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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루한 세상에 너를 만난 건

by 김봉민 2020. 12. 9.

불의의 일격과 이격과 삼격을 당하고는 

길바닥 구석과 중앙 사이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우박 같은 설움이 쏟아져서 

차마 쾌청한 표정은 짓지 못 하고 볼썽 사나운 몸짓으로 

꽥꽥 소리를 지르지도 못 하고 

어쩌면 이건 다 거짓말일지 몰라

그렇기에 너는 올해의 슬픔으로 등재되어 

내게 달콤한 진실을 말한다

이 비루한 세상에 너를 만난 건 

행운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불운도 아니었고, 

그 모든 걸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리 캐물어보아도 조용하게 침투해오는 슬픔의 이름을 

오늘부터는 게으른 죽음이라 부르리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또 있으랴 

어디서 본 싯구를 흉내내면서

이 비루한 세상에 너를 만난 건 

이 비루한 세상에 너를 만난 건

이 비루한 세상에 너를 만난 건

내가 어떻게 명명해야 하는지 폭풍 같은 오전을 보낸 후, 

어느 점심 쯤에나 헤아려볼 수 있을까 

칼을 들고 서울 종로로 가면서 국수집에 들러 

칼을 주고는 칼국수를 만들어주세요, 라고 하는 허튼 망상으로도 

이 비루한 세상에 너를 만난 건 잊혀지지를 않았어 

우박 같은 설움이 그치면 

다정하게 종로 말고 면목동으로 너를 이끌고 가 

크리스탈떡볶이를 맛보게 해줄 수도 있겠지 

그날이 온다면, 그날이 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