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문을 가지고 왔다. SBS나 tvN나 JTBC 중 하나 합격한
예능 공채 PD 최종 합격자의 작문이니, 제목에서도 봤듯, 당연히 예능형 작문이다.
예능형 작문??
그게 뭔지 궁금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건 일단 이 작문의 본문과 로그라인, 개요를 본 후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번 포스팅은 15번째 포스팅인데
내가 그전에 올렸던 예능 공채 PD 최종합격자 시리즈들도
본다면 요긴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길.
https://vongmeanism.tistory.com/770
그리고 내가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는 수강생들은 모두,
내가 제작한 아래의 교본에 적힌 내용에 의거해 연습하고 공부했다.
공채 PD 합격자들도 마찬가지다. 작문과 논술, 기획안 등, 철저히 교본에 입각하여
스토리텔링 원칙주의자가 된 결과, 공채에 합격한 것이다.
그럼 바로 보자!
시제: 안경이 있어야만 세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안경 없이 세상을 또렷하게 보게 되는 이야기를 만드시오.
[눈에 뵈는 게 없어]
“아아악!!!! 말도 안돼!!!”
우지끈, 소리가 나며 빨간 안경이 두 동강 났다. 왼쪽 눈 –0.6, 오른쪽 눈 –0.5에 근시까지 1m 반경의 시계도 희뿌옇게 보였다. 시력이 워낙 좋지 않아서 바로 주문할 수 있는 일회용 렌즈도 없다. 시청역 앞, 소개팅 30분 전, 금요일 저녁이라 버스가 더 막힐 수도 있다. 서둘러 안경을 주문시켜 놓고, 옷장으로 간다.
‘잠깐만, 생각보다 옷핏, 나쁘지 않은데?’ 키 155cm, 몸무게 80kg의 체형은 늘 프리사이즈만 찾는 인생이었다. 조금이라도 노출이 있는 블라우스는 늘 옷장 한 켠에 쟁여놓고, 검은색, 회색, 남색의 무채색 티셔츠, 청바지를 입었다. 그런데, 잠깐, 지금은...꽤 날씬하잖아? 시야가 뿌연 덕분인지, 어쩐지 옷핏이 나쁘지 않다. 얼굴도 필터를 낀 것 같이 매끈하다. 다시 옷장을 열고, 저번 달에 샀다 쟁여놓은, 쇄골이 훤히 보이는 흰색 블라우스, 무릎 위로 올라온 미니스커트를 집는다.
“어떤 거 드실래요?”
“아무거나요.”
소개팅남의 반응이 심심하다. 예전 같았으면, “네...저...두...요..” 이러고 말았겠지. 하지만, 오늘의 나는 옷핏도 괜찮고, 외모도 상급이다. “에이, 그 소리가 제일 답답하죠. 먹고 싶은 거 말해주세요.” 그러자 남자도 움찔한다. “아...뉴욕 스트립 먹을까요?” 그때부터 남자도 입이 풀린다. 뉴욕 스테이크 맛집부터 뉴욕 여행으로 대화 소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남자, 예쁜 여자 사람이랑 오랜만에 만나서 긴장했나 보다.
앞장선 2차, 이태원 B1 클럽 앞.
“몇 명이세요? 이쪽으로 들어오...저희가 두 분은 입장이 안될 것 같네요.” 입구에 서 있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이 입구에서 막는다. 그때, 소개팅남이 내 옷깃을 끈다. “저희 그냥 오늘은 가죠...” 잠깐만, 오늘 같은 날에 나를 막을 수는 없지. 경호원이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소개팅남을 붙잡고 클럽 입구로 직행한다. 저기요, 경호원의 소리는 EDM과 힙합 음악에 금방 묻힌다. 술기운과 뿌연 연기 사이에서 두듬칫 몸을 흔드니 흥이 올라온다. 주체할 수 없는 흥은 스테이지로 이어진다. 어느덧 무대 위, 사람들의 환호성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다음날 아침,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띵동-. 소리에 문 앞을 나가 보니, 택배 상자에 아이즈원안경원이라고 적혀 있다. 어제 주문한 안경이 그새 도착했다. 안경을 끼고, 거울 앞에 선다. “이게...나라고?” 불현 듯, 어제의 꿈만 같았던 뿌옇던 현실이 걷힌다. 키 155cm, 몸무게 80kg의 뚱녀는 여전했다. 꿈만 같았던 어젯밤, 자신감의 근원은 역시 눈에 뵈는 게 없어서였다.
띠리링-. 그때 휴대폰 알람이 뜬다.
‘어제 집 잘 들어갔어요? 덕분에 너무 재미있게 놀았네요^^’
소개팅남도 재미있었다면, 다행이지. 그냥 인사치레라도 보내줬다는 게 고맙다.
다시 띠리링-. ‘오늘 주말인데, 뭐해요?’
나한테 정말 관심이 있나, 의구심이 쏟구치는 그때, 다시 거울이 보인다. 고개를 양옆으로 젓는다. 그리고 답장을 보낸다. ‘저한테 관심 있어요?’
띠리링-. ‘관심 있으니까 이렇게 연락하죠. 주연씨 재미있고, 자신감 있고, 예뻐서 좋아요.’
다시 거울을 본다. 그리고 안경을 벗는다. 어제의 눈에 뵈는 게 없는, 재미있고, 자신감 넘치고, 예쁜 나다. 우지끈-. 다시 안경을 두 동강 낸다. 당분간은 눈에 뵈는 게 없이 다녀야할 것 같다.
다시 답장을 보낸다. ‘오늘 저녁에 보죠.’
-끝-
위의 작문은 그냥 본문부터 술술 쓴 게 아니다.
로그라인과 개요 없이 글 쓰는 걸 나는 용납치 않는다.
튼실한 이야기 구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붕괴되어 버린다. 무조건 로그라인과 개요를 짜야 하는 것이다!!
아래 로그라인과 개요를 보자.
#2 미녀는 괴로워
1. 로그라인
*미션형 작문
미션: 오늘 소개팅은 안경 없이 나가야 한다.
주인공 수식어: 키 155cm에 몸무게 80kg의 뚱녀.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함. 남들이 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위축됨. 심한 난시, 근시로 인해 일회용 렌즈, 안경도 바로 구할 수는 없는 상황.
주인공 원초적 욕망: 오늘 소개팅은 안경 없이 나가야 한다.
방해 요소: 옷핏이 잘 보이지 않음. 소개팅 상대방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음. 눈치가 보이지 않아 행동이 과감해짐.
2. 개요 분석 (예시임. 가짜결말 -꺾기-진짜결말로 뚜렷하게 나뉘지 않더라도 이걸 기본 기준으로 삼아서 분석함)
-서: 오늘 소개팅은 안경 없이 나가야 한다.
-본1: 소개팅을 나가기 위해 옷을 입음->잘 보이지 않아 거울 앞의 내 옷핏이 나쁘지 않게 느껴짐->남들 보기에 괜찮은 옷이 아니라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고름.
- 본 2: 소개팅 상대방과 만남->상대방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 대화에 위축되기보다 대화를 주도함->대화가 잘 이어짐.
- 본 3: 눈치를 보지 않고, 가고 싶었던 클럽을 2차로 감->나서서 춤을 춤.
-가결: 집에 도착한 다음, 주문한 안경을 택배로 받음.
-꺾기: 소개팅남이 애프터 신청+나에 대한 칭찬(재미있고, 자신감 있고, 예쁜 사람)
-진결: 안경을 쓰고,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나. 안경이 없는 뒤에야 내가 나에 대한 편견이라는 안경을 썼고, 스스로 제한을 뒀다는 것을 알게 됨.
이런 걸 하루에 4개는 짜게 하고, 그 중 고퀄이 될 수 있는 괜찮은 로그라인과 개요만을
통과시켜 본문을 쓰게 한다. 그리고 그걸 자기만의 레퍼런스가 될 때까지 수정하게 한다.
통과되지 않은 로그라인과 개요는 과감히 버린다.
자기만의 레퍼런스 작문이 많은 언시생이 최종 공채 합격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예능형 작문'이 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일단 그러기 위해선 예능형 작문이 아닌 작문을 보는 게 좋겠다.
제시어-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물쭈물하다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리 할아버지 묘비명이다. 내가 요람에 있을 때부터 아버지는 이 얘기를 해주셨다. 말도 못하는 애기한테 부디 잘 크라는 바람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일찍 여윈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교훈삼아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다. 그 덕분에 ‘우물쭈물하지 않는’ 우리 어머니를 만났고, 젊은 나이에 대기업의 중견 간부가 되어 고액 연봉자 반열에 올라섰다. 나도 아버지의 경제적 혜택을 받아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른 친구들과 달리 영어유치원, 독서교실, 스피치 학원 등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거듭나기 위한 예비학습을 받았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은 지나갔다.
사립초등학교와 사립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는 엘리트들의 전당인 외고에 입성했다. 이 공간에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물쭈물할 새가 없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도 보고, 부모 몰래 ‘못된 짓’을 하면서 추억을 쌓는 ‘평범한’ 애들과 달리 이곳의 학생들은 청소년기의 추억을 유예하고 공부에만 힘썼다. 이들에게는 성적의 등락과 대학의 간판이 지상최대의 관심사였다. 나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의 청소년기를 유예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에 투자했고, 성적이 안 오르는 과목은 고액과외를 해서라도 성적을 끌어올렸다. 결국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공부’라는 두 글자 이외에 남은 것이 없었다.
그 결과 나는 효자가 되었다. 한국 최고의 명문 사립 K대에 입학한 것이다. 부모님은 “앞으론 니 세상이다”라고 하시며 아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고, 그 이후로 나를 ‘방목’하셨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처럼 ‘자유로운 보헤미안’을 꿈꿨다. 청소년 시기에 못했던 연애, 음악 동아리 등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실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취업난이라는 이 시대의 참상은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다. 미래세대의 고용불안을 예견한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나의 가슴을 후벼왔고 위기의식을 가져다주었다. 내 주변에는 사회·경제적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소년기의 공부여독을 풀어대는 자유로운 군상들이 존재했지만, 즐기는 삶에 대한 유예가 습관화된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도서관을 향했다. 방학 때 유럽여행도 갔고 미국에 어학연수도 다녀왔지만 이 모든 건 취업만을 위한 발판이었다. 대학 시절 역시 고등학생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지나가 버렸다. 대학시절을 우물쭈물하지 않게 보낸 덕분에 졸업하자마자 메이저 언론사에 입사했다.
어느 덧 장구한 세월이 흘러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되었다. 은퇴할 시점이 조금씩 다가왔고, 노후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노인답게 평온한 삶을 살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내 후배가 나의 노후를 급박하게 만들었다. 그는 알량한 기자 퇴직금으로는 취업 못한 자식들 부양도 힘들고 노후도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사학위라도 딴 후, 대학에서 겸임교수라도 하면서 65세까지 버텨야 한다고 했다. 나이 50대에 박사라…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일리는 있어보였다. 내 자식 놈들 역시 후배 놈 자식들처럼 취업을 못했다. 결국 나도 후배와 같이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특수대학원에 들어갔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보니 피로가 쌓였지만 버텨보기로 했다. 3년 정도 그런 세월을 보낸 후, 박사학위를 땄다. 얼마 후에는 운 좋게 지방대학의 언론정보학부 교수로 임용되었다. 65세까지 일할 기회도 얻었고, 은퇴 이후 막대한 교원연금도 확보했다. 노후를 유예하고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달려간 결과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호흡기에 의지한 체 병실에 누워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앞에는 가족, 친구들이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다. 내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유예할 수는 있었지만, 결코 내 죽음을 유예할 수는 없었다. 많은 이들의 슬픈 눈길을 뒤로 하고 나는 눈을 감았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나의 묘비명이 새겨졌다.
“우물쭈물하지 않았는데 내 이럴 줄은 몰랐지”
-끝-
이건 시교 피디 지망생의 작문이다. 퀄리티가 매우 높은 것은 아니다만,
이걸 보고, '으!! 너무 구려!!'라는 평가가 따른다면 그건 너무 박한 평가겠지.
일정 수준의 퀄리티가 갖춰진 작문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 작문은 그야말로 시사적이고도 교양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런 장르의 작문을 예능PD 지망생이 시험장에서 쓴다면, 그야말로 애매하겠지.
이 점에 대해선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능형 작문이란,
1) 대부분 코미디 기반의 내용이다.
2) 몰지각한 기자 언시생들이 그토록 울부짖는 '사회적 메시지'의 함정에 굳이 빠질 필요는 없다.
3) 비교적 가벼운 소재를 다뤄도 된다
4) 비교적 무거운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게 블랙코미디라면 예능형 작문이 되기도 한다
5) 특수서식 활용도 가능하다
https://vongmeanism.tistory.com/767
특수서식형 작문의 경우엔 위의 링크를 클릭하면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퀄리티가 높은 작문이더라도 예능형 작문에 속하지 않는다면,
심사관으로부터 애매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예능PD 지망생이라면 가급적 예능형 작문을 쓰는 것에 집중하자.
+마찬가지 의미로 시교 PD 지망생이라면 시교PD를 써야 하겠지.
시교 피디 지망생인데 시험장에서 예능형 작문을 써놓고 필기에서 떨어졌다고
울분을 토해봤자, 소용이 없다!
#15. 예능형 작문이란? ㅣSBS나 tvN나 JTBC 중 하나 합격했음 ㅣ 예능 공채 PD 최종 합격자 시리즈 ㅣ 언론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