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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서울예대 입시/면접 대비와 입시 생활

누가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를 도전해야 하는가?

by 김봉민 2023. 11. 9.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한 내 제자들을 가끔 만나면, 
나는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아주 많다. 
입학하기 전에는 그토록 극작과 입학 후 겸허한 자세로 공부를
미친듯이 열심히 할 것처럼 말해놓고선, 입학만 하면 갑자기 무슨 
세상 가장 유망한 극작천재라도 된 것 마냥 자기 절대화에 빠져 
세상 알기를 우습게 알며 배우겠다는 자세는 새까맣게 잊은 채 
건방을 떨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걸 두고 나는 예술가병, 혹은 천재병이라고 부른다. 
그런 자식들은 한 대 쥐어박아 정신 차리게 해줘야 하겠지만, 
어차피 시간이 흐르고 졸업이라는 당연한 사태를 맞이하고 나면 
세상이 알아서 매타작을 퍼부어줄 테니 나는 액션까지는 취하진 않는다. 
문제는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예술가병과 천재병에 사로잡힌 중증 환자 녀석들이다. 
생활은 등한시 하고, 그러면서 습작은 이런저런 같잖은 핑계를 대며 
쓰지도 않으면서 자기 인생을 축 내고 있다. 
난치가 아니라 사실상 불치의 지경에 진입한 이런 녀석들은 
너무도 애처롭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대부분 계속 그렇게 살다가 한살씩 나이를 먹어가다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엄한 곳에서
생활을 위한 노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이때는 이미 자존감이 박살난 상태라 
아주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발끈하며 주변 인간 관계를 파탄내는 것에서 
자기 힘을 확인하려고들 한다. 완연한 자기 착각, 아니, 완연한 자기 파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다... 
 
철학과 졸업했다고 철학가 되는 게 아니다.
경영학과 나왔다고 경영자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법학과 나왔다고 반드시 검사, 판사, 변호사 되라는 보장이 없다. 
극작과는 의대가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근원에는, 천재병이나 예술가병이 아니라, 
입학 이전, 더 정확하게는 극작과 입시를 결심하기 이전의 열등감이 있다고 나는 본다. 
 
그 뿌리 깊은 열등감이 입학 후, 졸부 심리를 자아내며 자기 인생을 파탄내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주변의 그 누구가 극작 같은 걸 꿈으로 삼는가?
일반적인 가정 환경 속에서 살아온,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이가 극작을 꿈꿀 거 같은가?
극작은 허구의 세계다. 평상 시에 허구의 세계를 미친 듯 갈구하는 자는 누구일까?
현실에서 결핍을 느끼지는 자다. 현실의 결핍이 허구에 대한 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 예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대개, 극작과 입학을 꿈꾸는 자일 것이다. 
 
지금 극작과를 다니는 현실을 사는 사람은 
극작과 입학이라는 허구를 갈구할 수가 없다. 
 
극작과를 못 다니고 있다는 현실의 결핍 때문에 
극작과 입학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바라는 거란 말이다. 
 
내가 아는 절대 다수의 극작과 동기, 후배, 선배, 그리고 입시생들은 
현실의 심각한 결핍 속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왔다. 
나? 나라고 다를 리 없다. 나 역시 엄청난 현실의 결핍을 겪으며 살았고, 
당연히 열등감이 말도 못 했다. 
그때문에 이 더러운 현실이 싫어 틈만 나면 소설을 잃으며 내가 꿈꾸는 
세계가 펼쳐지는 걸 통해 내 결핍을 채워왔다. 그게 설령 허구의 세계일지라도, 
적어도 내 상상 속에서 만큼은 채워지고 있다는 것에서 작은 위로와 거대한 동력을 
얻으며 더러운 현실을 살아냈던 거다. 
 
그러니 어찌 보면 열등감은 우리 극작인들에겐 필수가결한 것일 수 있다. 
극작과 입학을 하면? 그 열등감은, 내가 바라던 현실의 실현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메워진다. 거기서 만족감이 약간 정도는 생기기도 하고. 아닌 게 아니라 세상은 
서울예대 극작과 학생은 좋아해준다. 어디 가서 예대 극작과 다닌다고 말하면,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해준단 뜻이다. 근데 졸업하면 끝이다.
세상은 극작과 졸업생은 졸라 우습게 안다. 너 도대체 앞으로 뭐 해먹고 살 거냐는 
물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며 우회적으로든 직설적으로든 조롱을 해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누군 꿈이 없었어서 포기한 건지 아니? 나도 꿈이 있었다. 근데 현실을 위해 포기한 거고, 
이젠 너도 꿈 속에서 그만 살고 현실에 눈 떠, 라는 식의 아주 하찮은 충고도 서슴치 않고 해댄다. 
이 기정사실화된 미래가 극작과 입학생들에겐 찾아오게 된다. 
그것도 모르고 학교를 다니며 자신의 열등감을 오로지 서울예대 극작과 학생이라는 
헛된 자부심으로 슬쩍 가려놓은 채 꼴보기 사나운 예술가병, 천재병을 행사하며 산다. 
도살장 끌려가는 돼지는 도살장 끌려가기 전에 가장 사료를 많이 먹게 되는 법이다. 
주인이 그때 가장 사료를 많이 주니까.
 
따라서, 나는 내 극작과 제자들에게 자주 말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 극작과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냥 로버트 맥키 선생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한 100번 정도 
탐독한 후 습작은 대략 50개 정도 써보는 게 작가가 되는 방법에 있어선 
더 나을 수 있다고. 괜히 극작과 들어가서 그 뿌리깊은 열등감에 의한 졸부 심리가 발동해 
부단한 자기 확장을 위해 공부하는 겸허함을 잃으면 오히려 50년, 60년 더 펼쳐질 
여생이 찌그러들 수 있다고, 나는 말한단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극작과 입시 교육을 하고는 있다만, 
여기에도 이렇게 쓰고 싶었고, 그걸 이렇게 실행으로도 옮겼다.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극작과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니다. 
특히나 자신의 열등감이 뿌리깊어서 극작과 입학 후, 예술가병과 천재병에 
분명 걸릴 사람은 그냥 극작과에 안 가는 편이 낫다. 
그럼 누가 극작과에 가야 하는 걸까?
 
부단하고 겸허한 자세로, 극작이라는 거의 무한한 세계를 
죽을 때가지 계속해서 배우겠다는 사람이 가는 게 맞다. 
졸업 후에도 어차피 공부는 해야 한다. 꼴랑 3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걸로는 택도 없단 말이다. 죽을 때까지 공부를 어차피 할 건데, 
일단 학교에 와서 3년 동안 무언가를 제대로 공부한다는 게 뭔지 
맛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극작과에 가야 한다. 
수능 공부를 못 해서 이름난 학교는 절대 못 갈 거 같은데, 
서울예대는 수능을 안 보니까 한 번 시험이나 쳐볼까, 하는 
썩어빠진 정신 상태로는 극작과 입시에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마라. 
 
최종 정리하자.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는 이런 사람이 도전해야 좋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내게 주어졌던 현실로 인해 파생된 
허구의 세계에 대한 강력한 추구가 있는데, 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뿌리 깊은 열등감을 공부를 통해 발본색원하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극작과 입시는 빨리 관두는 게 낫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은 극작과 입시를 계속해도 
되겠다는 사람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길. 도움 될 거다. 
 
 
https://drive.google.com/file/d/1hmE-ms4qwJnC1v7pc4bPHKDRrLFwguRS/view?usp=share_link

서울예대 극작과 실기 작문 합격 교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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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만약 내 제자 중 지금 이 포스팅을 끝까지 다 본 애가 있는데, 
내 글에 마음이 아프다거나 콕콕 찔리는 게 있다면, 
제발 정신을 차리길. 공부해라. 셰익스피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한, 
세상의 모든 극작가는 결국 전부 다 '극작지망생'에 불과한 것이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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