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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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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과 박상하

by 김봉민 2020. 12. 17.

 

최완이라는 놈이 있었다. 그놈의 아버지가 초등교사였던 걸로 기억하고,

최완의 친할아버지는 내가 사는 면목8동 반지하 2칸짜리 집 앞에서 걸으면

1분 안에 도착하는, 6층짜리 건물과 그 근방의 수 백평 땅을 지닌 부자였다.

최완의 누나 이름도 기억이 난다. 최지우 누나였는데, 그 누나 성격이 천사였다.

최완은 내게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내 입장에선 반쯤 괴롭힘이었다. 어찌 저찌 친하게 지내는 것도 같았으나,

기본적으론 나를 업신여기는 것 같았다. 최완에겐 특유의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5학년 때였나, 점심 무렵 나는 집앞에 나와 테니스공으로 앞집 벽에 공을 던지며

나 홀로 투수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집으로 아빠가 뚜우벅 뚜우벅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놀라운 건 아빠의 옷차림이었다. 노가다맨이었던 아빠의 복장을 그때 처음 봤다.

남루했다. 투벅투벅 걸어오는 아빠에게 쭈뼛쭈뼛 인사하곤 어디 다녀온 거냐고 물으니

일 끝나고 집에 온 거라고 했다. 어디서 일했는데 이렇게 일찍 와? 어, 저기서 일했어.

'저기'는 곧 최완 할아버지네 건물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최완 뿐 아니라, 최완 같은 부류의 새끼들이 싫어졌다.

아빠는 그때 퇴근을 1분만에 한 것에 무척이나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는 아빠의 그 표정이 떠오를수록 최완을 족치고 싶었지만, 

내겐 그런 능력이 없었다. 나는 씨발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그런다고 최완과 최완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내게 딱히 더 나쁘게 대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후로 용돈 많이 받던 최완에게 학교 앞 떡볶이를 누차 얻어먹는 걸 좋아했다.

오히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살던 면목본동 순원빌라 201호 앞 놀이터 반지하에 사는

같은 반  박상하라는 녀석과 친하게 지내다가, 그 놈이 어느날 밤 놀이터에서

이혼한 부모님 사이에 대한 괴로움, 그리고 계속되는

아버지의 언어폭력 때문에 지겨운 삶을 토로하며 내 앞에서 펑펑 울자,

그 이후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었다.

내게 있어선 내 가족들이 더 큰 형벌이고, 나는 그걸 꾹꾹 참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너의 그 같잖은 가족사의 고충까지

내가 왜 듣고 앉아있어야 하는 것이냐, 너는 한 번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냐? 라는 매커니즘이 발동을 했던 것으로 추측을 해보는데,

갑자기 별 설명도 없이 거리를 두니, 박상하 입장에선 황당하고 난처했을 거 같다.

박상하는 나나, 나 같은 부류의 새끼들을 그후로 계속 싫어했을 수도 있다.

지금 여기에 미안했음, 이라 쓴다고 박상하에게 전달될 리도 없다.

그건 그냥 나 편하자고 하는 기만이다. 난감하고, 막막하다. 박상하에게도

최완의 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면목8동 건물과 땅이 있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왜 나는 나인 것이고, 최완은 최완인 것이며, 박상하는 박상하인 것이었을까.

지금 나는 어떻게 사는가. 녀석들은 어떻게 사는가. 잊고 살면 편하다.

오늘도 밤낮으로 아빠가 나에게 뚜우벅 뚜우벅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