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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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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킥

by 김봉민 2020. 12. 18.

김봉주와 첨예하게 서로 노려보며 가장 상스러운 말들을 주고 받고 있었다. 

순원빌라 201호에서 이따금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신세였다. 중3 겨울방학이 되기 전까지 내 키는 반에서

베스트3 안에 들 정도로 작았다. 반면 김봉주는 나보다 15센치 이상 컸다. 

나이도 3살 많아 발육 상태의 간격이 컸다. 게다가 어느 법률에 형은 동생을 때릴 수 있지만, 

동생은 형을 때려선 안 된다는 조항이 쓰여지기라도 한 거 마냥 

내가 가끔 물리적으로 김봉주에게 가해를 하려 하면 무심히 TV를 보던 엄마는 

나를 호되게 나무랐다. 김봉주는 가상에 존재하는 법률 조항의 혜택을 누리며 나를 팰 수 있었다. 

난장이가 아니라 꼬맹이였던 나는 중3 겨울방학의 정점에 김봉주 만해졌다. 

그간 참아온 독기 또한 피크를 찍었다. 상상의 영역에선 수차례 살해의 대상이었던 김봉주의 

배에 나는 프론트킥을 날렸다. 갑작스런 일격에 그는 배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퓨즈가 나가버린 나는 내가 내뱉을 수 있는 저주의 말들을 모두 쏟아냈다. 

엄마는 티브이 시청을 중단하고는 쓰러진 김봉주와 광분한 나 사이에 개입하였다. 

나는 엄마가 김봉주 편을 드는 게 꼴보기 싫어, 그때쯤 장만했던 

짝퉁 휠라 흰색 츄리닝의 위와 아래를 냉큼 갖춰입은 후 집밖으로 나섰다. 

현관문을 닫을 때도 프론트킥을 활용했던 게 기억난다. 

밤12시를 맞아  더욱 따가워진 겨울 공기를 뚫고 아무데나 쏘다녔다. 

양아치 무리에게 걸리면 쳐맞을 것이 자명했음에도

아무도 나를 건들 수 없다며, 내 인생은 내 것이라며, 혼자 웅얼거렸다. 

그날 밤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집을 나올 때의 호기, 내 소중한 호기를

굴욕적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마저 잃으면 나는 꼬맹이였던 청소년이 아니라

여전히 난쟁이란 걸 입증하는 꼴이 된다 여겼다. 

그날 밤 나는 결국 순찰 중이던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나는 그냥 산책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경찰들은 내 말에 신뢰를 했다. 

혹은, 신뢰하는 척을 했다. 그것도 아니면  파출소에 날 데리고 가

집에 연락해 부모를 호출하고, 부모가 오기 전까지  나를 좋은 말로 꾸짖다가 마침내

부모에게 중3 비행 청소년을 인도해야 하는 과정이 

귀찮으므로 얼추 경찰관로서 응당 해야 할 기본 서비스만 제공하고는 자리를 뜬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차라리 파출소에라도 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연행 되고 싶었다. 산책 중이라고 얼버무린 나의 

질 낮은 연기에 제발 경찰들이 속지 않아주길 바랐다. 

겨울밤은 길었다. 나는 항시 그랬듯 돈도 없었다.

어느 빌라의 지하 주차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았다.

츄리닝 위에 파카를 입고 나왔어야 했다고 자책하며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아침이 되면 인석이네 집에 찾아가야지. 일단 거기서 밥을 얻어먹고 따듯한 곳에 누워 

잠을 자야지. 잠을 자야지. 아무도 나를 건들 수 없게, 어서 어른이 되어야지. 

내 인생은 내 거야. 내 인생은 내 거야. 어른이 되어야지. 잠을 자야지. 

눈을 감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프론트킥을 내뻗으며, 나는 웅크린 채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