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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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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의 애튀뜌드

by 김봉민 2018. 6. 28.




요즘 통, 안 보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플롯이 내 안에 있다.

그러나 요즘 통, 안 보는 이유는, 

요즘 통, 안 보는 이유가 되어버린 이유가 있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별 시덥지 않는 이야기나 늘어놓다가 

그 정도의 충고밖엔 해줄 수 없을 걸 알면서도 

오히려 들으면 힘이 더 빠지는 그런 말을, 

아주 집중한 표정으로 듣다가 돌아와야 하는 건 아닐까나.

또한, 역으로 별 시덥지 않은 고민을 마치 굉장한 이야기인냥, 

듣는 척 연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나.

솔직히, 좀스럽다 할 수 있겠으나, 수 만원이 깨지는 건 기본일 테고, 

약속 장소로 왔다갔다 하며 드는 시간도 아깝다.

외출하면, 집에는 코딱지 만한 크기의 강아지가 떡하니 나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모습도 내내 아른거리며 미안해질 게 뻔하다.

이런 형편이니 요즘 통, 안 보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란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뭔가를 해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뭔가의 이름은 아무래도 '불안함'이겠지. 

그 버거운 걸 혼자 노려보는 게 괴로우니, 잠시라도 

주의력을 다른 데 분산시킬 필요가 그땐 명백히 있었다.

지금은? 

지금은 그런 임시방편이 안 통한다는 걸 안다. 


글발이 아무리 좋아도 

플롯과 로그라인과 아웃라인이 구리면 다 소용없다.

(어째, 왜 이 스토리텔링의 핵심 용어 세 개는 다 영어인 건가.

 어쭈. 스토리텔링도 영어다. 이 네 개. 내가 다 한국어로 번역해봐야겠다)

글발이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면, 

플롯과 로그라인과 아웃라인은 내 본질, 근본에 해당할 텐데, 


나란 인간의 삶의 플롯과 로그라인과 아웃라인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문제 해결'의 장으로 인식하는구나. 

그게 잘 안 되니,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맞춤법을 틀리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비문으로 마치고.

사람들과 만나서 단순히 놀고 즐기는 걸로 여기지를 못해. 


나는 사람들한테 바라는 게 많다!

그래서 그게 좌절 되느니 오히려 그 원천을 제거하자는 식으로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내 플롯과 로그라인과 아웃라인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본질, 근본은 안 변한다. 그걸 바꾸려는 시도보단 

아예 다시 태어나는 게 나을 것. 



하지만 플롯을 이야기추진유형, 

로그라인을 이야기핵심사항, 

아웃라인을 이야기구조, 라고 번역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놀고 즐기는 기회'라고 번역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지 싶다. 

억지 번역은 낯설다.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기다려보겠다는 자세가 그나마 임시방편이 아닌, 

만병통치의 애튀뜌드이겠지. 이상하다. 아무튼 뭔가 다 이상하다.

그럼 이만, 이 허섭한 이야기추진유형의 일기를 아무렇게나 막, 대충 마치자. 

 

 

*참고로,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로 설득하기'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