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바위엔 이끼는 끼지 않는다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나는 구르고 싶었다
늦게 일어나면 어서 글 쓰러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집에 잠시 누워 있으면 당장 노트북을 켜고 한글 파일을 열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옭아맸다
밥 먹을 때도 글 관련된 궁리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했다
사람들이 만나자고 하면 한사코 거부를 하고 즉시 홀로 책상 앞으로 가 앉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했다
술을 마시고 있을 때면 술 자체를 즐기지 못 하고, 내가 이러고 있으니 이 모양으로 사는 거라며 스스로를 줘팼다
간신히 간신히 꾹꾹 한 글자 한 글자를 써낸 후에는 왜 나는 내가 아는 그 형님 그 누님들 수준의 것을 못 써냈냐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면 내가 글을 더 잘 써냈으면 이런 현상에 봉착하지 않았을 거라며 스스로를 목 졸랐다
그러면서도 그러고 있는 내가, 나는 짐짓 좋았다
이건 구르고 있다는 증거에 해당하는 고통일 거라 믿었다
나의 열정은 거의 광기에 다달한 거라면서 흡촉하게 여겼다
나에겐 이끼가 낄 수 없다
언젠가 반드시 나의 시간이 도래할 거라고 나 자신을 거의 교주로 여기며 내 집착이라는 종교를 신봉했다
나는 나의 교주이자 나의 유일한 신도
이내 외로워질 때면 다른 이가 만든 책과 영화를 보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자위했다
그러다 그 책과 영화에 대한 질투가 폭발하면 차라리 이럴 거면 세상이 순식간에 공평하게 멸망하면 좋겠다며 나 자신에 대한 배교자가 되길 자처했다
그랬던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질려버렸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구르지 않는 바위처럼 있고 싶었다
구르는 바위엔 이끼가 끼지 않고, 다만 곧 쪼개질 뿐이다
나는 구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그 누구의 눈에도 띠지 않고, 세상사와는 무관한 것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구르지 않는 바위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무게를 다해
눌러앉아 있는 수고를 쉬지 않고 자임해야 한단 걸 몰랐다
그런 참담함을 앓다가 늦게 잠든 나는, 늦게 일어나 어서 글쓰러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려다가,
이제 그만 좀 채근해
그만 옭아매
그만 압박하고,
그만 재촉하고, 그만 줘패고, 그만 깎아내리고, 그만 목 졸라
굴러도 된다. 구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끼가 달라 붙어 있으면 붙어 있는 대로 살아가고,
쪼개지면 쪼개진 대로 살아가면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