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게 경미한 수준 이상으로
폐를 끼치고 있다는 부채의식이 나한테는 있는데,
그게 어찌 나만의 성격적 결함인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양과 질에 관하여
나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 자부하고,
오늘은 내 근방에 공평하게 눈이 내렸다.
살면서 숱하게 본 눈이다.
그러나 2017년 12월 6일 무렵에는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눈이다. 단 한 번뿐인 눈이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같은 원리로 나도 그렇다.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같은 원리로 나 아닌 이들도 그러하다.
그 누가 살아있는 걸 민폐인 것처럼 만들든,
나는 나의 편이고, 그래서 당신들의 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신들을 가족 삼아 미래를 궁리하고 있겠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당신들'은
주어진 것 희박하고, 가진 것이라곤 상상력이라 불리우는
천대 받는 것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
까불면 다친다고 했다.
그리고 다치는 건 사실이었다.
혼자 다쳤다. 다친 것보다 혼자였다는 게 더 아팠다.
그러나 다음 번엔 혼자 다치지 않게,
내가 온몸으로 괴롭히고 싶은
너희도 다치는 수준에 다다르면 좋겠다.
설령 당장은 실패하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자랑스러운 셀프 훈장이 되고,
제2의, 제3의 그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되자고,
그렇게도 무산되었던 소망을
오늘 아니면 다신 안 내릴 오늘의 눈처럼,
또 한 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