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6일
나는 언제라도 이 모든 걸 나 스스로 끝내거나 관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의 범주는 놀랍게도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데,
가장 큰 지분은 아무래도 고민과 상상과 분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글을 쓰는 것 때문에 상상한다거나,
그게 잘 안 되어서 고민한다거나, 그게 깊어져서 분노하느니
그냥 아무것도 쓰지 말자고. 나는 정말 끝내거나 관둘 수 있다.
정 안 되면 자살 같은 것도 감행할 수 있다. 이 무슨 끔찍한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자살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 할 뿐.
나도 그렇다.
나는 자살을 할 수 있으나 하지 않는다. 사건, 사고에 휘말려
급사하지 않는 한, 나는 살아있을 것이다. 자살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삶이란 뜻은 아니다. 나는 살아있을 것, 에 방점을 찍겠다.
하나 더 충분히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내가 언제든지
고민과 상상과 분노에 찌든 내 자신이 싫어지면
자살이라는 결단을 내릴 것인데, 앞서 말했듯 나는 자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겠단 뜻이다. 살아있어서 응당 치러야 할 세금 같은 게
고민과 상상과 분노라고 생각하므로,
자살을 하지 않는 한은 이걸 그냥 치르면서 살 계획이다.
이런 극단적인 용어가 난무하는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쓰다보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뭔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가 또 아픈 걸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 스스로에게 처방을 내릴 수 없는 상태다.
그러니 이렇게 리트머스 시험지를 삼키듯,
극단적인 단어를 총동원해 내가 궁금해하는 현재의 나에 대한 문제를
알아내기 위함이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몇 자나 썼다고
대체적으로 윤곽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무것도 끝내거나 관두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내가 겪는 고민과 상상과 분노를 관두고 싶지 않단 말이다.
이것이 내 가난한 형편에 있어 더없이 값진 재산인데,
이걸 관둘 순 없다. 나는 이것들을 밑천 삼아 사업을 해야 하는 몸이다.
그러나 황망함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걸 밑천 삼아
뭔가를 펼쳤을 때, 그리고 그게 만약 진짜 대성공했을 때,
그걸로 뭘 도대체 어쩌겠다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자살하지 않겠다고 늘 다짐해온 이유는 인간적 소심함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분명히 줘야 할 그것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뭔지는 안다. 글이다. 나는 글을 건네야 한다.
그 대상자는 누구인가?
관객?
독자?
시청자?
그러니까 결국 대중?
나는 대중을 상대로 글 쓰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폭 넓은 사람을 위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는 글을 못 쓴다. 그럼 누구인가?
누굴 위해서 쓰겠다는 건가?
가난한 사람들.
일단 나도 극심한 가난 속에 살아왔으니,
나도 그 사람들에 포함된다. 나는 나를 위해 일차적으로 쓴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
돈이 없어서 마음까지 가난해진 사람들.
사랑을 바란 이유로 사랑을 잃은 사람들.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언가에 구타당한 사람들.
제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겠다는 건전한 생각이
마치 역모를 꾀한 역적의 야망이라도 된 것 마냥
시시때때로 겁박 당한 사람들.
그래서 마음도 지갑도 가난해진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를 상상하고, 현재에 분노도 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
허나, 지금 당장은 그러한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 조성에 사활을 걸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필요 없는 절차이지만, 나에게는 필요한 절차이니
묵묵하게 해내자.
아직 줘야 할 것이 남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여태까지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 일을
막아낸 역사가 없다. 나의 이 파워를 생각하며 온순하게 잠드는 새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언제든 내다버려도 되는 것.
이를 테면 지금 내가 앉아있는 침대.
이것은 온전히 나만의 것인데,
세상에 내 몸똥아리 하나 눕힐 0.5평이 없어서
절절맸던 그날의 밤들도 여전히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내가 언젠가는 내다버리겠지만,
내다버리기 전까지는 내가 온몸으로 의탁할 나의 침대.
매달 50만원 정도를 지불하는 나의 15평.
고생했어요, 그 말 한 마디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내다버릴 생각이라곤 그 근거 자체가 박멸될
나의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