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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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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만만

by 김봉민 2023. 12. 20.

사는 것이 막막하지 않고 사는 것이 만만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살아도 죽고자 하는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아있는 것은 아무래도 부인 못할, 살아있는 것이구나. 

 

막막 1장. 

내 짐을 다 싼다고 쌌는데 예상보다 훨씬 양이 적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인해 발걸음의 중압감이 상쇄된 거라고 

자위하면서 나는 종로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버리지 못 하고 품고 있던 나의 계획을 

나와 함께 일하기로 한 친구에게 스피치하고는 내가 앞으로 덜어내야 하는 것과 

덜어낼 수 없은 것을 분간하고자 했지만 

지금 당장은 오늘부터 어디서 지내야 하는 것인가부터 

해결해야 했다. 부랴부랴 나는 또다른 친구를 만나러 서울시청 인근의

존슨탕 가게에 갔다. 오늘 하루 너희 집에서 좀 잘게, 라는 말이 

내가 원래 더 쌌어야 하는 짐보다 무겁게 여겨지고, 

내내 나는 말을 돌려가며 정치 이야기, 문화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로 

일관했다. 소주를 한 잔씩 들이키면서 어떻게 내가 진정 해야 하는 말의 포문을 

열 수 있을까,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그리고 옘병할 소주는 취기는커녕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주는 촉매제가 되어 

진작에 500만원을 모아 보증금부터 마련했어야 했다는 통탄함을 

속으로 곱씹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친구는, 

오늘 너 우리집에서 잘래? 라는 말을 트름하듯 내던졌고, 

나는 센 척, 응, 뭐, 그러지 뭐, 라는 식으로, 넘기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날 밤, 친구의 집 방구석 한 켠에서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친구에게 대략 35만원 정도 줄 테니 잠시 너희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했고, 

친구는 자기 여자친구랑 곧 결혼을 해야 하니, 눈치를 봐야 하고,

그러니 1달만 머물어달라고 했다. 그후에는 어디서 지내야 하는 거지, 라는 

중압감 속에서 며칠 후 나는 비로소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게 2011년 겨울이었다. 그걸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만만 1장. 

만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유서 깊은 가난은 내가 세상을 만만하게 대할 사치 같은 걸 

애시당초 승락하지 않았다.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단 일 초도 안 만만했다. 

나의 분노는 거기서 파생되었다. 

의식주 중 주에 해당하는 것에 늘 빵꾸가 심하게 나 있었고, 

때문에 식에 해당하는 것은 음주로 많은 부분 일관해버렸다. 

맨정신으로 있는 게 고통스러웠다. 

의는? 의는 뭐, 모르겠다. 내가 옷 잘 입는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한데, 

딱히 큰 욕심은 없다. 아예 욕심이 없지도 않지만. 

그래서 만만 1장이라고는 썼지만 사실 이것도 막막 2장이구나. 

 

 

덜 막막해지면 좋겠다는 소원을 연말, 연시 얼마나 빌었던가. 

그리고 소원을 언제부턴가는 아예 안 빌게 된 거 같기도 한데, 

그건 아마 착각일 것이다. 

나는 소원 비는 데 있어선 프로페셔널이다. 

물론, 소원을 비는 것은 또다른 좌절의 탑을 쌓는 것과 유사한 거 같은데, 

지든 이기든 어쨌든 계속 진지하게 게임에 참여하면 그건 프로니까..

그러므로 내년에도 살아는 있되, 남에게 너무 큰 폐가 되지 않게, 

내 몸, 내가 이끌어가고 내 밥, 내가 지어 먹고, 내 잠들 곳, 월세 내가 내고, 

청소 부지런히 하면서, 내 옷, 내가 잘 세탁하고 건조시키는 수준은 

반드시 유지하고 싶다. 

 

부모 잘 만나는 게 인간에겐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부모를 아예 안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 대학 가는 것도 힘들긴 했겠다만, 대학을 혼자서 어떻게든 가려면 갈 수는 있고,   

대신 근원적인 외로움은 더 깊었겠지. 그래도 무한히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를 상정하며 

따뜻한 마음 유지하려 하는 것에서 삶의 의의를 찾으려 했을 거 같다만, 

이 추정마저도 부정확한 것이지. 지금 내가 살아온 이 인생 말고 다른 우주의 나를 

여기의 나는 경험할 수 없다. 그저 이런 나는 이런저런 상상이나 망상, 혹은 소망을 

부지런히 품어보면서 살아질 때까지, 살아내는 게 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