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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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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지 않고, 깊지 않게.

by 김봉민 2022. 11. 7.

다 내려놓고 저기 머나먼 인도 다질링으로 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 모양. 

다 내려놓고 싶다면서 소망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걸 또 손에 쥐어보는 꼴. 

이 모양과 꼴이 참 아이러니하네, 라고 중얼거려보는데

정작 더 크게 아이러니했던 것은 내가 살아온 그 구라 같은 39년 나날들 아니었던가. 

말을 좀 적게 하고 싶다. 대신 글을 더 많이 써보고 싶다. 

그런데 다 내려놓겠다는 소망의 요체는 글쓰기조차 포기하겠다는 것 아니었는가. 

그걸 또 글로 쓰고 있으니 그릇으로 그릇을 담고 똥으로 똥을 싸고, 

아이폰13프로로 아이폰13프로를 만드는 형국이다. 

요근래 자꾸만 득도에 매달리는 사람 같다, 진리 추구에 힘쓰는 인간 같다, 

깔끔히 요약하자면 개똥 철학에 심취한 놈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단연코 그 말이 억울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그런 황당무계한 것에 진력을 다하는 거 같아 

이거 뭔가 잘못되어도 철저히 잘못되었단 판단 때문이었다. 

나는 재미와 웃음에 대해 심각하게 깊이 생각하여 

그걸 표현하는 생물체가 되려고 했는데, 

문제는 재미도, 웃음도 아니었다. 

 

심각하게 깊이, 

 

라는 부사에 나의 고통이 있는 것이다. 

고로 재미와 웃음엔 죄가 없다. 

그걸 구현하는 방법을 너무 괴상하게 선택한 내게 있다. 

나는 다시 재미와 웃음을 찾고 싶다.

근데 그게 너무도 요원하게 느껴지니 

다 내려놓고 싶다는 소망을 한 웅큼 쥐고서 

아이러니의 2제곱적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될 것을 너무 또 똥폼을 잡아버린 것이다. 

 

일 안 하고, 돈 걱정 좀 아예 안 하고, 

그냥 띵가띵가 놀고 싶은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 경직된 자세- 심각하게 깊이, 같은-가 

이젠 뭐 거의 허세와 동급인 자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잠은 온다. 아직 오후 9시도 안 되었는데, 

구라처럼 잠이 와버리고 나는 속절없이 그 요청에 응하고 싶어지는

모양과 꼴이 된 것이다. 잠 들거든 심각하고 깊게 자지 말고, 

일어나면 재미와 웃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잠을 만끽하면 좋겠다. 

다질링에 가고 싶다는 소망이 그대로 분쇄되는, 그런 잠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