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에 일어나 다시 자려다가,
못 잤다. 안 자고 버틴 게 아니다.
잡념이라 부를 수 있는 나의 핵심적 고민거리들이 떠 고개를 들었고,
나는 눈겨루기를 했다, 치자. 진짜 눈겨루기를 한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걸 했다. 나는 나를 바라본다. 지겹도록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외 선생이다.
이걸로 되게 쉽고 편하게 돈을 적잖이 벌게 되었다.
맘 먹고 전력투구한다면, 솔찬히 벌 수도 있는 형편이다.
문제가 있다.
나는 선생질 하는 것을 싫어한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선생님들한테 배운 게 없다.
수업 시간에 딴짓 하거나 잤다.
학원도 다닌 적이 없다. 과외를 받은 적도 없지.
독학으로 지금 내가 아는 것의 99%를 배웠다.
그래서 가르친다는 것의 가치를 낮게 책정하고 있더라.
근데 이런 내가 가르치면서 산다. 고역이다.
싫어하는 걸로 돈을 번다니, 그 안에 소소한 경제인적
즐거움은 있으나, 거국적으론 언젠가 반드시 관뒀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글을 쓰고 싶다.
이야기 창작. 상황 예술가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쓰고픈 대본을 썼다고 해서 바로 현금화 되지 않는다.
여기에 문제가 더 있다. 의뢰를 받아서 쓰는 것도 싫어 한다.
의뢰를 받으면, 제작자나 프로듀서에 해당하는 자들의 의견에
부합하는 걸 만들어야 하는데, 그 안에 혁신적인 게 있을 리 없다.
그들은 모험을 싫어하고, 어쨌든 수지타산을 맞추는 게
제일의 목표라서 '성공한 작품들의 공통점을 조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러나 김태희의 눈과 전지현의 코와 송혜교의 입술을 모은다고,
최고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우스운가.
전례없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끔찍하고도 질 낮은 혼종 양산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를 않는다.
그런 하찮은 작업에 소모되어 납품 일자를 맞추면 현금을 받느니,
아무런 현금화 플랜이 지금 당장은 없는, 내가 쓰고픈 이야기 창작에
매진하는 게 낫겠지 싶은 마음이다.
여기에 문제가 또 있다. 그렇다고 내 창작에 몰두를 하는가 하면,
아니. 못 하고 있다. 왜?
과외 선생이기 때문이다.늘 일이 있어 몰두, 매진이 힘들다.
여기에 문제가 또또또 있다.
나는 소문난 무수저. 흙손이라 거지 같은 경제력을 근간으로
살아왔고, 그 때문에 나도 좀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자, 라는
소원이 강력했고 뜬금없이 회사 하나를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회사 일이 늘 있다. 이걸 챙겨야 한다. 이 회사에서 찍히는 수입에
쿵짝을 맞춰가며 소비량을 늘렸기에 회사 운영을 접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늘 일이 있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글쓰기만 포기하면,
과외선생질과 회사운영질로 향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어 있는 인간이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이나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가슴 설레이지 않는다. 작가라는 호칭이 압도적으로 더 좋다.
인간 김봉민은 작가 김봉민으로 살았으면 한다.
포기가 안 되는 것은 포기하면 안 된다.
따라서 지금을 과도기로 여기고 한 1년은 박 터지게 살아야 한다.
그 수밖에 없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통합시켜버리거나 -> 이야기 창작 전문 회사 설립하고 창작을 하면서 과외는 아주 극도로 소수정애. 대신 고액으로.
제거해버리거나 -> 과외 전격 중단 및 회사 운영에 손 떼고 창작에 전념
둘 중 하나의 양상으로 전개될 텐데,
그 전까지는 좀 더 버텨야 한다.
버티는 게 재능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니야.
재능이 있어야 버티겠다는 명분을 세우는 게 가능한 거다.
그리고 사실 스리슬쩍 예측이 된다.
아마 버티는 게 죽을 때까지 계속되겠지.
그나마도 선물이라면 선물인데, 어떤 선물은 폭탄이 된다.
너무 감사해하지도, 쉽게 여기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