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설령 하찮은 지각 사유서나 알량한 반성문, 또는 SNS 글귀라 하더라도
거기엔 반드시 그걸 쓴 사람의 정신적 지문이 남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남는다. 안 남기려고 하면, 안 남기려고 한 그 의도가 남는다.
그리고 자신의 주제, 좋게 말해선 한계를 넘어서
자신이 쓴 글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게 남기려고 노력하면
거기엔 반드시 삑사리가 발생하게 된다.
잘 쓰려고 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을 해왔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나의 그 선천적 허세가 발동하여 나는 엉망이 된다.
정작 써야 할 것도 못 쓰며, 거의 아무것도 못 쓰게 되는 멍청 상태에 진입하여
글을 씀으로써 조성하려 했던 나 자신의 청량함은 이룩되지 아니 하고,
고인다. 엉킨다. 썩는다. 그러지 말자. 좀 못 써도 된다.
탁월함에 목 매지 말자. 나는 그럴 주제가 아직 안 된다는 나즈막한 조빱정신을
견지한 채 그냥 한 번 써보자. 반드시 써서 맨 마지막에 '-끝-'을 남기는 것에
주안점을 두자. 나는 글을 사실 잘 못 쓴다. 근데 그래도 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써볼 수 있는 재밌는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족하다. 까불지 말자. 주접 떨지 말자. 그냥 쓰자. 잘 쓰려고 하지 말자.
오늘도 설령 실패하더라도 아직까지도 뭘 좀 써보겠다는 자세를 붙들고 있을 수 있음에
겸허한 마음을 갖자. 으랏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