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가 한 말로 기억하는데,
아닌 것 같아서 구글의 도움을 받아 확인해보니,
카뮈가 한 말이 맞네.
태어난 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네 부모님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즐거웠는지 안 즐거웠는지,
나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우리네 부모님은 나를 낳기로
즐겁게 선택했더라도,
그게 꼭 내가 나여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정자가 나를 만든 정자 대신
어머니의 난자와 수정에 성공했더라도
부모님은 충분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예뻐했을 것이다.
근데 하필 내가 태어난 것이다.
요약하자면,
내가 나로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단 것이다.
그걸 만에 하나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나'를 선택하지도, 또는 아예 태어나지 않는 걸
고려할 수 있었겠다. 그런데 나는 그런 선택권 하나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지듯, 나로 태어나버렸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는가.
태어난 이후, 나는, 나로 살아나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죽지 않기로 했다. 이 삶을 살아내기로 맘 먹었다.
그 결심이 굳건히 언제 선 것인지는
내가 언제 카뮈의 이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또렷하게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버젓이 새겨있다.
나는 나로 살겠다,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대답하면,
내가 사는 이유가 보인다.
절망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비로소
희망의 형태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굳이 구글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태어난 것을 1푼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