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같은 나는 어제 이수역 태평백화점 인근을 배회하다가
이런 잡생각을 했다.
1. 문학 계통은 그러지 아니 한 경우가 많지만,
문학 계통 책이 아닌 경우에는 사실상 책의 초반부 10% 안에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시된다, 라고.
2. 중반 이후로는 자기 주장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신빙성 있(다고 주장되어지)는
근거들을 제시하며, '어때? 내 말 맞지?'라는 식으로 설득을 시도한다.
3. 끝무렵에는 수미상관을 시도하며 최종 정리를 하면서 대개의 책들은 끝난다,
라고 점과 같은 나는 주장해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책의 저자가 공신력 있는 사람이라면,
책의 초반부만 읽어도 사실상 그 책의 8할 이상에 해당하는 걸
얻어가는 것과 흡사하다. 왜냐하면, 주장 이후 늘어놓는
근거들은, 아무리 촘촘히 읽어놔도 나중엔 대부분 기억나질 않거든.
그저 머리에 남은 건, 아주 간략한 문장 몇 줄이다.
전체는 생각이 나질 않는단 말이다! 내가 읽었던 책들을 예로 보자.
아담 그랜드 <오리지널스>
"창의력이란 번뜩임이 아니라 지속성의 영역에 해당하며, 닦달이 아니라 여유 속에서 피어난다"
"문제를 대하는 방식엔 4종류가 있다.방관하거나, 인내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거나, 탈출하거나"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그 아이디어가 먹히기엔 시기상조일 수 있다"
피터 틸 <제로 투 원>
"경쟁하지 마라. 가장 작은 시장을 먼저 발견하고, 그 시장을 독점하라."
"0에서 1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또한 가장 어렵다."
"20%가 80%를 만들어내며, 나머지 80%가 20%를 만들어낸다."
나심 탈레브 <블랙스완>
"이야기 짓기의 오류란 게 있다. 어떤 사건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났다 치자.
인간은 그러한 불확실성에 기반해 발생한 사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존재다.
그래서 사후에 인과 관계를 만들어내 그 사건을 쉽게 정리하고 저장하여
두려움을 제거하려 하는 경향성이 있다."
나머지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 전부를 다 기억할 수는 없는 거다.
그건 마치 자기 전체 생애의 1분 1초를 모조리 기억하며 살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책은 초반부만 읽어도 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속독해도 된다.
어떤 문단의 첫 줄이 너무 어려우면 그다음 문단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읽어도 좋다.
읽다가 그만 읽고 싶어진다면, 그건 내 문제도 있겠으나,
그 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좀 쉽게 쓰든가, 좀 웃기게 쓰든가 했어야 했는데,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여하간 나랑 안 맞으므로, 거기서 책 읽기를 중단해도 괜찮다.
나는 개고기가 먹기 싫은데 구태여 개고기를 먹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서점에 가면 어차피 읽을 책은 많다. 다른 책을 읽자. 초반부를 읽었으면 그 책의 상당부분은
이미 섭취한 것이다. 정리를 해보자.
<책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는 편법>
1. 책의 초반부만 읽어도 된다
2. 촘촘하게 읽지 않고 대충 읽어도 된다
3. 읽다가 재미 없으면 그만 읽어도 된다
4. 대신 다른 책을 찾고 그 책의 초반부를 본다
그리고 만에 하나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의 오프닝을 다시 봐줬으면 한다. (가짜) 수미상관을 나도 시도해본다.
점과 같은 나는 어제 이수역 태평백화점 인근을 배회하다가
이런 잡생각을 했다.
1. 문학 계통은 그러지 아니 한 경우가 많지만,
문학 계통 책이 아닌 경우에는 사실상 책의 초반부 10% 안에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시된다, 라고.
2. 중반 이후로는 자기 주장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신빙성 있(다고 주장되어지)는
근거들을 제시하며, '어때? 내 말 맞지?'라는 식으로 설득을 시도한다.
3. 끝무렵에는 수미상관을 시도하며 최종 정리를 하면서 대개의 책들은 끝난다,
라고 점과 같은 나는 주장해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명백하게 이 문단에 입각하여, 나는 썼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다시 점과 같은 내가 좀 더 이야기를 해보련다.
나는 이런 편법 같은 건 사실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편법이라고 했지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딴 개잔머리'라고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 이유에 대해 조밀조밀하게 써낼 수 있겠으나, 개잔머리에 관한 걸 구체적으로 쓰는 건 퍽 괴로운 일이다.
나는 가급적 나를 보호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이 편법과 같은 개잔머리에 대해 몇 마디 쓰다보니,
어쩌면 내가 말하는 내 삶의 전반이, 내가 지어낸 '이야기 짓기의 오류'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나는 내 삶의 그 모든 1분 1초를 기억하고 있지 못 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내가 읽었던 책의 모든 내용을 내가 지금 이렇게 기억할 수 없듯,
나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나 편하자고 내 인생에 있던 문제들에 대해
간편한 문장 몇 줄로 편집하여 저장하고는 그걸 믿고 있는 거 아닐까.
나는 내가 그래도 터럭 만큼이라도 선량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전체 디테일을 꼼꼼히 본다면, 이토록 악랄한 인간은 어쩌면 또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책도, 나 자신도, 그리고 내 주변의 그 모든 걸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냥 쉽게, 내 편의에 맞게, 단 몇 줄 문장으로 모든 걸 저장하고는 그렇게 믿고 있으리라.
그래, 나는 점이다.
어제 저녁에는 이수역 태평 백화점 앞에서 콜드플레이 노래를 듣다가,
나는 점인데, 그리고 누구나 개개인은 점인데,
어떤 점은 검정색이 아니라 빨주녹초파남보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했다.
물론 뻥이다. 그런데, 다시 잘 보자. 빨주'녹'초파남보, 가 아니라
빨주'노'초파남보,가 맞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하나 일부러 고의적으로 틀리게 써놔도
세상은 돌아가고 설령 내가 고의적으로 틀려먹은 점이더라도 세상은 멀쩡할 것이다.
점과 점은 만나서 선이 될 텐데, 나는 내 틀려먹은 색을,
혹은 다른 색을, 어디 최대한 번지게 해보고 싶다. 나는 그런 것을 써보고 싶은 사람이고,
책도 좀 더 많이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며, 책을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편법 같은 개잔머리에 대해
골몰하는 사람인데,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몇 년 후에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
아마 잊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그렇고 그런 점과 같은 사람이다.
어렵다. 이럴 땐 어쩔 수가 없다. 오리지날스도, 제로투원도 블랙스완도, 다시 읽어보는 수밖에.
내 지나온 인생도 다시 돌이켜보는 수밖에. 이 글도, 나중에 다시 찾아서 읽어보게 되길 소망을 얼추 품어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