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사 김봉민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집을 불 태웠다
가난한 집을 일군 사람들은 가난이 요구하는 대본에 따라
불쏘시개로, 서로를 찌르는 액션에 별로 미안해 하지 않는다
나는 보복하고 싶다는 순수한 역할의 감정에 따라
불을 지르고 나왔다
집 안에선 누구도 불이 났는지 관심이 없다
처음부터 집은 집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막을 보며 나는 다른 집을 또 불태우고 나왔다
연극을 해오다가 연극을 관두기로 한 사람이
맡아야 할 배역은 난민 정도 될까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바깥에서도
연기를 한다
진실된 연기를 하는 사람은 드물고,
나는 무대를 불태우고, 난민 연기를 충실히 한다
오란 곳은 없어도 가고픈 곳은 있다
바다 안엔 사막이 있다
거기까지 가는 데 필요한 연료와 화력은 집 말곤 없다
그리고 거기 가서는 나는 나의 집을 또 찾으려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나의 집은 내 손으로 지어야 한다
열심히 글을 써야지
고민은 내 그을린 손바닥에 묻은 이 불길한 이력에 있다
재에도 역사가 있다
나는 이 불의 역사가 무섭다
사막 안에는 바다가 있다
모든 난민은 모험가이기도 하다
나는 이 불의 역사가 무서워 여기까지 왔다
작가는, 소리를 그만하고, 열심히 글을 써야 한다
매일 글을 쓰며 불을 꺼야 한다
<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