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에 관한 새벽
<1>
나는 심오한 척 하는 것에 어느 정도 능통하여서
지금 당장 여기에 기만적인 인간 유형을 성토한
아리토소시우스의 신화를 거론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은 성찰을 보여준 마이클 O.바클리 닥터의
그 유명한 책 <발칙한 인간, 솔직한 인간, 정직한 인간>의
157페이지를 인용할 수도 있다.
마이클 O.바클리 닥터는 말했다. 인간은 정직하면 손해만 본다고.
그리고 나는 말한다. 바퀴벌레는 쓰레기봉투 인근을 좋아하고,
위에 내가 쓴 것은 다 쓰레기봉투 같은 구라덩어리라고.
<2>
2년 전 제주도에서 나는
반쯤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마라도로 갈 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고,
대장금을 찍었다는 곳이었으며,
스타벅스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곳은 당연히
마라도선착장
이 아니었을까, 라고
그때 반쯤 죽었다가 가까스로 눈을 떴던
사람이 기억해낸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나는 우산이 있었다
그는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없는 멜로디였으나, 보나마나
어느 노래를 조금만 바꿔 흉내를 낸 게
틀림없겠지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업혔던 건지,
죽어가던 사람이 업혔던 건지, 가물가물하다,
라고 쓰는 건 일종의 기만이다
둘 다 나였다
이런 식으로 쓰는 건 너무
멋부리려는 작태에서 비롯되는 거다
자, 보자, 얼마나 별로인가
멋은 힘주어 부릴 수록 구리다고
<3>
나는 지금 몹시 졸리다
자고 싶다. 먹고사는 문제는,
늘 예상보다 문제가 많다
게다가 지금 쓰고 있는 이건,
너무도 구태의연해서 지워버리고 싶다
이러니 잠이 더 쏟아진다
그러나 지우지 않을 거다
구리면 구린 대로, 구라면 구라인 대로
쓰고,
쓴 다음 욕이라도 먹는 게 낫다
잠을 자고 싶다
그러나 참는다
나는 어디 한 번 끝까지 써보고 싶다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는 반 송장이 될 순 없다
<4>
바퀴벌레가 쓰레기봉투 인근은 기웃거리듯이,
마라도 선착장에 스타벅스가 있다가 사라질 수도 있듯이,
아무런 신화에 근거하지 않고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듯이,
혹은 그게 이것이고 이게 그거일 수 있듯이
나는 아무리 다시 구타를 당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
반쯤 죽어가는 행색으로 졸음을 핑계로 제시하며,
지금 써야 할 것을 나중으로 미루는
자기 기만의 역사를 중단해야 되겠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안달 난 발칙한 새벽,
이쯤이면 선방은 아니더라도, 솔직히,
후퇴 당하진 않았다
너그럽게 멋 부리지 말고, 이제는 잠을
자랑스럽게 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