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아래 교본을 다운 받고..
오늘은 제목에서 본 것처럼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 작문 4개+@를 공유한다.
거두절미. 바로 첫 번째 작문부터 읽어보자.
- 시제
갑을 관계에서 을이 갑을 역전하는 이야기를 구상하시오.
제목 : 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전 과목에서 10개나 틀렸어. 엄마한테 말하면 백퍼 죽어. 애초에 내 성적에 의대가 말이 돼? 진짜 죽고 싶다.”
담배나 한 대 피울 생각으로 올라온 옥상에서 의도치 않게 K-고딩의 한탄을 들어버렸다. 전화를 붙들고 있던 고딩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 눈치였다. 얌마, 옥상 함부로 들어오면 안 돼! 어서 내려가! 나는 고딩을 향해 소리 질렀다. 고딩은 나를 한번 쳐다보곤 계단을 내려갔다. 눈가가 시뻘건 게 울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담배를 피우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역시, 내 건물 옥상에서 피우는 담배가 제일 맛있다. 할아버지가 돼서도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났다.
점심때가 다 되어 배가 고파진 나는 1층 상가의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내 건물에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대치동에서 제일 맛있는 칼국수 집이었다. 그래서 점심때면 사원 증을 맨 직장인들로 붐볐다. 직장인들로 붐비는 와중에도 사장 아줌마는 나를 보면 홀에 나와 인사를 했다. 그럼 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그래요, 나 건물주에요. 나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건물주 다운 애티튜드를 선보였다. 다른 테이블보다 2배는 많은 깍두기와 바지락칼국수 곱빼기 한 그릇을 비웠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배가 부르자 슬슬 담배 생각이 났다. 옥상으로 가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기타 가방을 들쳐 맨 중딩들이 계단에서 우르르 뛰어 내려와 1층 입구를 막았다. 어이, 어이! 한 줄로 다녀, 한 줄로! 뛰지 말고! 중딩들은 그런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허, 자식들. 안 되겠구먼. 기타 가방을 보니 3층에 있는 기타 학원을 다니는 애들임이 분명했다. 나는 연락처에 들어가 3층 기타 학원 원장의 번호를 찾아 곧바로 문자를 썼다. ‘원장님. 학원 학생들이 건물 내에서 너무 뛰어다니네요. 관리 좀 해주세요.’ 전송 버튼을 누른 지 1분도 채 안 됐는데 답장이 왔다. 이보다 더 갑과 을이 명확할 순 없었다.
나는 옥상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맨 위층인 7층에 멈춰 섰다. 옥상에 가려면 7층에 내려 걸어가야 했다. 문이 열리자 언뜻 봐도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고딩 대여섯 명이 보였다. 7층엔 입시 수학학원이 있었다. 고딩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짧은 순간에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마치 아침에 본 고딩과 같은 안색들이었다. 좋은 건물에 안 좋은 기운만 깃드는 것만 같아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한 고딩의 어깨를 팍팍 치며 말했다. 얌마, 어깨 좀 펴라! 고딩이 다 그런 거지. 나 때는~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나는 어이가 없어 멍을 좀 때리다 혼잣말을 연신 해댔다. 요즘 애들은 너무 싸가지가 없다니까. 건물 관리하랴, 애들 관리하랴. 난 대체 언제 쉬나? 드디어 옥상에 도착한 나는 라이터를 찾으려 바지 주머니를 더듬댔다. 그때, 누군가 위험하게 난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왠지 낯이 익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침에 본 그 고딩이었다. 고딩은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어이! 거기서 뭐해, 위험하게! 얼른 내려와!
“오지 마! 오면 뛰어내릴 거야!”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자동으로 다가가던 걸음을 멈췄다. 뛰어내린다니. 이 건물 산 지 1년도 안 됐는데. 만약 진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다. 고3이 자살한 건물은 도로 팔수도 없었다. 나는 달달 떨며 고딩에게 말을 걸었다.
하, 학생, 일단 내려와. 내려와서 얘기하자고. 여기 7층 수학학원 다니지? 그래, 공부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 학생? 눈은 왜 감지? 그러는 거 아니야...
“아저씨가 뭘 아는데요. 내 인생 알아요? 맨날 비교나 당하면서 사는 게 어떤 기분인지는 알아요? 부모님도 저 맨날 죽인다고 해요. 그냥 죽는 게 낫다고요.”
그래서 정말 죽기라도 할 작정이야? 나는 학생에게 소리를 질렀다. 학생이 여기서 죽으면 나는 이제 칼국수도 못 먹고, 기타 학원 원장한테 갑질도 못 하고, 무엇보다 여기서 담배도 못 피운단 말이야... 나는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겨우 삼킨 채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학생, 부탁할게. 제발 여기서만 죽지 말아 줘. 제발...
이보다 더 갑과 을이 명확할 순 없었다.
끝.
위 작문의 로그라인과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로그라인
주인공 수식어 : 대치동 7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애연가 건물주.
욕망 : 평생 내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다.
방해물 : 내 건물에서 자살을 하려는 고딩.
- 개요
서론) 오늘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건물 옥상에 올라간다. 옥상에서 전화를 하고 있던 고딩을 마주한다. 고딩을 내쫓곤 담배를 피운다.
본1) 배가 고파져 1층 상가의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본2) 뛰어다니는 3층 기타 학원 학생들을 보고 기타 학원 원장에게 주의를 준다.
본3) 7층 입시 수학학원을 나오는 학생들에게 어깨 좀 펴라며 훈수를 둔다.
가결)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간다.
꺾기) 아침에 본 고딩이 옥상에서 자살을 하려 한다.
진결) 고딩이 여기서 자살을 하면 칼국수도 못 먹고, 기타 학원 원장에게 갑질도 못하고, 내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없다. 한순간에 을이 되어 제발 여기서 자살만은 하지 말아 달라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빈다.
그럼 바로 2번째 작문도 보자!
제목 : 갤러리 식탁
1인용 식탁 위 널브러진 면접 예상 질문지들을 정리하고 검은 봉투에서 컵라면과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락은 전자레인지에 넣어 1분 30초 돌리고, 컵라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전자레인지에서 도시락을 꺼내자 7평 남짓한 원룸에 편의점 불고기 냄새가 금방 퍼졌다. 벌써 이 좁은 1인용 식탁에서 밥을 먹은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1년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됐다. 나는 혼밥용 예능을 보기 위해 휴대폰을 켜 유튜브를 누르려다, 그 옆에 있던 갤러리를 잘못 눌렀다. 갤러리 속 반가운 사진이 보였다. 나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2017년 6월 21일...”
#1. 2017. 6. 21
홍대 입구는 종강한 대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홍대 해방포차로 들어섰다. 포차지만, 홍대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진정한 가성비 맛집이었다. 우리는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3명이서 안주만 7개나 시켰다. 도일이 형은 아직 끓여지지도 않은 김치찌개를 한입 먹으며 이 맛이라고 난리였다. 종강 기념으로 오늘 끝까지 달리자는 도일이 형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여자친구가 있는 민혁이는 벌써 징징거렸다. 민혁이는 여자친구에게 1시간마다 보고해야 한다며 사진을 찍어댔는데, 도일이 형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 웃겨 나한테도 사진을 보내 달라 했다.
#2. 2015. 7. 13
급식소는 언제나 남정네들로 북적북적했다. 나 같은 고3들은 이제 종이 치기도 전에 내려와 배식을 받았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오늘은 비빔밥과 떡볶이, 그리고 무려 월드콘이 나오는 초특급 급식이 나오는 날이었다. 나는 이건 길이길이 보존해야 할 급식이라며 몰래 내지 않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옆에 앉아있던 병찬이 고3 되더니 급식 사진을 찍어대고 드디어 미친 거냐고 물었다. 나는 영어 단어 책 들고 내려오는 너보단 미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며 급식을 싹싹 비우고 급식소를 나가는 길에 영양사 쌤에게 급식판을 보여드렸다. 엄청 좋아하시는 영양사 쌤을 보면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3. 2011. 4. 30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복도엔 울음소리와 비속어로 가득했다. 그 중간엔 올백 맞은 시험지를 들고 있는 내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올백 맞았어!
우리 세 가족은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동네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빠는 내가 너무 대견하다며 내가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와 안심스테이크까지 시켜주셨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치 생일 같았다. 중3이 돼서도 백 점을 맞아 엄마아빠를 웃게 해줄 거라 다짐했다. 엄마는 이렇게 좋은 날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레스토랑 매니저 누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김치-’를 외치며 손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갤러리 속 사진들을 봤을 뿐인데, 그 당시로 돌아간 것만 같아 괜히 눈물이 글썽였다. 나는 사진 속의 도일이 형과 병찬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 어떻게 지내? 조만간 민혁이랑 술이나 한잔하자. 병찬아, 잘 지내지? 보고 싶네.
그리고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컵라면이 무슨 밥이냐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컵에 세워두고 엄마와 계속 영상통화를 했다. 그때, 도일이 형과 병찬이에게서 온 답장이 휴대폰 화면 위로 보였다.
‘나도 뭐 면접 다니고 똑같지. 언제든지 불러. 민혁이 데리고 바로 나갈게ㅋㅋ’
‘잘 지내지. 나도 보고 싶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
“아들, 갑자기 왜 말이 없어?”
여전히 1인용 식탁에 혼자 앉아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끝.
위 작문의 시제는 '1인용 식탁'이었다.
그리고 로그라인과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로그라인
주인공 수식어 : 홍대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세준.
욕망 : 혼자 밥 먹기 싫다.
방해물 : 떨어져 살고 있는 동창, 동기, 그리고 가족.
- 개요
서론) 세준은 작은 자취방 안 1인용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 갤러리를 보게 된다.
본1) 대학교 시절, 동기들과 대학로 맛집에서 종강의 행복을 누리며 찍은 사진.
본2)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급식소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먹은 급식 사진.
본3) 중학교 시절, 중간고사 올백을 맞아 가족들과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며 찍은 사진.
가결) 갤러리 속 사진을 보다,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꺾기)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 동창 그리고 가족에게 연락을 한다.
진결)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자,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을 바라는 자라면, 이쯤 봤을 때 뭔가 느껴지는 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로그라인과 개요가 왜 중요한지, 또렷하게 파악하길 바라며 나는 지금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의 작문과 그 작문 로그라인과 개요를 보여주고 있는 거다.
그럼 이번엔 3번째 작문이다.
시제: 어느 한 사람이 불편한 진실을 느끼게 된 상황이나 이야기를 창작해 보시오.
제목 : 연희와 나
“헤어지자. 우린 여기까지가 맞아.”
나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연희에게 이별을 고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을 함께했고, 한때 뜨거웠던 사랑이 식어버리는 당연한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런 평범한 이별을 하는 것뿐인데, 연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혼자 강남역 메가박스에서 상영될법한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쳐다보니 쪽팔려 죽을 것만 같다. 연희야, 제발 좀 쿨하게 받아들일 순 없겠니?
연희와 헤어진 지 벌써 4일이 지났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인별그램에 들어가 연희의 계정을 검색했다. 역시나. 단 한 개의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연희는 인별그램 중독자다. 그런 연희가 4일째 글을 올리지 않았단 건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연희의 계정에 글이 올라왔다. #현대백화점, #디올신상백, #이건사야돼
이런, 이별의 슬픔을 쇼핑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슬픔을 모두 해소하려면 꼬박 1억은 써야 할 텐데. 아니, 1억이 아니라 전 재산을 탕진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연희가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연희와 헤어진 지 2주가 지났다. 오늘은 연희를 소개해 줬던 민석이와 치맥을 먹기로 했다. 한참을 떠들었더니 치킨은 뻑뻑 살만 남았고, 맥주 2병이 비워졌다. 뭐, 연희는 요새 잘 지낸대? 나의 형식적인 질문에 민석이는 조심스럽게 연희의 근황을 꺼냈다. 지난주 연희에게 아는 선배를 소개해 줬다는 것이다. 선배라는 사람의 얼굴을 보아하니 언뜻 보면 반반한 듯싶지만, 나를 만나다가 이런 남자를 만나는 건 속 보이는 짓에 불과했다. 나를 잊으려 온갖 노력을 다 하는구나. 나랑 헤어지고 이런 놈을 만나면 주위에서 뭐라 생각하겠냐고. 나는 죄책감을 마시는 건지, 맥주를 마시는 건지 모를 정도로 연희에게 미안해졌다.
연희와 헤어진 지 어느덧 3달이 지났다. 연희가 그 소개팅남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이렇게 빨리 결혼을 한다니. 수상한 마음에 민석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겨우 첫눈에 반해서 결혼을 한다고?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나를 잊고 싶은 마음에,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는 게 맞았다. 설마 진짜 첫눈에 반했을 리는 없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결혼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연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웨딩화보 사진이 올라왔다. ‘저 결혼해요^^’라는 상태 메시지와 함께. 나는 읽었다. 저 슬픈 눈웃음을. 연희도 내가 저 슬픔을 읽어주길 바랐겠지. 그래,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순 없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연희의 결혼식 날이 되었고, 나는 그녀의 결혼식장을 찾았다. 그리고 연희가 있을 신부실로 향했다. 신부실의 커튼을 젖히자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자태의 연희가 보였다.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선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니. 울컥했다. 연희야, 기다려. 내가 너를 이곳에서 구해줄게.
사람들이 점차 빠지자 드디어, 연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오빠? 미쳤어? 오빠가 여길 왜 와?”
“연희야, 나 반성 많이 했어. 그렇다고 나 때문에 이런 선택까지 하면 어떡해. 내가 다 잘못했어, 우리 다시 만나는 걸로 해. 그러니까 제발 여기서 그만둬. 제발...”
“무슨 미친 소리야... 오빠 미쳤어? 쪽팔리게 왜 와선 행패야! 내 결혼식 깽판 치려고 작정했어? 그런 거 아니면 당장 나가! 남편 보기 전에 빨리 나가라고!”
응?
나는 지금 건장한 경호원들의 팔에 의해 신부실에서 끌려 나가고 있다.
연희에게 묻고 싶었다. 그럼 진짜 소개팅남에게 첫눈에 반해서 나랑 헤어진 지 세 달 만에 결혼하는 거냐고. 내가 구질구질한 전 남친인 거였냐고. 정말 나와 헤어지고 아무렇지 않았던 거냐고.
끝.
위 작문의 로그라인과 개요도 보자.
- 로그라인
주인공 수식어 : 2년 동안 사귄 연희와 헤어진 직장인 재준(남, 29)
욕망 : 연희(여, 28)가 나를 잊고 쿨하게 지내길 바란다.
방해물 : 쿨하게 지내는 걸 넘어 1년도 안 됐는데 다른 남자랑 결혼을 하는 연희
- 개요
서론) 강남역 한복판에서 연희에게 이별을 고한다. 질척대는 연희를 이해할 수 없다.
본1) 걱정스러운 마음에 연희의 SNS를 본다. 연희는 요즘 쇼핑으로 슬픔을 해소하는 것 같다.
본2) 연희가 소개팅을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빨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를 잊으려 노력하는 연희의 모습에 죄책감이 든다.
본3) 연희가 소개팅남과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나를 잊으려 섣불리 결혼까지 하려는 연희가 너무 걱정된다.
가결) 연희의 결혼식장에 찾아간다.
꺾기) 나를 보곤 오빠가 여길 왜 왔냐며 화를 내는 연희. 연희에게 나 때문에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냐며 울부짖는다.
진결) 그런 나를 쪽팔려 하는 연희. 남편이 보기 전에 당장 나가라며 쫓아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멀뚱멀뚱 댄다.
로그라인과 개요 대로 쓴 거다.
로그라인과 개요 없이!!!! 바로 본문을!!! 써버리는!!!!
그런 극작과 입시생들이 너무 많다. 그럼 합격 못 한다고 장담한다.
이야기는 구조와 장르다. 로그라인과 개요를 통해 구조와 장르를 미리
구축해놓고 본문을 써야 한단 말이다.
그리고 끝으로 작문 한 편 더 보자.
바로 <연희와 나>의 오리지날 버전이다.
제목: 찌질대마왕
#1.
“오빠, 그러지마. 응? 내가 더 잘할게. 제발... 떠나지 말아줘. 응?”
용산역 한복판에서 나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별 이유는 없었다. 사귄 지 3년이 지나 마음이 식었을 뿐이었다. 아무런 미련도 감정도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나는 세상,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이별은 일생일대의 비극이었을 터. 말없이 흐느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내 팔을 붙잡으며 놔주지 않았다. 아씨, 사람들 다 보고 있는데 쪽팔리게. 쿨하게 헤어질 것이지 찌질하게 이게 뭐하는 짓인지 원. 나는 야멸차게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왔다.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뭐 어떠냐. 쿨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연애인 것을... 그녀도 좀 쿨해졌으면 좋겠다.
#2.
그녀와 헤어진 지 3일이 지났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그녀의 SNS를 들어가봤다. 역시나.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다. 나와의 이별이 엄청난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나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니 잊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자살이라도 했으면 어쩌지? 하지만 다행히도 밤늦은 시각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친구와 카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말이다. 아마 나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의 슬픔을 토로하기 위해 만난 듯싶다.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아직도 나를 잊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여전히 그녀의 상태가 걱정된다. 부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3.
그녀와 헤어진 지 3주가 지났다. 처음 그녀와 소개팅을 주선해준 친구와 함께 삼겹살에 소주를 먹기로 했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고 소주 2병을 비워낼 때까지 우리의 수다는 계속됐다. 그 때 친구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근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최근에 그녀에게 아는 지인을 소개팅 해줬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아하니 뭐 반반하게 보이지만 나보다는 상당히 없어 보인다. 소개팅남의 SNS을 타고 들어가 다른 사진들도 함께 비교하며 봤다. 이런 녀석 얼굴을 보고도 소개팅 할 엄두를 내다니. 어지간히 나의 존재를 잊고 싶어 발버둥 치는 듯하다. 자기 자신을 이렇게 자학하면서까지 그 슬픔이 깊었나 싶어 괜스레 죄책감이 든다.
#4.
그녀와 헤어진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녀가 그 소개팅남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맙소사. 이렇게 빠른 시간에 결혼을?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저 첫 눈에 반해서 결혼까지 갔다는 대답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를 잊고 싶은 마음에,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충격 그 자체다. SNS에 그녀의 웨딩 화보 사진이 올라왔다. 댓글과 좋아요를 하나씩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모두 하나같이 가식적인 축하인사뿐이었다. 좋아요를 누른 친구들의 SNS만 봐도 그들의 가식적인 면모는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그녀 또한 매 댓글마다 영혼이 담기지 않은 답글을 달았을 뿐. 여전히 슬픔이 가득했다. 이를 어쩌면 좋은가. 한 사람의 인생이 나로 인해 이렇게 망가지다니.
#5.
그녀의 결혼식장이다. 해맑게 웃으면서 신부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와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건네줬다. 저 슬픈 미소. 그렇다. 분명 ‘나를 여기서 구출해줘’라는 표정이다. 딱 봐도 안다. 부모님을 만나자, 왈칵 눈물을 쏟아낼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안다. 하기 싫은 거야. 여전히 마음 깊이 나를 잊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고. 하지만 뭐 어쩌겠느냐. 쿨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사랑인 것을... 이제는 그녀도 쿨하게 나를 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끝-
명백히 느껴질 것이다. <연희와 나>는 방금 본 <찌질대마왕>이라는 작문에
시제: 어느 한 사람이 불편한 진실을 느끼게 된 상황이나 이야기를 창작해 보시오.
라는 시제를 적용시켜서 연습하여 쓴 것이다.
기존에 자신이 쓴 좋은 퀄리티의 레퍼런스 작문이 있다면, 일단 그걸로 충분히 의의는 있겠으나
시험장에서 어떠한 시제가 나올지 예상이 안 되므로 항시 다양한 시제에 맞춰서
나의 레퍼런스 작문을 다시 재수정해서 써보는 연습이 필요하단 뜻이다.
그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없으면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 확률을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그럼 마지막 작문이다.
- 시제: 10년 전 오늘, 대한민국
제목 : 제2의 인생
지급 영수증[고객용]
지급일자 : 2022/09/19 (월) 17:11:06
당첨총액 2,675,257,538
세금합계 849,834,658
실수령액 1,825,422,880
2023년 9월 19일, 드디어 들어왔다. 제1032회 로또 1등 당첨금 18억. 나라에서 세금을 8억씩 떼 가긴 했지만 나 같은 백수한텐 18억도 감개무량하다.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날은 모두 잊고, 차도 있고, 집도 있는 남자로 다시 태어나 제2의 인생 한번 살아보자!
그전에 배부터 채우고. 나는 집 앞 5분 거리의 봉구스밥버거로 향했다. 가난한 백수 시절, 나는 참치마요와 볶음김치가 전부인 3천 원짜리 기본 밥버거로 삼시 세끼를 때웠다. 한 맺힌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소불고기가 들어있는 7천9백 원짜리 프리미엄 몬스터 밥버거, 누군간 쉽게 포장해가던 이놈의 프리미엄 몬스터 밥버거 때문이었다. 얼마나 간절했었던가... 나는 삐죽 튀어나온 소불고기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음, 이 맛이구나! 달달하고, 짭조름했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스포츠카 정돈 타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 나는 용산 포르쉐 센터로 향했다. 꿈에만 그리던 포르쉐 911 타르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있다. 1억 7천이나 하는 차를 사고도 16억 3천이나 남는다니. 정말 꿈만 같다. 나는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쿨하게 일시불로 그었다. 어설프게 운전대를 잡은 나는 한강 대교를 달렸다. 그리고 마룬파이브의 슈거를 스피커가 터질 만큼 크게 틀었다. 내 심장도 함께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포르쉐를 끌고 성수동의 한 부동산으로 향했다. 바로 한강뷰 아파트, 트리마제를 계약하기 위함이었다. 백수 시절의 나는 백만 원도 없으면서 틈만 나면 한강뷰 아파트를 찾아봤다. 그게 도움 될 날이 올 줄이야. 수백 번은 더 검색했던 트리마제. 평생 살아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트리마제. 보증금 15억, 관리비까지 해서 월에 228. 16억 3천이 꽂혀있는 계좌를 가진 나에겐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틀 뒤면 나는 트리마제로 이사를 간다.
나의 눈부신 제2의 인생, 막을 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나는 2032년의 달력을 넘겼다. 나는 여전히 트리마제에 살고 있고, 여전히 포르쉐를 몰았다.
하지만 낮엔 포르쉐를 타고 성수동 인스타 카페에서 설거지를 했고, 밤엔 SK 주유소에서 세차를 하고 트리마제로 귀가했다. 쪼달리는 달엔 막노동과 배달까지 뛰었다.
그렇다. 나는 월세 228만 원. 포르쉐 보험료, 유류비 등등 차 관리비만 월에 450만 원. 한 달 식비 50만 원. 그렇게 1억 3천을 3년도 안 돼서 다 써버린 것이다. 두 번째 행운을 노리고 매달 알바비로 로또 200만 원어치를 사들였지만,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잔액 200만 원이 찍힌 낡은 통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주유소 알바를 가기 전 주유소 근처에 있는 봉구스밥버거에 들렀다. 그리고 다시 3천 원짜리 기본 밥버거를 시켰다. 볶음김치를 씹으며 중고차 판매 사이트를 뒤졌다. 그리고 지방에 싼 전세 아파트도 함께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제2의 인생은 이렇게 막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나의 제3의 인생, 막을 여는 순간이었다.
끝.
이 작문의 로그라인과 개요는,
공유하지 않겠다. 왜? 이걸 본 당신이 직접 작성해보길.
자신이 본 작문의 로그라인과 개요를 작성해보는 연습을
나는 내 제자들에게도 시킨다.
최소 50여개의 합격자 작문을 읽고,
그 작문의 로그라인과 개요를 짜게 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이야기 구조와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오르면서
자신이 쓸 이야기의 로그라인과 개요를 짜는 실력도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을 바란다면,
당신도 해봐라. 그래야 실력이 는다.
그냥 단순하게 남의 좋은 글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작문 실력이 느는 게 아니다.
거듭거듭거듭 말하지만 근육질의 보디빌더 몸을 본다고 해서
내 몸이 근육질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보디빌더의 운동법을 흉내내어 내가 직접 쇠질을 할 때에만,
비로소 내 몸이 근육질이 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맨날 머리로만 이야기를 구상하고, 입으로만 글을 써내는 행태는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은 머나먼 농경사회의 기복제의의 허망한 망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 작문 4편 공유 ㅣ 극작과 과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