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

잡상

by 김봉민 2022. 4. 27.

-미스터리와 희비와 크리티컬

 

-무엇을 바라는지 생각해봤는데, 딱히 늘 하고 싶은 게 없는 걸 보면, 정말로 열망하고 있는 건 없더라 

 

-시간 축내는 방법을 찾고자 게임을 해봤지만 한 이틀 하고 나면 그마저도 지겨워지고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가볼까 하는데 때마침 유순이가 자기도 의자 위에 앉고 싶다며 올려달라고 한다 

 

-결국 오도 가도 못 하는 형국이 되었을 때에서만 비로소 글을 쓰게 되는 것마냥 이러고 있다 

 

-자전거 타는 것에도 싫증이 나버렸어. 늘 같은 코스를 타서 그래

 

-미스터리, 희비극, 크리티컬. 이전엔 판타지, 코미디, 휴머니즘이었다. 

 

-바다를 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건 유구한 나의 전통이다. 물을 싫어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누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막상 누굴 만나든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고, 듣고 싶은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는 게 예측되기 때문에 혼자 있는 편이 편하다 

 

-아주 오래 전에 들린 파열음 

 

-그것은 농구가 아니었다. 미니 농구였다. 순원빌라 201호, 집 벽에 걸어놓은 미니 농구 골대. 그리고 농구공이 아닌, 농구공 흉내를 낸 작은 탱탱볼. 그걸로 농구를 하는 시늉을 하는 게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날도 나는 중1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 전날, 가채점 결과 시험을 잘 보고 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아 미니 농구를 하고 있었다. 나 혼자 하는 쉐도우 가짜 농구 말이다. 그때, 딱 지금의 유순이 만한 하얀개 삐삐만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내일 시험만 잘 보면 반에서 족히 3~4등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해 하며 마치 마이클 조단이라도 된 것처럼 내 방 안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러다 들린 소리는 쿵. 그후 바로 악. 창밖을 내다보며 길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을 보는 건 나의 2번째 취미였다. 나는 뭔가 일이 생겼나 싶어 밖을 내다 보았다. 길거리엔 나보다 일찍 시험을 마치고 안방에서 자던 김봉주가 누워 있었다. 쿵 소리도, 악 소리도 김봉주의 것이었다. 이게 다 뭐지. 어쨌든 2층에서 떨어진 거로구나. 나는 119에 태어나 처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김봉주는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고 행인들은 그런 김봉주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좆된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대로 잘 살아왔다

 

-그건 김봉주와 그 잔당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게 아니라 온전히 나 혼자의 발악이 이룬 결실인 것이다 

 

-내게 종종 보고 싶다고 언제든 연락 달라는 어머니는 사실 나의 재수와 삼수는 내내 묵언으로 반대했는데 김봉주의 5수는 끝까지 지원해줬으며 내가 죽도로 힘들어 보증금 300만원만 빌려달라고 했을 때 연락을 씹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노인대학 기말고사 기간이라 시험 공부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내게, 연락이 안 되는 김봉주에게 보증금 1000만원 정도 해주고 싶다고, 김봉주에게 네가 동생이니 먼저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일평생 개쌍욕을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아버지와 계획해 내게는 매달 자신들의 건보료를 대신 내달라는 조건으로 1000만원을 빌려준다고 했다. 그깟 건보료는 내줄 수 있지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일평생 노려왔던 '아들자식의 빨대화, 혹은 노예화'에 신물이 났다.  김봉주는 내 신분증을 도용해서 통장을 만들어 내 명의로 인체생동성 실험을 몇 년 동안 받았던 게 들통이 났는데 알고 보니 내 명의로 통장을 몇 개 더 만들었었다. 아버지는 말을 말자. 내 마음에 주입된 분노의 7할 지분은 그에게 있다. 나는 어느 날 아버지 몸에 칼을 꽂는 상상을 하고 질색팔색이 되어 집을 나온 후 다시는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엄마는 노인대학 기말고사 기간이 너무도 중요해서 나의 연락을 씹었다. 

 

-어머니는 나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이제는 완연히 늙어버린, 약자의 얼굴로 나를 다시 착취할 궁리에 빠진 것이다. 

 

-서울 면목동 빌라 최대한 비싸게 팔고 지방 내려 가서 편히 사시라. 나보다 재산이 최소 30배는 많으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산이고 나발이고 바라는 건 하나도 없으니 알아서들 제발 사시라. 

 

-이런 내가 어떻게 휴머니즘에 대해 쓰냐? 

 

-이미 나는 이렇게나 잘 살아온 사람이다. 더 잘 살 필요 없다. 이걸로도 충분한 사람이다. 

 

-나 역시 충분히 개좆 같은 인간이다. 그렇기에 거리 유지가 필수다. 똥통에 같이 들어가 괜한 기대감을 품으며 뒤섞이며 그 전보다 훨씬 더 개좆 같은 형국이 되게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으리. 

 

-어울리지 않으면 된다. 그게 다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증명하겠다고 주장해봤자 그건 그냥 이빨 까는 것에 불과하다

 

-무엇을 포기했는지, 인생으로 입증해야만 믿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