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목젓과 그 인근이 기본적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그 무게감이 왼쪽 가슴까지 이어진다. 가슴에선 약간 열이 나는 것도 같다.
체온보다 확연히 뜨거운 기운이다. 이 무겁고 뜨거운 게 밑으로 쳐지려고 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 윗배도 좀 뜨겁고 무겁다.
이 부위의 무게는 밑으로 당연히 향하나, 마치 줄이 뚝 끊기듯 낙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얉은 줄 같은 걸로 연결된 기분이다.
늘 간당간당하게 자기끼리 결속력을 지니며 그 자리에 위치한다.
그러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면 아주 잠깐이지만
열은 가라 앉았다가 다시 올라간다. 불 타고 있는 장작에 바람을 불으면
잠깐 불꽃이 작아졌다가 이내 위용을 되찾는 것과 유사하다.
이걸 쉽게, 우울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이런 우울이 내게 고정된 걸, 내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시점이 있다.
97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다녀와 낮잠을 잤고 저녁에야 일어났다.
엄마는 항시 그렇듯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 드라마는 군입대 했다가
이제 막 제대한 이정재의 복귀작인 <달팽이>였다.
이정재가 저능아로 나오는 드라마였다.
이해 안 되는 내용지만,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지금의 이 기분을 처음 인지했다.
왜 하필 그 드라마를 봤던 게 표식처럼 남아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더 이상의 이야기짓기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 드라마가 표식처럼 남아있는 걸로 하자.
그리고 이 내 마음의 상태가 처음 시작된 시점은
96년 봄이라고 나는 여기고 있다. 형이 집에서 점프한 날부터라고 나는 이야기를 지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한참 전,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옥상에 자주 올라갔을 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형이 점프하기 전부터도 옥상 난간에,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추락하여
몸이 순두부처럼 으깨질 정도로 위태롭게 앉아 있곤 했다.
지금 상상하면 모골 송연해지도록, 그러고 앉아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때 이미 나의 기본 심정은 정착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형이 먼저 점프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점프를 했었을까?
점프하여 허리 아작난 형을 보면서 공포를 느낀 나는,
나의 점프가 발생하지 않게 심혈을 기울여 예방했던 건 아닐까.
이 모든 게 다 이야기짓기의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내가 기본적으로 이런 마음 상태란 건 사실이다.
여기서 더 나아지면 좋겠다만, 그보단 여기서 더 악화되는 걸
방지하는 게 먼저다. 감사하게 여기는 건 이렇게 뭐라도 쓰고 있으면,
내 목과 가슴과 윗배의 무게감과 온도가 덜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잘 쓰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면, 대신 머리가 아파지긴 한다.
세상은 공짜는 없다. 대가 없는 건 거의 없다.
나름 공평한 거래, 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는 된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엄연히 나의 현실인,
나의 병약한 기본 상태가 이러하다. 그러나 이건 일부다.
내가 선택적으로 노력하고 감당하기로 한 고통과 그로 인해 생산되는 산출물도
나의 일부로서 더 많은 나의 일부를 낳아주기를 바란다.
그냥 이런 걸 적어보면 좋겠어서 적어본다.