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뛰느냐가 얼마나 뛸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나는, 원형 트랙에선 오래 뛰기가 힘들다
500미터 단위로 계속 같은 풍경이 나오니
일단 뛰는 거 자체가 몇 바퀴만 뛰어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또한, 따지고 보면 500미터마다 결승선(출발선)이 나오는 것이라,
마음이 느슨해져서 더 뛸 수 있는데도 그만 뛰고 멈춰버린다.
그런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 덜 상쾌하다.
직선 코스는 이런 게 훨씬 덜 하다.
내 마음을 바로잡는 건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지 말자.
차라리 나에게 잘 어울리는 곳을 찾고,
거기로 가서 내 마음이 잘 흐르게 하는 게 낫겠다.
-내가 뛴 만큼만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누가 나 대신 뛰어주면 그건 내가 아니라 그가 뛴 것이다.
나의 러닝은 나의 것이다. 내가 개똥 같은 땀방울을 연신 흘리고,
가끔 '아, 쓰박. 내가 왜 이걸 또 하면서 괴로움을 자청했지'라고
칭얼거리더라도 내가 짊어져야 하는 나의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다 뛴 다음에 느끼는 쾌청함도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것이다. 지금 내 다리에 박힌, 200키로 남짓의 런닝의 결과물인
소박한 근육들도 내 것이다.
아무도 내게 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 뛰는 거다.
그래서 누가 억지로 못 뛰게 만들 수도 없다.
저절로, 내 인생은 내 것이란 당연한 사태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무리하면 다음날 뛰기 싫어진다
딱, 조금만 더 뛸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멈추는 것이
종합적으로 내겐 더 좋더라.
그러면 아쉬운 마음에 내일 더 즐겁게 뛰게 된다.
별로 힘들지 않기 때문에 매일매일, 지속성을 갖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나름의 개인 기록 경신을 하겠답시고,
이미 팔과 다리가 지쳤음에도 계속 나아가면,
꼭 그다음 날 허리든, 정강이든, 발목이든, 어딘가가 쑤신다.
아프면 당연히 하루 정도는 쉬게 되고.
그럼 그 다음날엔 즐거움이 아니라 어떠한 의무감으로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 의무감이 즐거움보다 즐거울 리는 없는 법이다.
더 뛸 수 있음에도 헤아려 중단하고 내일을 기약하여
삶의 전체 즐거움의 파이를 증대시키는 게 영리한 삶의 방식 아닌가.
그리고 이걸 쓰면서 명확히 느낀다.
뛰는 것과 쓰는 것이, 상당히 유사하다.
러닝 관련 어휘를 모조리 '글쓰기' 관련 어휘로
교체해도 될 수준이다.
뛰기와 쓰기가 동반된 인생은 얼마나
활력있고도 생산적일가.
아직 제대로 동반시키지는 못 했다.
이제 총 200키로 뛰었다.
300키로가 되었을 땐 또 달라져 있을 거야.
계속 붙잡고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