신’이라는 존재가 그닥 대우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새로움.
-설화자의 참여로써 사건을 연결해주고, 중단해주며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해준다.
-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말함으로써 무대에 대한 환상을 깨버린다. (낯설게 한다.)
-중간중간 삽입 된 노래의 암시적인 가사들.
-극중극의 왕과 신들의 의견의 교환이 작품을 환기 시켜주며, 지치지 않게 해준다.
-전 집주인 가족들의 엽기적인 행각들.
-셴테가 슈이타로 변했을 때 달라지는 주변인들의 반응.
PAY OFF
‘선한 인간’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주제]
나쁜 상황에 놓인 착한 여자의 이야기.
[명대사]
-셴테-
하지만 모든 게 너무 비싸서 착하게 살 자신이 없어요.
[자유서술]
연극을 올릴 때면, 누구나 자신들의 연극에 관객들이 푹 빠지길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그 푹 빠짐을 거부한다. 해설자가 등장하거나,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등 무대를 깨버림으로써 관객들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요구한다.
어쩌면 브레히트는 ‘객관적인 눈’이야말로 자신의 연극을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한 거 같다. 어렸을 때 세뇌당해왔던 교육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재차 바라봤을 때, 그때야 말로 정말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브레히트는 그런 눈을 원했던 걸까?
사회 풍자극은 자신만의 시선을 요구하는 것들이 많은데,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고 직접 생각하게 하는 새로움이 참신했다.
저번에 올린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입시에 있어
불합격엔 불운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 떨어질 만 하니까 떨어질 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죽어라 공부하고 준비했는데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에 떨어질 리 없다,
라는 정신상태로 공부하고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안일했던 정신을 뜯어고치고 입시생 본분에 충실해져 밤이고 낮이고
극작에 대해 천착해야 한다. 그러지도 않고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길 바라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다. 누구든 붙을 수 있다. 합격이 당연한 수준으로 공부하고 연습하고 준비하면.
셰익스피어! 고전을 읽어라 ㅣ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의 입시 준비법ㅣ 작문 실기 과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