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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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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by 김봉민 2018. 3. 1.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 소설 난쏘공



2013년. 나한테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500만원만 있었더라도, 

내가 '형제의 밤'을 하느라 치러야 했던 

그 모든 고통은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왜 나한텐 500만원이 없었던 것인가. 


집이 가난하니까. 


국민학교 때 선생님은 가정통신문을 주었고, 

거기엔 우리집의 재정 수준을 부모님한테 

물어보고 적어오라는 얘기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엄마는 우리가 중산층이라고 했다. 

나는 32살이 되어, 부자인 사람들의 세계를 

면밀히 엿본 후에야 우리집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신물나도록 가난하면 

가족끼리 서로 할퀴고 물어뜯기에 안성맞춤이 된단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그래서 그렇게 살았던 거다. 


나는 중1 때 정서적으로 거의 아사 상태에 이르렀었다. 

나는 그때부터 공상과 망상을 오가며 

내가 왜 태어나 이렇게 괴로운 것인지 

질문했고, 중2병이라 명명되는 수준의 것을 

종이에 적었어. 

신경성 위궤양을 달고 살아서 

나는 그때부터 겔포스가 없으면 밤에 

잠도 잘 못 잤다. 


그런 나날들이 누적된 게 이유가 되어 나는

글쓰기에 삶의 사활을 걸었고, 사활을 걸어 

생의 위험을 몇 번 자초했고, 어쩌다 저쩌다 2013년이 되었다. 

형제의 밤을 했다. 사람들은 좋은 공연이라 했다. 

올해에도 공연된다. 정말 이렇게 많이 공연하게 될지 몰랐다. 

그러나 형제의 밤을 하면서 받은 상처도 너무 컸다. 

그때 함께했던 그 사람들. 다 어디 갔는가.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네가 그래도 가난했으니까 

글을 쓸 수 있었던 거야, 라고 말하지 마라. 

가난은 감히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은 두들겨 패서 죽여야 하는 것이다. 

얼추 나는 내게 할당된 가난을 때려잡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내가 내 가난을 때려잡으면 그걸로 끝인가?

우리집은 왜 가난했는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난했다.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그들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도

가난했다. 이건 계속 유전되고, 번진다. 

왜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힘 없고  가난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베알이 꼬인다. 


내 주변을 생각해본다. 

가난이라는 늪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형제의 밤

도 그런 마음으로 썼었구나. 


그래, 아무튼 안 한 것보단 

한 게 나았다. 


하.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