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거의 잘, 안 변한다.
나도 그렇다. 잘 안 변한다.
중요한 건 이거다.
사람이 꼭 변해야 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변화해야 할 이유는 없다. 변화 자체가 미덕이 순 없다.
안 그래도 이미 늙음이라는 변화를 매 초 단위로 겪고 있다.
이미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맨 처음 했던 저 말엔 어폐가 있다.
사람은 거의 잘, 안 변한다, 라고 하면 안 되는 거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어렵다,
라고 정정을 해본다.
변화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바라는 모습, 이라는 부분에서 단초를 얻을 수 있겠다.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라는 말의 이면엔
현재 당면한 나의 현실엔 그 모습이 없단 걸 말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내재적 이유가 켜켜이 내 안에 축적되어 있단 걸 뜻한다.
이미 반도체 공장인데 반도체 공장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조미료 공장인데, 이러한 현실이 싫어, 반도체 공장을 꿈꾸게 된다.
현재의 나를 알고,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미래를 긍정할 때 바람은 생기는 거로구나.
그렇다면 스스로 조미료 공장을 철거해야 한다.
진정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선
창조를 위한 파괴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여기는 일말의 마음이 있기에
그 파괴를 머뭇거리는 것이고.
그래서 자발적이고도 의도적인 변화란 어려운 것이다.
사실 조금 불만족스럽기는 해도 버틸만 하거든.
그러면서 푸념 식으로 나 이런 사람이 될래요, 라고 떠드는 것이고.
그래서 모든 긍정의 심리가 삶에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을 못 하는 것이다.
자기 기만일 수 있으므로. 철저한 자기 부정, 그리고 죽지 않을 정도의 외압,
거기에 생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실행력이 있어야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그나마 바뀔 여지가 있는 것이겠다.
이토록 어려운 것이구나. 그러니 그런 사람이 있거든 열렬히 존중하고 싶다.
존경 말고,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