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 이제 차차 예능PD 공채 최종 합격자였던
내 수강생의 작문 자료를 해볼까 한다.
https://vongmeanism.tistory.com/719
많은 언시 준비생들이 그러하듯 이 친구도 막연하게 PD 공채를 준비해야지,
라고 맘만 먹었을 뿐, 글쓰기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기에
작문 연습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한테 연락하여 8주 프로그램을 수강하기 전에
이미 나름 내가 제작한 교본을 보고 공부한 흔적은 나더라.
처음 내게 보내는 작문 임에도 내가 늘 역설하는 '고퀄일반개요' 공식에
맞게 이야기 구조를 짰더라고. 일단 바로 내게 처음 보냈던 작문을 보도록 하자.
시제: 나는 오늘도 ___을 하기 위해 ___에 간다.
-> 다음 두 빈칸을 채워 첫 문장으로 삼고, 글을 완성하라.
12월 1일, 나는 오늘도 공부하기 위해 독서실에 간다.
벌써 4년째. 한 때 나영석, 김태호 PD 같은 스타 예능 PD를 꿈꿨지만, 다 부질없는 이야기다. '귀하의 능력은 높이 평가되었으나, 아쉽게도' JTBC 면접장에서 만난 심사위원의 말이 걸렸다. 벌써 27살이신데, 이렇다할 활동이 없네요? 네. 논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 경력은 사회에서 공백으로 치부했다. 오늘 Jtbc의 결과까지 합치면 벌써 20번째 낙방이다. 졸업하자마자 삼성,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은 벌써 4년차였다. 매일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냐는 엄마의 전화도 이제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보게 된 유튜버 '여락이들'의 포르투갈 한 달 살기는 탈출구였다. 결단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겪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포르투갈로 떠나자. 통장 잔고는 고작 30만 원뿐. 100% 토종 한국인인 탓에 포르투갈어는 27년의 인생 살이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보수적인 부모님도 큰 산이다. 그래도 장수생보다는 그 편이 더 쉬울 것 같았다.
일단 돈부터 벌기로 했다. 마침 1분 거리에 GS25에서 구인 공고를 하고 있었다. 최근 포켓몬 빵으로 인해 손님들이 몰려 알바생이 줄줄이 그만둔 탓에 마포구청 지점 사장님은 두 손 벌려 반겼다. 밤에는 배민 라이더로 활동했다. 집에 와서는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했다. '장수생의 헬조선 탈출기'라는 블로그 이름에 맞게, 매일 번 돈과 포르투갈에 가기 위해 예산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블로그에 기록했다. 또한 편의점 알바, 배민 라이더 알바의 장단점도 후기로 남겼다.
포르투갈에서 살기 위해서는 언어도 필수였다. 유튜버 'Caf com Juli'가 알파벳과 발음, 기본 인사말, 보사노바 노래까지 재미있게 포르투갈어에 대해 알려줬다. 포르투갈에 대한 목표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포르투갈어를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가끔 힘들 때면,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 맛집, 유명 관광지에 대한 내용도 올렸다. 그렇게 3개월이 되자, 구독자 수는 10만 명, 6개월이 되자 입소문을 타 50만 명이 됐다. 꼭 포르투갈 돈 모아서 헬조선 탈출하시길 바랄게요! 가서 포르투갈 살기 후기도 꼭 남겨주세요! 응원의 댓글도 달렸다.
구독자 수의 증가로 광고 수입도 얻게 돼, 8개월 만에 돈을 다 모았다. 문제는 보수적인 부모님이었다. 무엇보다 자취방, 학원비를 지원해 주시던 부모님은 8개월 간 아들이 포르투갈로 가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엄마, 아빠. 제가 작년부터 사실은 알고 있다. 너 포르투갈 가려고 돈 모았잖아. '헬조선 탈출기' 블로그 보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 출국 준비 잘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다.
그렇게 8월 1일, 대망의 시간이 찾아왔다. 오늘은 헬조선을 탈출하기 위해 포르투갈로 가는 날이다.
비행기에 타기 30분 전, 인천공항을 둘러봤다.
이제 진짜 헬조선 떠난다.
띠리링. 그때 갑자기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톡파원 25시> 제작진입니다. 승재 씨 되시죠?
네네.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저희가 이번에 포르투갈 톡파원이 필요해서요. 혹시 가셔서 포르투갈에 관한 내용을 취재하고, 영상 편집해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띠리링. 10분 뒤, 갑자기 또다른 02 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블로그 관리팀인데요. '장수생의 헬조선 탈출기' 반응이 너무 좋아서요. 아예 네이버 블로그 대표 인플루언서로 선정해서 책까지 출판하는 걸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서요. 혹시 승재 씨는 어떠실까 해서요.
처음 포르투갈에 가기 위해 꿈을 꾼 지1년 만이었다. 12월 1일, 나는 헬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리스본 마데이라 공항에 간다. 헬조선은 움직이지 않은 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직접 세상에 부딪히며, 콘텐츠를 쌓아가니 저절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제는 더 이상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포르투갈로 떠나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끝-
.로그라인
-주인공 수식어: 매번 시험에 떨어지는 언시생
-주인공 원초적 욕망: 스트레스가 없는 곳으로 도피하고 싶다
-방해 요소: 부족한 돈 사정. 언어. 보수적인 부모님.
.개요
-서: 매번 시험에서 떨어지는 언시생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포르투갈로 도피하기로 결심함
-본1: 일단 부족한 돈 사정을 메꿔야 함. 미친듯이 알바를 뛰며 돈을 벌어들임. 스토리가 생김. 지친 장수생이 '포르투갈 한 달 살기'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곧 스토리.
-본2: 언어와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 매일 유튜버를 통해 공부를 시작-늘어지지 않기 위해 정리한 내용을 올림. 자신의 정리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남. 구독자 수 증가.
-본3: 보수적인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1년 계획을 적어 발표 시작. 더욱 원하는 목표를 위해 정진할 수 있게 됨.
-가짜결말: 포르투갈에 갈 돈을 모으고, 공항에 가게 됨.
-꺾기: 내용을 보고, <톡파원 25시>, 네이버에서 연락이 옴.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진짜 결말: 1년 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옴. 진짜 스토리를 만들어서 콘텐츠 제작자로 성장할 수 있게 됨. 스토리를 만들어 가니, 헬조선을 탈출하지 않아도 됨. 스트레스 해결.
아래 링크를 누르면 위의 작문 내용은 물론,
나의 첨삭 피드백 내용도 PDF 파일로도 볼 수 있으니, 필요한 사람은 링크 누르고...
예능 PD 공채 최종 합격자의 첫 번째 연습 작문 PDF 다운로드 (클릭)
봐서 알겠지만 참담한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는 퀄리티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걸 반약 시험장에서 썼다면 합격이 보장될까,
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아래 내용은 내가 보낸 첨삭 피드백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쓰기가 썩 만족스럽지 않아 홀드가 떨어지는 게 아쉬웠고,
분량 안배도 칼 같이 지키지 않아 내용 전달에 악영향이 있었다.
무엇보다 언시 작문에서 가장 혐오해야 마땅한 '갑툭'이 결에 있었다.
톡파원25시!!!!!
저런 게 갑자기 들어가면 구성에 있어 치명적이었다.
갑툭이 얼마나 퀄리티 저하를 일으키는지 모르고 주구장창 반전 요소랍시고
결에다가 갑툭 소스를 욱여넣은 자들 중에 PD 공채 장수생들이 많다.
절대 금물이다.
앞으로도 계속 최종 합격자의 자료를 공유할 테니 어떻게 실력이 개선되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보고 있는 피디 언시생들 역시 꾸준한 연습이
동반되면 얼마든지 실력 증진이 가능하단 사실을 똑똑히 알아줬으면 좋겠다.
PD 공채 필기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글쓰기라는 회피성향 극강의 활동을 처음 접해야 하기에
거의 무한대로 뻗어가는 게으름에 있는 것이다. 작문 뿐 아니라 기획안도 논술도,
그리고 자소서도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쓰고, 수정하며 시간을 투자해야 실력이 나아진다는
당연한 사실은, 맹신해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능PD 공채 최종합격자 시리즈 #1.합격자의 첫 번째 연습 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