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즘
클래식
마니에리즘
바로크
그리고 다시 아케이즘, 클래식, 마니에리즘, 바로크, 또 아케이즘
이 순환의 고리로 미술사는 변화를 거듭해왔다고 한다.
용어 해설을 굳이 해야 하나.
그냥 하자.
아케이즘은 조악하다, 정도가 되겠다. 대부분의 예술인들도 이 수준에서 끝난다.
클래식은 '일가'를 이룬 상태.
마니에리즘은 매너리즘. 더 이상의 확장이 끝나서 클래식 때의 방법론을 울려먹는 상태.
바로크는 딱히 진정한 의미에서의 변화는 멈추고 외적인 형태만 커져버리는 상태.
어찌 미술사에만 국한될까.
인간도 그러하고, 내 일상도 그러하다.
극도로 허접해서 비참한 하루를 보내고 -> 아케이즘
그다음엔 그래도 좀 정리된 쾌청한 하루를 보낸다 -> 클래식
그다음 날엔 나아진 게 없어 스트레스를 받다가 술을 마셔버리고는 -> 마니에리즘
그다음엔 숙취에 찌든 주울증을 겪으며 내 특유의 병신스러움이
기괴할 정도로 커져 거의, 내 전부가 된 듯 하다 -> 바로크
그런데도 나는 살고 있다.
우울이 마음의 기본값으로 설정된 내가,
저 지긋지긋한 순환의 고리를 못 끊고 골골거리기를
반복하는 내가, 왜 사는 걸까.
살긴 사는 건가. 사는 게 아니라 아주 느릿느릿 죽어가는 과정은 아닌가.
나는 살아있는가. 나는 나를 뭐라 명명하고 싶은가.
희망이란 단어를 내가 여기에 적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이 질문들이 나를 '바로크'에서 머물지 않게 하고,
또다른 디테일의 새로운 아케이즘으로 이끌어주었구나.
부끄러운 삶이지만, 어떻게든 이 자책을 빙자한
질문들을 움켜쥐고 놔버리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나는 솔직히 내가 살아있어서 참 좋다.
그리고, 이렇게도 남겨보도록 하자.
"클래식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로크에서 다시 아케이즘으로 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클래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