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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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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무작위적 작성

by 김봉민 2018. 2. 5.


<1>

오늘 눈을 떴을 때, 

얼마나 더 큰 비극과 대면해야 

나는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제 그런 거 그만 만날래, 

라고 직후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행복하고 싶은데, 

더 큰 비극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지는 않다.


<2>

언젠가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구의 멸망이나 닥치라고 씩씩거리며 

살았더랬다. 제로에서 시작하고 싶은데, 

이놈의 유구한 세계는 그런 법이 없고, 

이러한 연쇄작용이 계속 상속될 게 뻔하므로 

나는 그런 식으로 골이 나있었다. 

저 골방에서 배를 곯아가며 

부모에게 폭력을 선사받는 아이에게도 

자기만의 역사가 있다. 

거짓부렁이와 환상의 더러운 뉴스는 

눈길을 사로잡는데, 

좀체 그런 아이는 다뤄지지가 않는다.

사람이 5명 죽었는데, 

그게 어느 좁디 좁은 곳을 보금자리 삼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청와대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것처럼

세상이 다뤄준다. 

누구는 10만원 도둑질해도 감옥에 가야 하는데, 

누구는 10억을 해먹어도 감옥에서 곧 나온다. 

이 기괴한 현상들을 그저 그러려니 하면 

얼마간 맘은 편하겠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의문을 일절 품지 않으면 

내가 왜 인간인가? 

 

 

<3>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면 

그래도 좀 행복해지지 않을까, 

라는 의견도 일면 일리는 있겠지만, 

도대체 그 감사의 대상이 누구인가? 

신? 

신이라면 이따위로 세상을 불공평하게 만들었으니 

그 저주스러운 무능력 때문에 감사해 할 수 없다. 

 

 <4>

나의 행복이 온전히 내 힘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세상과 맞닿아 있다. IMF 때도 느꼈고, 

2002 월드컵 때도 느꼈고, 세월호 때도 느꼈다. 

너 하나 건사나 잘하라는 말은 그래서 엿 같다.

나 하나 건사만 잘해서는 나는 행복해질 수가 없다.



<5>

재앙의 문이 열려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건물은 붕괴되며 하늘이 실버가 된 후, 

나는 머지 않아 이렇게 살았던 날들을

그리워하겠지. 가까스로 운이 좋아 

그 시기를 버티고 살아남는다면, 

그 사이 사라져버린 모든 것을 애도하면서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말하고 있으려나. 행복해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싫다. 그런 사태 없이도 사람은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될 수는 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근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