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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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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실패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by 김봉민 2021. 2. 23.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실패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는 어느 야구선수의 격언은 수정되어야 한다. 

승리는 내 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고, 

실패는 내가 좀 안다. 실패하면 배우고 싶다는 맘이 안 생긴다. 

실패하면, 좌절감이 찾아오고 그것에 길들여지면서

긍정적 마인드는 차차 휘발된다. 무기력해진다.

다시는 실패의 여지를 없애고 싶다는 날카로운 각오는 세워지기 어려워진다. 

하여,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실패하기 쉬워지는, 

실패취약자가 된다. 실패는 실패를 부른다. 그게 반복될수록 더욱더 그렇다. 

계속되는 성공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자는 없다. 

인간은 실패에 폐인이 되는 거다. 

실패 때문에 한강 다리를 기웃거리는 사람은 많다. 매우 많다.

그들은 한강으로 몸을 맡긴다.  

너무도 성공만 해서 자살한 사람은 못 봤다. 

그들은 한강 근처의 높은 곳에서 한강 다리를 내려다 본다. 

 

'사랑'과 관련된 것에 실패하면 더 적나라하게 사람은 피폐해진다. 

정말로 그 프로젝트,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소중했다면, 그것이 실패했을 때

뼈 아파야 정상이다. 실패했지만 그 나름 괜찮은 경험이었고,

이걸 통해 모든 걸 배울 수 있겠다고 이성적으로 즉각 판단이 된다면, 

그 프로젝트가 그에겐 한낱 장식품이었던 거다. 

정말로 사랑했다면 실패했을 때 숨 쉬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헥헥거리며 

앞날이고 뭐고 분간할 기력도 사라져 지금 당장의 고통에 압도 당해야 정상이다. 

죽도록 괴로워서 생사 여탈의 권리를 발동시키고 싶어진다. 

실패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뭘 배우라는 건가. 실패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제대로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실패를 통해선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사람은 성공을 통해 배운다. 성공을 통해 사람은,

과거의 실패를 너그러이 용서하고 지금 와서 보니 그게 그땐

그런대로 필요했던 것이라 자위하며 자신의 현재 성공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한다. 

아직도 모르겠나? 실패를 통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사실 그 누구보다 크게 

성공한 사람이 한 말이란 거다.  그래, 출처를 밝히자. 크리스티 매튜슨. 대투수.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야구계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이 한 말이란 거다. 

통산 승리가 373승인데, 통산 패배는 118패다. 승패 마진이 255다. 255란 말이다. 

 

그러니 성공을 통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는 배때지에 기름 낀 소리는 도려내 버려야 한다. 

실패한 사람이 앞에 있다면 허튼 위로의 말을 하려고 믿지도 않은 헛소리 외워다가 

주절거리지 말고, 그냥 술이나 사주고, 징징거리는 그 지겨운 소리 감내하고 들어주며, 

술값이나 계산해야 한다. 그게 다다. 그래야 네가 실패했을 때도, 누군가 그래준다. 

 

끝으로, 실패전문가를 자처하는 내 입장을 발표해보려 한다. 

앞서 줄창 쏟아냈지만, 실패는 분명,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도, 실패가 두려워 아무런 도전과 시도도 해보지 않기로  

작정한 이들보단 수준이 높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 무패의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지혜로운 척 하며, 

보기 알맞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고 있다. 하지만 무패의 주인공들은 

이 세상에 민증상 존재는 하더라도, 엄밀히 말해 사는 것은 끝나버린 존재들이다.

아무런 꿈도 없이 되는 대로 살며, 살아있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오만가지 감정 중 극히 일부만을 알면서도, 

자신이 아는 극소수의 것을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여 헛소리를 남발하고

으스대며 늙어가는 꼴이야말로 추하디 추하다. 

 

너희는 승률도 제로다. 전패와 승률은 동률이다. 

 

그러나 전패의 인간은 고통을 끌어안고 생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로봇과 인간이 다른 지점은 고통을 느끼느냐, 느끼지 않느냐에 있다. 

인간은 고통이다. 한 인간이 끌어안고 있는 고통의 수준이 그 인간의 수준이다. 

너희에겐 수준 자체가 없다. 그러니 사는 것은 끝나버린 존재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행여나 패배한 자를 바라보며 나는 저런 꼴 안 당해서 다행이라고 자위하며

이죽거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