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내가 된 게 좋다.
가만히 있어도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아주 큰 기쁨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아들들에게
씨발개쓰레기 같은 새끼야,
너 같은 새끼는 그냥 뒈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
같은 류의 말을 하는 건지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스무살 넘어서 알았다.
아버지는 하루에 몇 시간씩도 그런 악담을
우리에게 퍼부었다.
아버지는 집에 있으면 하루에 최소 5번은
청소를 하곤 했다. 결벽증이 있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엄마와 형과 나는
결벽증이 없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생활 환경을 구축하려
중학생 때 나도 절반 정도 결별증에 걸렸었으나,
내가 아무리 청소를 해도 결국 아버지의 청소 횟수가
줄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청소를 할 거면 청소를 왜 하냐는, 노기 섞인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 나는 청소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대학 졸업 이후엔
돈을 벌어서 가져다 달라면서,
그렇게 좆 같이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니
이 집 구석은 뭘해도 안 되는 거라는 맥락의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나는 글쓰기가 간절했다.
나의 구원은 나의 글쓰기가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내가 씨발개쓰레기 같은 새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많이 주려면 내가 글을 써야 할 것 같기도 했다.
토익 점수도, 운전면허증도 없는
글쓰기 몰빵의 인생인데,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데 아무리 내 나름 돈을 벌어 가져다 줘도
나는 그냥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는 새끼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쩌면 아버지의 노후 설계용으로 탄생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있는 집에 있는 게 늘 괴로웠다.
돈을 모아 하루라도 빨리 독립을 했어야 했는데,
나한텐 돈이 없었다. 나의 무지와 무능력을 탓하는 수밖에.
나는 내가 독립을 못할 거라 생각했다.
3년 전 가을의 아침.
나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날도 여지 없이 아버지의 욕설이 들려왔다.
나는 진지하게 살의라는 것을 느꼈다.
그 감정이 괴로웠고, 그 길로 나는 집을 나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독립을 해내었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다. 나는 괴롭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집에 있는 게 좋다.
집에 있어도 들을 일 없는 쌍욕. 너무도 다행이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말하고 싶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 편하다는 것의 의미를 요즘에야 알게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대개의 사람들이 사는 거였구나,
그리고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나는 좋은 인간은 아닐 수 있어도,
개쓰레기에 좆 같이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는
상병신은 더더욱 아니다.
나에게 잘해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런 건 내게 언감생심이었다.
그저 나는 나로서 살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아버지에게 물들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물들었던 인생에서 벗어나는 게
지금도 이렇게 쉽지가 않은데, 다시 또 어떠한 식으로든
아버지에게 더 물드는 상황에 나 자신을 배치하고 싶지 않다.
지난 이틀 동안 아버지에게 3통의 전화가 왔다.
누가 죽었나, 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명절과 내 생일을 앞두고 집에 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으나,
이제 내 집은 거기가 아니다.
내 집은 여기다.
거기서 여기로 오는 데
35년이 걸렸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 집,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좋다.
나는 누구의 아들이 아닌,
그저, 나로서 살겠다. 슬프다. 그러나 버틸 수 있는 슬픔이고,
나를 잡아먹을 슬픔으로 번지지 않으려는
생산적 슬픔이니, 마땅히 내 안에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