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작년에 메이저 방송국에 합격한,
이제는 PD님이 되신 분의
연습 작문을 보자.
-제시어: 일과 가족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드디어 입사한 쌤송 대기업. 비록 지방에 있는 ‘멀어’대학교를 나왔지만 결국 해냈다. 토익 970, 한국사 1급, 소맥 자격증까지. 드디어 이뤄낸 취업이었다. 이제 내 인생도 탄탄대로라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선 또 다른 경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내 정치.
일만 잘해서는 소용없었다. 회계팀장 박 부장의 눈에 들어야 승진할 수 있었다. 내 꿈은 이재용을 잇는 쌤송 회장. 박 부장님의 줄을 잡아야만 했다. 이또한 회사인으로써 해야할 ‘일’이었으니까
“부장님 택시 기사가 호랑이한테 하는 말은 뭔지 아십니까? 타!이거”
“아하하하하. 자네는 참 위트가 있어!”
오늘도 나의 동기 김 대리가 박 부장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박 부장님은 유우머를 좋아했다. 나도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공부만 하고 살아온 탓에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는 나였다. 그러나, 내게는 노력이 있지 않은가. 난 그날부터 인터넷을 뒤져 모든 ‘유우머’를 공부했다.
3개월 뒤, 그렇게 약 100개의 유우머를 장착했다. 이젠 박 부장님에게 내 위트를 뽐낼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 전에검증이 필요했다. 괜히 유우머를 날렸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 안 되니까. 박 부장이랑 가장 비슷한 개그 코드를 가지고 있을 우리 아빠에게 먼저 실험을 했다.
“모래가 울면? 흙흙” “껄껄껄”
“가장 착한 사자는? 자원봉 사자” “허허허”
“고양이가 지옥에 가면? 헬(hell)로 키티” “푸하하”
검증까지 완료했다.
하지만 유우머를 장착하자 한가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웃기고 나서는?’
웃기고 끝이 아니었다. 그 후가 필요했다. 유우머는 순간이었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맛집’이 필요했다. 박 부장님은회식을 좋아했다. 유우머로 다가가 맛집에 데려가 회식을 하면서 한 잔 두 잔 건네다 보면 확실한 박 부장님 라인이 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인터넷을 뒤져 모든 ‘맛집’을 검색했다.
3개월 뒤, 그렇게 약 30 군데의 맛집을 찾았다. 꼼장어집부터 대패삼겹살집까지. 하지만 역시나 검증이 필요했다. 괜히 데려갔다가 맛 없으면 갑분싸 되니까. 직접 가서 먹어보기로 했다. 다만, 혼자가면 좀 없어보이니까 엄마를 데려갔다. 여의도 멸치국수 포장마차, 종로 파전 막걸리집, 신촌 돼지껍데기 집까지. 엄마의 ‘따봉’을 받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검증을 완료했다.
그런데 맛집까지 알아보자 마지막 불안감이 엄습했다. 난 술을 잘 못 마셨다. 막상 맛집에 데려가서 술을 못 마시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주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공대 ‘기계공학과’에 다니는 남동생에게 자문했다. 남동생의 대답은 간단했다. “먹다 보면 늘어”
그날부터 3개월 동안 매일 동생과의 술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술 마시기 전에 우유를 마시고, 중간중간 물을 마셔주는 기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술을 마신 척하며 뱉을 수 있는지까지. 술자리의 기술을 전수 받은 나는 이제 소주 5병까지 거뜬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유우머에, 맛집에, 술고래까지. 완벽하게 박 부장님의 취향에 커스터마이징된 나는 당당히 박 부장님에게 출근하자마자 말을 걸었다.
“부장님, 오늘 비가 참 많이 오네요. 이렇게 한 시간 동안 비오면, ‘추적 60분’이지 말입니다. 푸하하”
하지만 박 부장님의 반응은 싸늘했다.
“자네 뭔 일 있나?”
이럴 수가. 유우머가 먹히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바로 본론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제가 기가 맥힌 파전 막걸리집 아시는데 오늘 가시겠습니까? 비오는 날엔 파전에 막걸리죠! 제가 또 한 술 합니다.”
“이 친구는 갑자기 왜 이러는가. 됐고 일이나 하세.”
박 부장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리곤 옆에 지나가던 김 대리에게 말했다.
“아 김대리, 오늘 비도 오는데 이 ‘고구려대’ 선배님과 함께 막걸리 한잔 하겠는가?”
“아유, 선배님이 사주신다면 영광입죠! 제가 대학시절 자주 갔던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선배님!”
그렇게 나의 박 부장 줄타기는 끝났다. 결국, 노력보다 학연인 세상이었다. ‘멀어’대학교론 택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승진은 가능할지 고민이 되던 그때, ‘까똑’, ‘까똑’, ‘까똑’.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들, 오늘은 또 재밌는 유머 안 알려주나?> 아빠.
<아들, 언제 또 맛집 같이 가니? 그때 같이 간 삼겹살 집이 너무 맛있더라 호호.> 엄마
<형, 오늘 밤에도 한 잔 콜?> 남동생
오라는 박부장님 연락은 없고 가족들이라니. 하지만 생각해보니 가족들이랑 얘기하고 놀러 가고 했던 적이 오랜만이었다. 언제나 ‘입시 공부해야 해’, ‘취업 준비해야 해’라며 핑계 대며 피했던 가족이었다. 하지만 박 부장의 동아줄을 잡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히려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냈던 나였다. 어쩌면 내가 진짜 잡아야 할 것은 박 부장의 동아줄이 아니라 가족들과의 ‘추억’이라는 줄 아니었을까. 이제는 일에서 벗어나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답장했다.
<우리 가족이 오렌지 같이 먹었던 때가 얼마나 ‘오랜지’ 알어? 내가 오늘 제주 감귤이랑 와인 사 갈 테니 다들 집에 있어!>
-끝-
이 친구도 작년에 서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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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짧고, 꿈은 길다.
나는 거지 같은 연극판을 전전하다가 굶어죽지 않으려
이 길에 진입하였다가 어느덧 7년째,
정말로 희귀한 이 알바 직종- 언론고시 작문 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처음엔 서른이었는데, 지금은 서른 여섯이다.
그리고 그 사이, 당연하지만, 언론고시 패쓰에 성공한 언시생보단
실패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거듭 읊조려본다.
청춘은 짧고, 꿈은 길단 말이다.
언시 공채에 실패해도 계속 이 판에 머물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애들이 많았다.
당신은 장수생인가? 꿈은 길다. 지금 어쩌면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르겠고.
당신은 언시 초보인가? 그렇다면 기억해야 한다.
이 바닥은 녹록치가 않다.
왜?
중고딩, 대학교 가서 공부했던 것과는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 한다.
나는 서울예대 극작과 나왔고,
저기 위에도 자랑처럼 남겨놨지만,
글을 못 쓰는 사람 축에는 안 끼지만,
그렇다고 글 쓰는 게 쉽다고 말할 순 없는 입장이다.
글쓰기. 작문은 존나. 진짜 존나.. 힘들다.
그런데 피디가 되려는 당신들이 글쓰기 전형을 거쳐야 한다니,
얼마나 황망할까. 그래서 말인데, 일단 자, 여깄다.
내가 만든 교본을 보길 바란다.
꼼꼼하게 읽으면, 청춘은 짧고 꿈은 긴데,
당신들 청춘이 꿈처럼 길어질 것이다.
그러니 다운 받자. 공짜다. 다운을 안 받는 게 이상한 거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된다. 바이러스 아니다. 이상한 거 아니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나를 경찰에 신고해도 된다.
사실 나 요즘엔 먹고 살 만해졌다.
자랑이다.
그래도 계속 이걸 하긴 할 거다. 노하우가 이렇게 많이 쌓였는데,
굳이 이걸 안 하려는 게 더 이상하니까..
근데 많이는 못 한다. 이게 주업은 아니므로.
소수정예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PD 언론고시 작문은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덜 못 쓰느냐가 관건이다.
근데 잘 쓰려고 하니까, 더더더 연습을 안 하게 되고,
연습을 안 하니, 실력이 늘 리 없다.
못 쓰는 게 당연한 거란 말이다.
그리고 피디가 될 사람 중에 가장 글을 그나마 덜 못 쓰는 사람이 뽑히는 거다.
피디를 뽑는 거지, 작가를 뽑는 게 아닌데,
갑자기 무슨 작가지망생이라도 된 것처럼 굴면 안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러고들 있다. 악!
당신들은 작가지망생이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허튼 소리를 너무 많이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할 때, 실력 향상의 여지가
발생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덧붙여, 글을 못 쓰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건,
쉽다. 그걸 알아주길 바란다.
MBC SBS KBS 공중파 PD 공채 작문 전형 - 작문,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