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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민의 작가는 소리 #10. 세계적 연극의 일개 청춘

by 김봉민 2014. 12. 22.


배우, 작가, 연출, 무대감독, 음향감독, 무대디자이너, 소품 담당, 

기타 등등의 스탭, 그리고 연극의 3요소 중 으뜸인 관객, 

그것말고도 연극엔 오퍼 같은 게 있어, 있는데 아무도 잘 모르고, 

누구나 되기를 꺼려하는, 극장의 최후방 망루이자 막장에서 

야광의 불빛에 의지해 세계를 관찰하고 빛과 소리를 제어하는, 오퍼. 

정확히는 오퍼레이터 같은 게 전 세계적으로 모든 극장에 있어. 



착한 얼굴로 심부름도 하고, 몇 초의 타이밍을 못 맞추면

혼나고, 혼날 땐 세계의 매뉴얼의 실체를 배운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뒷짐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자학도 해야 한다. 

극장에 가장 일찍 왔다가 가장 늦게 가야 하는, 

오퍼레이터는 원래는 배우, 작가, 연출, 감독 같은 것들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아무도 지금 당장은 시켜주지를 않아, 


집에서 넌 극장 나가 뭐하냐, 물으면 설명해줘봤자

아무도 잘 모르기에, 말의 시작과 끝을 흐리멍텅하게 처리하고, 

착하지 않은 얼굴로 극장 가는 길을 나서는데, 

그저 극장 안에 하루 몇 시간 머물 것을 자처했다는 이유로

마땅히 가난함도 묵인하네.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에 끼면, 이런저런 시중을 들다가, 

취기를 빙자해 성난 얼굴로 누군가에게 대드는 걸로 자존감을 수비하고,

다 먹은 도시락을 모아 쓰레기통에 공손히 버리면, 


이제는 배우, 작가, 연출, 감독 같은 게 되고는 싶었나 가물가물해진 표정으로

오퍼석에 앉아 암전과 암음을 기다린다. 

관객들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면, 

사실은 극장이 극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극장은 극장에만 없고, 전 세계적인 연극이 수시로 사라짐을 느낀다. 

청춘은 왜 야광에 의지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만, 

연극은 답해주지를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