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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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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민의 작가는 시국과 관련성이 있는 개인 다짐

by 김봉민 2016. 11. 23.

그림은 장 자크 상페그림은 장 자크 상페



안 그래도 조금은 추해 보이는, 
그래도 부단히 화장한 흔적이 역력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믿고 싶었다. 

'그래도 아름다워.'

그러나 홀라당 화장을 지우고 민낯을 드러내자, 
이런 쉣!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세상은 사악한 상판대기를 하고 있었다. 
이건 추하고 아름답고를 따지기가 민망한 수준.

내가 믿고 싶었던 것은 
이젠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대신 믿기 싫었거나 믿을 수 없던 것들을
믿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인을 잃은 고도의 노총각마냥 허탈한 동시에
강제로 개종해야 하는 원주민처럼 당황스럽다. 
이 괴상한 믿음의 나라에 내가 사는 것이다. 
이 모든 걸 세 글자로 줄여서 말하자면, 

슬프다. 


그러면서도 이 믿을 수 없는 사태의 처리를
지금껏 가장 못 미더웠던 녀석들에게 
맡기고, 이번만은 그들을 모쪼록 믿어야 한다는 
정신적 노가다를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녀석들을 믿긴 너무 어렵다. 그래서 많이 


무섭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 말하는 
라디오 공익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다. 
자기 기업은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CF도 있다. 
뉴스를 보니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사악함을 감추려 했다. 다 꺼버리고 싶다.
화장이 아니라 변장, 아니 그것도 아니라 
그 손쉬운 변신술이 이젠 가당치도 않다. 


근데 나는 어떤가. 
이제 나도 나의 화장에 대해 생각해본다.
"똘레랑스! 저스티스! 원 러브!"
잘도 떠들었던 주댕이가 뚫려있는 내 일상의 면상은, 
나의 진정한 민낯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추함, 혹은 
일상화된 방관자의 삐뚤빼둘 눈코입을 
감추려 고안해낸 셀프 메이크업의 부산물이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나는 비겁하게 살았다. 
그걸 인지하면서도, '똘레랑스와 저스티스와 원 러브'를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스스로 변신하길 바랐던건 아닐까. 
어쩌면 그 모든 게 내 나름의 병신 같은 변신술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슬프고 무섭고 병신스러운 나는 진지하게 
거울 앞에 설 용기도 선뜻 나질 않는다. 

나는 슬프고 무섭다. 

그래도 바지에 오줌 지려 가며 끝끝내 만약, 
거울 앞에 섰을 때, 나의 노메이크업 훼이스가 
사악한 것은 아닌, 그저 약간의 추한 얼굴이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믿음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논리와 상식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서면의 시대도 끝났다. SNS도 서면의 친척.
이젠 대면의 시대다. 직접 만나 대화하고 캐물어야 한다. 
신의, 의리의 시대도 끝났다.
계약서대로만 하자. 헌법도 계약서다. 

<헌법 제1장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노총각도 원주민도 아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이런 추신도 달 수 있겠다. 


따뜻한 방 안에 앉아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지만 말고, 
논리와 상식을 무기로 직접 그들을 대면하여 캐묻고, 
계약을 꼼꼼히 따져가며, 방탄소년의 마음으로 
피 땀 눈물도 흘리며,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자.


2016년 11월 1일



<김봉민의 작가는 시국과 관련성이 있는 개인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