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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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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전문가.

by 김봉민 2023. 12. 22.

인생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오성급 사기꾼들이 써내는 

수필집이나 자기계발서에선 이런 말들이 나오곤 하지. 

 

너 자신을 믿어라. 

네 감정을 소중히 대해라. 

넌 뭐든지 될 수 있다. 

 

그런 말에 해까닥 매료되는 멍청이들은 

엊그제쯤 잠들기 전 했던 그 쉬운 결심과 다짐을 또다시 반복하지. 

 

너 자신을 믿어라. 

네 감정을 소중히 대해라. 

넌 뭐든지 될 수 있다. 

 

자아는 종교는 아니다. 믿을 대상이 아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폴 포트가 행한 악의 근저에는

내가 옳은 짓을 하고 있다는, 절대적인 자기 신념은 있었다. 

능력도 재능도 용기도 부족해서 고민에 빠진 사람들에게 

대체 뭘 담보로 대책 없이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부추기냔 말이다. 

차라리 자기 의심이 낫다. 

한 사람을 가장 심각하게 망치고 괴롭히는 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네 감정을 소중히 대해라, 라는 말도 나는 싫다. 

그냥 내 감정은 내 감정일 뿐이다. 

내가 그 감정을 갖고 깊어서 갖게 된 적은 드물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쫌생이스럽게 별별 것에 

추잡한 감정이 들어서는 내 자신이 싫을 때도 있다. 

그런 감정은 내 마음에서 뜯어내어 화형을 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감정이란 게 무슨 금지옥엽이라든가, 옥황상제, 혹은 성인군자인 것도 아니고, 

그냥 잠시 스쳐지나가는 손님 같은 것인데, 

그런 사소한 것들에까지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감정이 생긴 원인이 뭔지 궁리를 해보며, 

내 감정이 곧 나 자신은 아닌데 

내 감정이 마치 이 우주의 헌법이라도 되는 것마냥 

굴으라는 거냔 말이다

 

 

넌 뭐든지 될 수 있다, 라는 말은 상식적으로만 뜯어봐도 개구라다. 

내가 메시가 될 수 있나? 내가 교황이 될 수 있나?

내가  BTS 멤버가 될 수 있나? 내가 이재용이 될 수 있나? 

내가 될 수 있는 건, 내가 살아온 나날 동안 내가 꾸준히 시간을 써왔던 종목과 

내 부모가 내게 던져준 DNA가 가진 가능성의 영역의 합집합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뭐든 될 수가 없다. 난 한계덩어리다. 

무모한 도전은 무지가 근간을 이룬 무식한 시도라는 사실은 감춘 채, 

넌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을 해대는 것인가.

그건 그저 무책임하게 타인의 귀에 기름칠을 해주고는 

어때? 기분 좋았지? 라고 자위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넌 뭐든 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너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해왔고, 

너에게 그것과 관련한 재능이 남들보다는 좀 뛰어날 수도 있으니, 

이러한 것들은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이 인상을 쓸 수 있으니,

아주 손쉽게 퉁쳐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런 개소리들을 말하고 싶지 않다. 

나도 인간이기에 미움 받는 게 싫다만, 

헛소리를 하는 나 자신은 더 싫다. 

당연히 차악을 선택할 뿐이다. 

미워해도 어쩔 수 없단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처세술이 

내 방 안에 자리잡을 곳은 없다. 

좋은 게 나쁜 게 될 수도 있고, 

나쁜 게 좋은 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다가 아주 심하게 털린 적도 있고, 

내 감정이 가는 대로, 지 멋대로 살았다가 극심한 후회의 나날을 보낸 적도 있다. 

그 어떤 인간도 인생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인생전문가를 자처하는 자들은 그래서 모두 사기꾼이다. 

나는 그저, 최대한 개소리는 걸러 들으며, 거짓에는 속지 않으며,

사기의 피해자는 절대 되지 않으며,

안 그래도 하루하루 노화를 겪으면서 거대한 비극의 과정 속에 놓여있는 내게,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최대치의 평온함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