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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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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탈출.

by 김봉민 2022. 12. 1.

나는 먹는 걸 즐겨하는 타입의 소년이 아니었다. 

안 먹으면 배고프니까 때가 되었을 때 허기가 가실 정도로만 먹었다. 

많이 먹는 사람들을 이해 못 했다. 뚱뚱한 애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되게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도 없었다. 배불러지는 게 싫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걸 쓰는 이유는 일단 내가 현재 배고프기 때문이고, 

그다음은 내가 먹는 걸 좋아하는 중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먹는 걸 좋아한다. 맛없는 걸 누가 좋아하나. 맛있는 걸 좋아한다. 

살면서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었던 건 무엇이었나.

인도 다질링에서 먹었던 티벳 음식. 뗌뚝. 그래. 

나 인도에서 몸무게 10키로 빠졌었지. 

인도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거의 뭘 먹질 않았다. 

그러다 뗌뚝. 거의 한국 수제비랑 동일하다 해도 무방한 음식이었다. 

너무 고마웠다. 다질링에 있었던 보름 동안 매일 먹었지. 

그 사이 다시 살도 좀 올라 남은 여행을 힘차게 보낼 수 있었다. 

인도에 가기 전에 나는 회사원이었다가 회사 다니기 싫어서 8개월 만에 사표를 썼었지. 

머저리 같은 비즈니스에 동참해야만 하는 상황이 싫었지. 

그리고 나는 싫은 건 온몸으로 싫다는 티를 내는 타입의 소년이 아니었다. 

참았다. 침묵했다. 그러다 나는 중1에 신경성 위궤양을 앓게 되었고,

그래서 빈속이 되면 위산 과다로 인해 배가 죽도록 아팠다. 

생존을 위해 무어라도 입에 집어넣어야 했다. 나는 뭔가 먹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게 아니라, 

뭔가를 먹어야만 덜 아프다는 실존의 문제 속에 있었다. 

뗌뚝을 다질링에서 먹기 전에 나는 초코과자가 주식이었다. 

거기에 코카콜라. 그걸로 때웠다. 죽어도 마살라 소스가 들어간 인도 음식은 먹을 수가 없었다.

회사원 시절에는 먹기 싫은 베트남 쌀국수를 일주일에 서너 번, 점심 시간에 먹어야 했다.

회사 상사들이 쌀국수에 아주 환장을 했었고, 회사 방침상 무조건 같이 가서 먹어야 점심 식사가 

회사 경비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쌀국수를 먹어야만 내 월급이 아껴지기 때문에 

쌀국수를 배에 집어 넣는 것에 진지하게 임했다. 나는 그랬던 나에게서 탈출하였다. 

한심하게 여겼던 뚱뚱이의 모습을 하게 되었고, 죽어도 하기 싫은 건 안 할 수 있으며 

가고 싶은 곳엔 갈 수 있다. 일테면 올해 안에 가고 싶으면 인도 다질링에 또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맛있는 걸 좋아하는 중년이기에, 여러 핑계들을 종합적으로 모아, 

지금 쓰고 있는 이걸 다 쓰면, 바로 밖에 나가서 집 근처 술집에서 소주에 회를 먹기로 결심을 한다. 

고생했다. 누군가 내 다리에 와사바리 걸어 나를 자빠뜨릴 순 있어도 내가 다시 일어나려는 건 

그 누구도 못 막았다. 맛있는 걸 배 터지게 먹으며 지금의 이 탈출을 만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