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게 일종의 사고 알고리즘에 따르는 부산물이라 치자.
연료가 주인된 자동차 엔진이 부왕부왕 거릴 때 나오는 매연 같은 거라 쳐보자는 거다.
그럼 이 매연은 박멸되어야 마땅한 것인가.
때문에 감정에 따라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
감정보단 이성에 의존해 살아야 좋은 건가.
그래서 배기관을 아예 틀어 막으면 이 자동차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남들보다 좀 더 감정이 풍부한 건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인 건가.
어른다운 것이 그저 한낱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수한 모순을
그러려니 하는 것인가. 배기관에서 분노의 매연을 내뿜지 않고자
엔진 가동을 최소화 해야 하는 것인가.
내 마음은 그래서 이토록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는 것인가.
이것조차 내 것이 아니라 남의 말에 글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 것일까.
당연히 감정이란 건 일종의 사고 알고리즘에 따르는 부산물이 아니다.
매연도 아닐 것이다. 감정 없이 이성적 사고만 존재하는 것을 로봇이라 부른다.
지극히 인간답게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감정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고자 한 적은 없다.
나름의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보고 그걸 실현해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럴 때 그 모든 걸 괜찮다고 자위하지 아니 하고
성실히 아파야 할 만큼 아픔을 느끼며 있었다. 거의 모든 계획이 현실화 되어,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울 때 행복과 기쁨을 느껴도 되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엔
마땅히 반대의 감정도 느꼈던 것이다.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두었고,
매연이라고는 하지만 맹독성은 아닌, 참을 만큼의 연기를 내뿜으며 여기까지 왔다.
내 감정은 나의 것이다. 어찌 보면 내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이성이 작동하는 것 아닐까.
무엇이 닭이고 달걀인지 헷갈린다만, 최소한 나는 내 감정을 을로 취급하지는 않아야겠다.
이성의 갑질에 침묵하지 않고, 그렇다고 감정을 갑으로 두지도 않고,
두루두루 존중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