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구경
집에 돌아오는 길,
소방차들이 펑펑 울며 달린다
우리 집 근처 빌딩 옥상에 불이 났다
구경을 한다
오늘 하루 이만하면 안락하지 않았는가,
라고 자문을 해버린다
자답을 위해 나의 심란했던 그 시절을 동원한다
길거리 꽁초를 주워 피는 번거로움은 이제 없습니다
나에게 얼마나 작가적 기질이 농축돼 있는지 구태여
입으로 우기 듯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꼽게도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양반들과
상당 키로미터 거리를 내 맘대로 둘 수 있습니다
유명한 불운아들도 초대해본다
뭐 이를 테면 역사적인 오이디푸스와 햄릿,
아프리카 어디였지, 소말리아나 에디오피아 기아들,
가까이서는, 요즘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만 아는,
내 후배 지헌이와 그렇고 그렇다고 알려진 놈들
나는 불의 바깥에 있고,
불은 저기서 타므로 나는 구경을 한다
얼마나 좋으니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니
늘 겸손해야 된단다
라는 식으로 자위를 하면 화마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작금의 처지를 낙관적으로 느끼고자
과거의 나를 매도하는 게
즐겁냐
자랑스럽냐고
영광, 그 자체인가
고작 내 삶의 희극성 함양을 위해
내 불굴의 역사를 꼬깃꼬깃 구겨 발화의 재료로 삼고
여타의 인간들과 기타의 세계를 비극적으로 활용하므로
불은 내 눈에 번져, 활활 탄다
불 좀 꺼주세요,
모두 구경만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