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제목을 보고 들어왔을 테니, 답부터 말하자면
합격 작문과 불합격 작문의 차이점은
1. 니쥬를 얼마나 촘촘히 깔았는지,
2. 그 니쥬가 색인이 되면서도 얼마나 바래나지 않았는지 (바래났다 = 들켰다는 뜻이다),
3. 그리고 예능 작문일 경우에는 이 니쥬를 유머화 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지
이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니쥬를 아예 제대로 깔지 못해서 니쥬-오도시 관계 구축에 실패했을 경우, 아예 합격 가능성은 0에 수렴하게 된다.
니쥬를 깔았으나, 그 니쥬를 너무나도 대놓고 깔아버려서 결말이 어떻게 날지 미리 다 들켜버리는 경우,
김이 샌다.
일찌감치 김이 새버리면 홀드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근데 이건, 기술로서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1번의 경우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다.
그럼, 그 기술이 무엇이냐?
그 답은 3번에 있다. (예능 작문일 경우에 해당한다)
니쥬를 깔되, 그 니쥬를 유머화 해서
그게 니쥬인 것을 대놓고 보여주진 않되,
색인은 정확히 시켜주는 거다.
'이 쯤에 웃기는 포인트가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확실한 색인 효과가 있다.
그 후에 그걸로 오도시를 치게 되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단순히 웃기려고 쓴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다 니쥬였다니!'
라는 매우 긍정적인 페이오프를 가지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니쥬를 촘촘하게 깔되,
그 니쥬가 니쥬인 줄 모르게 속일 수 있는 장치를 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예능 작문에서는 '유머화'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거다.
그 좋은 예시로, 바로 작년에 예능 PD가 된 합격자의 작문을 가지고 왔다.
일단 보자!
제시어 : 말할 수 없는 비밀
<플레이스테이션 5>
“띵동, 택배 왔습니다!”
나는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르게 현관문으로 뛰쳐나가 내 앞으로 온 묵직한 택배를 받았다. 드디어 왔다. 내 생일을 자축하며 429,000원이란 거금을 들여 큰 마음 먹고 지른 플레이스테이션5. 섹시한 흰색 라인을 뽐내는 저 우람한 본체를 보라. 한시 빨리 거실로 나가 TV 앞에 설치하고 즐기고 싶으나, 아직은 안된다. 나에게는 ‘와이프’라는 큰 관문이 남아있기 때문. 우리집의 퀸이자, 자금관리책인 와이프 현진이는 게임을 좋아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작년 생일에 무심코 플레이스테이션 4를 사달라고 했다가
“나이를 그렇게 처먹고도 아직 게임 생각이 나?”
라는 핀잔만 들었다. 그래서 이 택배도 아내가 일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배송을 맞춘 것이다. 일단은 숨기고 나중에 아내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조심스럽게 물어볼 예정이다. 그러니 그전까진 ‘나 게임기다!’라고 소리치는 이 거대한 물건을 산 걸 숨기는 게 급선무다.
우선 나는 본체를 들어 우리가 자는 안방 침대 밑으로 옮겼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제아무리 눈치가 빠른 아내라도 비상금이든 뭐든 숨겨도 설마 이렇게 뻔한 곳에 숨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집 침대는 턱이 굉장히 낮아 정말 굳이 들어가서 보려고 하지 않는 이상 침대 밑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소중한 플스5가 곤히 자기에는 그 어디보다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 플스5를 침대 아래에 밀어 넣는데, 무언가 툭 걸리는 게 있었다. 무언가 싶어서 꺼내 보았더니 쓰다 만 긴 포장지였다.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넣으면서 포장지로 플스5를 가렸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아들놈의 입단속이다. 혹시나 해서 내가 거실에서 플스를 언박싱하는 걸 보진 않았는지, 아님 플스5를 들고 안방에 들어가는 걸 보진 않았는지 확인해야한다. 숨기자마자 후다닥 아들의 방으로 달려가 방문을 노크 없이 확 여니, 아들이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들 뭐해?”
“아니 노크 좀 하고 들어와요! 진짜 뭐 하는 거야….”
보아하니 내 생일 편지를 쓰고 있었나 보다. 기특한 자식. 편지에 집중하느라 거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도 못 썼을 테니 이만 나가려고 하는 순간 편지 옆에 놓인 <FIFA 23> 플스5 CD 패키지가 눈에 보였다. 이놈이 이걸 왜? 나는 그 CD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물었다.
“이거 뭐야?”
“아... 이거 친구가 플스 샀대서 같이 하려고 근처 플스방에서 빌려왔어요”
아들은 멋쩍은 듯 대답했다. 근처 플스방에서 CD도 빌려주는구나! 새로운 사실을 안 나는 아들에게 그 근처 플스방이 어딘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아들의 방에서 나왔다.
이제는 아내와 같이 쓰는 거실 컴퓨터의 인터넷 기록을 삭제하는 일만 남았다. 아내는 일제기획 광고대행사에서 자그마치 과장직을 달고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바쁜 경우가 많아 집에서 컴퓨터를 할 일이 자주 없다. 그래도 갑자기 컴퓨터를 쓰는 일이 생겨 인터넷을 하다가 내가 ‘플스5’를 검색하고, 산 것까지 들키게 된다면…? 끔찍하다. 나는 서둘러 크롬을 킨 다음 ‘지난 한 달간 검색 기록’ 메뉴에 들어가 ‘플스’가 들어간 기록들은 하나씩 모조리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엑스박스 가격, 닌텐도 스위치도 검색한 적이 있었나? 낯선 검색 기록이 눈에 띄었다. 기억이 안 나도 이것들도 분명히 내가 플스랑 비교하면서 검색한 게 맞을 테니, 게임기와 관련된 검색 기록은 보이는 족족 삭제 버튼을 눌렀다.
자 이제 플스5는 안전하다. 이제 나중에 어떻게 아내에게 말할지만 고민해보면 될 듯하다. 한바탕 ‘숨기기 소동’ 이후 얼마 안 있어, 아내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다. 아내와 함께 내 생일 겸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안방에 들어가더니 커다란 선물 상자를 들고 왔다. 사이즈가 거의 공기청정기만 한 선물 상자는 아까 침대 밑에서 본 포장지로 싸여있었다.
“여보, 생일 축하해. 그동안 내가 너무 바가지만 긁었지? 여보가 좋아하는 걸로 사 왔어. 한번 뜯어봐.”
나는 고마운 마음에 서둘러 포장지를 뜯어봤다. 선물은 다름 아닌 플레이스테이션5였다.
“아빠. 아까 봤었지? 이거 선물이야. 나랑 나중에 같이 해~”
아들은 이내 아까 방에서 봤던 피파 CD를 내게 건네주었다.
침대 밑 포장지, 아들놈의 피파 선물, 그리고 컴퓨터의 기록까지... 아아. 이제야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나를 이해해준 아내에게 고마워서인지, 안방 밑 침대에서 잠 자고 있는 플스5가 생각나서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는 엉엉 오열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고마워... 여보...”
-끝-
아래 이미지는,
해당 작문에 대한 피드백 내용이다.
궁금한 사람은, 이미지를 눌러 자세히 확인해 보기를!
합격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니쥬 - 오도시 구축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적절한 니쥬 정보량 조절과 니쥬의 유머화.
이것만 되도, 작문의 퀄리티가 비약적으로 오른다.
반전 좋아하다가는 영원히 공채 피디 합격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철저한 니쥬 원칙주의자가 되자!
예능 PD가 된 자의 작문과 불합격 작문의 가장 큰 차이점 | 예능 PD 최종합격자 작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