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3일
내가 하고 있는 알바-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주업-가
알바이니 만큼, 나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많이 하게 된다.
제대로 상담해주려면 제대로 듣고 이해해야 되므로 최선을 다해
순간순간 마음을 다해야 한다. 막 되게 어려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쉬운 것만도 아니다.
나는 사실 상담가가 아니라 그저 내가 듣고 보고 느끼고
그리하여 생각한 것을 전력을 다해 글로 남기는, 1차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몰입가에 가까운데, 남의 고민을 최선을 다해
내 안으로 수렴해야 한다니... 좀 안 맞는다.
근데 도둑질도 하다보면 는다고, 이것도 별 수 없이
비법 같은 걸 나름 터특케 되었다.
아주 구체적인 솔루션만 가급적 말하게 된 것이다.
큰 걸 말해봤자, 그건 어디까지나 나한테서 비롯된 생각. 도움이 안 된다.
정말 구체적인 것만 제안해야 한다.
(이건 내가 나 자신을 고민할 때도 똑같이 적용하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러한 구체적 솔루션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고민 상담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토로하고 싶은 거다. 괴로우니까 괴롭다고 쏟아내고 싶은 마음인 거다.
그럼 나는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기분으로 있어야 한다.
독한 말 몇 마디 날린다고 해서 상대방이 바뀔 리가 없다.
그래, 버려라, 버려. 그 감정을 너만큼은 아니지만
네 괴로운 표정과 네 목소리의 떨림과 눈에 맺힌 수분을 보니
나도 덩달아 괴로워진다. 그래도 버려라.
그러니 나한테 다달이 수업료 명목으로 돈을 주는 것일 테니,
라는 마음으로 버틴다. 정말 쓰레기통이 된 기분으로
말없이 들어주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상담의 끝에 해주는 말이 꼭 있다.
“너도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의 쓰레기통이 되어줘야만 한다.
아낌없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런 마음의 여유를 마련하고 타인을 위하지도 못할 거면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세상 살면,
너만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반드시, 미래엔 쓰레기통이 되어주어라.“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정 그렇게 못 살겠으면, 죽어라.
근데 정말 죽기 전에 내게 전화해라.
내 기분도 생각해줘야지.
나랑 만나서 같이 소주 한 병 마시고 죽어라.
이건 내가 그 친구들 같았을 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만약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면 내가 진짜 죽고 싶어졌을 때
정말로 자살을 감행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친구들도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런 기분을 느끼길 바랐다.
그리고 아직 다행히 정말로 자살한 친구는 없다.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다.
가급적 모쪼록 노인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1차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몰입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최종적으로는 ‘타인을 향한 수다쟁이’가 되어야 하는 것을 잊어선 안 되겠다.
타인에 대한 상상과 배려와 존중감 없이
나에 대한 몰입을 해버리는 것은 그저 자폐아에 그칠 뿐이다.
나의 최종 목적이 타인을 위함이라는 걸 문신하듯 여기에 이렇게 새겨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나의 알바에서 기인한다. 좋은 알바 하나가 괴로운 본업 열 개보다 좋을 때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