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많은 언시생들이
'그럴듯하게' 글을 쓰려 한다.
그럴듯한 메시지를 담아서 뭔가 교훈을 주려고 한단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
언시 작문이라는 주제, 분량, 시간, 포맷 등등의 한계가 있는 글쓰기에서
너희가 어떤 메시지를 제시하려고 해도, 심사관에게는 그저 뻔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어설프게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느니, 더 담백하고 꼼꼼하게 글의 구조를 잘 세우는 방법을 통해 글의 퀄리티를 높여야만 한다.
특히 예능 PD를 준비하는 언시생의 경우엔 더더욱
메시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능 PD가 되려는 자가 쓴 작문의 톤앤매너는 당연히 유쾌하면 할수록 좋다.
그런데, 메시지 전달에 목을 맬수록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99.99999%다.
네가 집중해야 할 부분을 정확히 알고 그 부분을 공략해야 한다.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 전달은 네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 전혀 아님을 반드시 알아두자.
오늘 보여줄 예시는,
최근 MBN 공채 예능 PD가 된 구 언시생이 쓴 작문이다.
일단 보자.
시제 :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한강 라면>
“새벽 세 시에 햄버거 먹는 사람이 어딨냐고!”
스폰지밥 징징이가 한 말이다. 그렇다. 새벽에 야금야금 야식을 먹는 우리의 모습을 향한 일침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졸업 논문을 준비하며 밤을 꼴딱 세우다 보니 힘이 없다. 가스비를 아끼느라 난방까지 꺼서 춥고, 배고프고, 졸린 이 3악(惡)의 상황에서, 라면 한 봉지 정도는 용서가 되지 않을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주방으로 홀린 듯이 걸어간다. 자고로 먹고 살기 위해서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건데. 이내 나는 주방 서랍에서 안성탕면 한 봉지를 꺼내 봉지를 부욱 뜯었다. 끓이지도 않았는데 올라오는 유탕면의 기름진 냄새는 코를 타고 뇌까지 올라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물이 끓기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재빨리 다이소에서 산 2000원 짜리 양은 냄비에 물, 후레이크, 라면을 한꺼번에 냅다 넣고 냄비를 인덕션 위에 살포시 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겨오는 구수하면서도 얼큰한 라면 냄새. 냄새를 맡고 나니 역시 끓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냄새는 좋은데, 냄비 안에 라면 국물 색깔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아뿔싸.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 너무 급하게 끓이는 바람에 물을 대충 부었더니, 면들이 한강이 된 국물에 깊게 빠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괜찮다. 요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고심 끝에 선택한 야식인 만큼, 이런 물 따위에게 소중한 내 야식이 꺾이게 내버려 둘 수 없다. 물을 많이 부었으면, 끓여서 날려 보내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급한 마음을 잠시 덮어두고, 인내심으로 15분 정도 물이 졸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새벽이라 뇌가 제대로 안 돌아가서 그랬는진 몰라도 방금 내린 결정은 내가 지금껏 한 선택 중에 최악의 선택이었다. 15분이 지나고 냄비의 뚜껑을 열어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물은 많이 졸았지만 얇고 탱글했던 면발들이 모조리 벌크업해 있었다. 급격하게 불어난 면발들은 마치 먼 나라 이웃사촌 우동을 똑 닮아 있었다. 더 이상 라면을 살리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순간, 나는 백원종 선생님이 했던 말이 내 뇌리를 스쳤다.
“차가운 물에 담가 놓으면 면발이 탱글해져유~”
나는 불디 불은 면발만 따로 빼내서 얼음물에 담가 놓았다. 백원종 선생님만큼 음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 분명히 이 면발들은 얼음물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쪼그라들 것이다. 그리곤 냄비 안에 있는 국물의 간을 보았다. 이번엔 또 너무 졸였는지 혀가 오그라들 만큼 짰다. 물을 더 넣어 끓일까 하다가, 우유를 넣어 나트륨 함량도 줄이고 고소하게 먹는 건 어떨까 하는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얼굴도 덜 부으니 야식의 죄책감을 최대한 덜어낼 수 있는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나는 우유 반 컵 정도를 냄비에 넣고 마저 끓였다.
끝까지 놓지 않고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한강 라면’은, 더 이상 ‘한강’ 라면이 아니었다. 그런데 완성해서 보고 나니 라면은
안성탕면이라 부를 수 있는지 다소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충격적인 비쥬얼을 자랑했다. 얼음물에 씻었던 면발은 너무 오래 놔뒀는지 과자처럼 딱딱해졌고, 국물은 돈코츠 라멘 마냥 하얗게 변해서 우유에서 나온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음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괴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라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만든 노력의 결과물 아닌가. 여기서 내가 먹지 않는다면 난 최후에 꺾이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잠깐 주춤했지만 이내 이 괴식라면을 와구와구 먹기 시작하며, 국물까지 모조리 비우는 ‘완면’을 했다.
그렇게 내 야식은... 배탈로 마무리 되었다. 급하게 먹은 것도 있지만, 우유랑 섞인 국물은 잠 자는 내내 속에서 니글거리며 유독 가스를 생성했다. 아침이 되어도 배가 너무 아팠지만,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얼굴은 안 부었다는 사실이었다. “새벽에 한강라면은 절대 먹으면 안 돼!”
-끝-
이 작문에 대한 자세한 피드백이 궁금한 사람은, 아래 이미지를 확대해서 보도록.
이 작문에 어떠한 심금을 울리는, 대단한 메시지가 있나?
없다.
대신에 고퀄일반공식을 철저히 지켜가며 구조를 정확하게 쌓아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본인이 지망하는 분야인 '예능'에 맞게,
유쾌한 톤앤매너를 작문에 장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웃는 건 쉽다.
웃기는 건 미치도록 어렵다.
이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유쾌한 글을 쓴 너라는 사람의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심사관들은 당연히 저 당연한 진리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으로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네가 어필해야 할 부분은 글의 구조를 정확히 세울 줄 알면서도 유쾌함을 놓치지 않는 면모인 것이다.
헛발질 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 세이브 한 시간을, 글을 쓰며 절실히 느끼게 될 너의 부족한 지점에 대해 공부하는 데 써야만 한다.
그래야 네가 써내는 작문 퀄리티에서도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유쾌한 톤앤매너도 그냥 장착할 수 있는 게 당연히 아니다.
그러한 톤앤매너가 이미 장착되어 있는 우수한 글들을 계속해서 읽고 모방해 보는 노력 끝에만 가능해지는 거다.
본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먼저 제대로 알자.
조급함에 휩싸여서 남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마라.
그래야 고통의 준비 기간을 최소화 하고, 언시생 시절을 청산할 수 있다.
이 교본은
내가 직접 썼다.
무료다.
꼼꼼히 읽고, 제대로 알고 작문을 쓰길 바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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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예능 PD 최종합격자 작문 공유 | 예능형 작문을 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