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의 연습 작문을 가지고 왔다.
참고로 이걸 쓴 나의 제자는 이러한 작문을 시험을 앞두고 최소 2편 이상씩 매일 썼다.
매일매일 실전처럼 쓴 것이다. 그리고 내게 매일 첨삭 피드백을 받았다.
1주일에 작문 1~3개 정도 쓰는 수준으로 이 험난한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에서 합격을 바라는 건
작가가 되려는 자의 미덕이 아니라 동네 양아치의 몹쓸 심보에 가깝다.
압도적 연습량이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을 좌우한다.
그리고 내가 제작하여 여태껏 수많은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를 양산해낸
위의 교본에 실린 내용을 모두 정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글쓰기는 기술이다. 기술을 장악하지 못 하면 매번 들쑥날쑥한 퀄리티의 작문을 쓰게 되어
그게 고스란히 실제 극작과 실기 시험 때 실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글쓰기 기술의 원리를 익히고, 그걸 지속적으로 반복 연습해야 기술 장악이 가능해진다.
시제: 다음의 2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시오.
1.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를 첫 문장으로 하여 글을 쓰시오.
2. 120살 된 주인공을 1인칭 시점으로 쓰시오.
제목 : 소원이란 이름의 저주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온통 하얀 배경에, 동서남 쪽에는 세 개의 각각 디자인이 다른 나무 문이 있고, 북쪽, 나의 바로 앞에는 거창한 흰 사제복에 하얀 수염이 무성히 자란 동년배로 보이는 노인이 왕 의자에 앉아있다.
고인 김성칠!!
흰수염 노인이 소리쳤다. 김성칠, 내 이름, 그리고... 고인? 아, 내가 드디어 죽었나 삶의 미련으로 눈물은 흘릴 필요없다. 120살의 나이에 도달하면 죽음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나에게 서류 하나가 던져졌다.
"내 저승 심사관 인생 중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네, 어떻게 120년 인생은 남한테 피해 한 번 안 주고 살았단 말인가? 영락없는 천국행."
고인 성함 : 김성칠 / 나이 : 120세
남에게 피해를 끼친 횟수 : 0 회
저승심사관이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쪽은 바라보았다. 올리브 나무가 무성히 핀 나무 문, 저 곳이 천국행이로구나. 내 120년 인생, 남에게 피해 한 번 안 주고 살아온 삶이 이렇게 보답을 받는구나.
"감사하오, 심사관 양반. 그럼 나는 저곳으로 가면 되나?""
" 그 전에, 고인의 생애가 기특하여 신인 내가 가만 있을 수 없네. 소원 세가지를 들어줄 터이니 말해보게."
"소. 소원.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거요?"
"이곳은 신의 영역이네. 의심 말고, 세가지 소원을 만해보게."
"... 그렇다면.. 나의 증손자가 먼저 생각나는구려 그, 조그맣던 놈이 이제 대학 입시인가 뭔가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증손자가 하고 있는 대학입시가 아주 잘, 아주 잘 됐으면 좋겠네. 원하는 곳에 들어가 우리 증손자가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다면, 내 여한이 없겠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으로 한 폭의 그림이 몽타쥬처럼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저승심사관이 말했다.
"지금 상상되는 건, 단순 상상이 아니네. 소원이 이뤄진 이승을 비추는 것이니, 안심하게."
연세대학교 합격소식은 접하고 환희에 찬 증손자, 과잠바를 입고 연세대 캠퍼스로 발랄하게 들어가는 증손자, 동기들과 어울려 참이슬을 나눠마시는 증선자의 모습이, 차례대로 지나갔다.
"저, 정말 소원이 아주어지는군요."
"어허, 이곳은 신의 영역이라 안 했나. 자, 두 가지 남았네."
"아들, 우리 아들이 이제 꼬박 75세요. 우리 가정력에 알츠하이머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아들한테만 치매가 찾아왔단 말이오. 지 집사람도 먼저 보내고, 요양보호사 없이는 혼자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우리 아들... 치매가 싹 가셔서 요양보호사 없이도 혼자 생활할 수 있게 되면, 내 참 다행이겠네."
말이 끝나자마자, 머릿속으로 잘린 필름들이 기차를 타고 지나가듯 장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말똥말똥해진 아들의 모습, 혼자 3분 양치를 하는 모습, 혼자 쌀을 씻어 밥을 앉히는 모습이 보여졌다.
"정말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에요."
"자, 눈물 흘릴 시간은 없네, 마지막 소원을 안해보게."
"우리 손자. 에... 그러니까, 우리 아들의 아들이 이번에 개인외과병원을 개업했다오. 대학병원 그만둔다는 걸 온 가족이 나서서 말렸는데 고집이 좀 세야지. 손자 외과병원 잘 되는 모습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는데, 그 모습을 못 보고 이 저승에 와버렸네. 우리 손자 병원만 잘 되면, 내 마지막 소원이 아깝지 않겠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를 이젠 익숙하듯 받아들였다.
손자의 새로 개업한 외과병원 진료실에 환자들이 끝없이 밀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손자는 어깨가 아픈 사람, 무릎이 아픈 사람, 발목이 아픈 사람을 진료해주며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자, 세 가지 소원은 다 이뤄졌네. 고인 김성칠, 내 다시 말하지만 인생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꺄치지 않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네, 영락없는 천국행이니 앞에 놓인 서류를 들고 저 초록 올리브나무가 무성히 핀 나무 문을 열게!"
나는 천천히 일어나 서를 집어들고 올리브나무 쪽으로 걸었다. 안 그래도 미련없던 나의 인생, 세 가지의 소원까지 곁들이니 온 마음이 후련해진다. 나는 굳은 마음으로 천국행 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응? 문고리를 돌렸는데, 왜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인가? 그때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내가 든 서류에서 하얀 빛이 쏟아지더니, 서류의 숫자가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고인 : 감성칠 / 나이: 120세
남에게 피해를 까친 횟수: 3회
그 순간, 나의 머릿속으로, 필름을 담은 열차가 지나가듯. 일련의 장면들이 보여졌다.
나의 증손자와 비슷한 또래의 남아가 연세대 예비 1번에서 떨어져 죄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 소원이 이뤄짐에 의해 누군가는 대학에서 밀려 떨어졌다.
나의 아들 집에서 나와 통장을 보며 한숨을 쉬는 요양보호사 중년 여성이 보였다. 내 소원이 이뤄져 건강해진 아들로 요양보호사는 하나뿐인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세 명의 남자가 막노동 일을 하다 어깨를 다치고, 의자에서 떨어져 무릎을 다치고, 축구경기를 하다가 발목을 다치는 장면이 보여졌다. 그 세 명을 남자는 나의 손자가 개업한 의지병원으로 향했다. 나의 소원이 이뤄지려면 누군가는 꼭 다쳐야 했다.
나의 소원은, 대립된 시선으로 볼 땐, 그저 소원이란 이름의 저주에 불과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친 나는, 친구의 문을 열 자격이 없다.
"이봐! 고인 김성칠! 빨리 안 들어가고 뭐 하는 건가?"
내 소원을 들어준 저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남에겐 저주에 불과해도, 나에겐 축복이었으니까.
누군가 돈은 벌면, 누군가 돈을 잃듯이,
행복과 불행은 서로 대립되며 끌었는 순환구조를 이루는 거니까,
내 소원의 결말도, 당연한 거다. 내가 천국에 갔으면 누군가는 지옥에 가는 것이니, 차라리 다행인 것이다.
-끝-
아래 작문은 모바일 환경에선 잘 안 보일 거다.
데스크탑으로 읽어보길!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 작문은 같은 날 쓰여진 거다.
하루에 2개 작문을 쓴 사람과 일주일에 2개 작문을 쓴 사람 중, 누구의 합격 확률이 높을까? 답은 명확하다.
글을 매일 안 쓰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의 근원은 무지에 있다.
어떻게 글을 쓸지 모르기 때문에 글 쓰려고 노력을 해봐도 새하얀 백지 앞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매타작 당하는 기분 속에 몇 번 있다 보면, 그 공포에 압도 당해 그 다음 날부턴 감히 글쓰려고 하는 시도 자체를 안 하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 기술에 대한 이론 파악이 중요한 거다. 교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글쓰기 기술 장악은 요원하다.
퓌트스쿨 카카오톡 문의 바로가기 (클릭)
제목: 소원이라는이름의 저주 / 지금, 보고 싶다 ㅣ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 작문 2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